과신대 포스트휴먼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 제3회 포럼이 '포스트휴먼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주제로 20일 오후 7시부터 서울대 관악캠퍼스 멀티미디어 강의실에서 개최됐다.

포럼은 김남호 교수(울산대 철학) 박일준 교수(감신대 신학)가 '제2 기계 시대의 사이보그: 테크노 영지주의 혹은 체현된 주제?', 손화철 교수(한동대 기술철학)가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와 기술'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손화철 교수는 "최근 수많은 형태의 포스트휴먼 이론들 모두를 관통하는 한 가지 전제는 급속하게 이어지는 기술진보가 앞으로도 계속되고, 그에 대한 통제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인간이 여전히 기술 개발과 진보의 주체라면, 미래 기술은 여전히 예측이 아니라 기획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철학의 기존 논의들과 미디어 생태학의 통찰에 기대, 인간과 기술 사이에는 근본적이고도 미묘한 상호작용이 있다. 이를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의 역설'이라 부른다.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작하여 쓰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특징(인간이 사용하는 기술이 인간을 변화시킴)'이라는 이 입장은 상식적·상투적이지만, 다양한 포스트휴머니즘 이론들이 전제하듯 포스트휴먼을 이미 존재하거나 앞으로 존재하게 될 무엇으로 보는 오류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다"며 "포스트휴먼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포스트휴먼을 통해 다시 만들어질 우리 자신을 예측해야 한다"고 했다.

과신대 포스트휴먼 손화철
▲손화철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손 교수는 "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포스트휴먼을 바라보려는 시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독교는 이미 주어진 상황을 판단하고 분별하여 나름대로 수동적인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도 큰 틀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며 "미래 기술을 활발히 논의하는 자리에서 기독교 이론가들이 추구할 일은 포스트휴먼의 시대를 맞이할 대비를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미래와 어떤 시대를 추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손화철 교수는 "기존 '창조-타락-구속'의 기독교 세계관은 기술의 발전을 포함한 모든 창조 활동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그 모든 활동을 구속하려는 노력을 통해 타락의 영향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이는 특정 기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 '좋은 거냐, 나쁜 거냐'는 식의 단선적 접근만 허용할 뿐, 포스트휴먼이 제기하는 새로운 인간의 문제에 대해선 의미있는 답을 제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포스트휴먼의 가능성에 대해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접근 방식은, 미래의 포스트휴먼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기술의 현재 문제에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호모 파베르의 역설'을 염두에 두고, '창조-타락-구속'의 도식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포스트휴먼으로 생겨날 다양한 상황 중 기독교적 입장에서 추구할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려는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기술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단순 부작용 또는 오용을 막으면 된다는 식의 간단한 접근이 아닌, 기술로 생겨나는 여러 직·간접적 결과들을 숙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기독교는 개발되는 기술들에 '왜?'를 묻고 답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기술의 발전 자체에 대해 묻기보다는, 그 발전이 초래할 수도 있는 부작용을 막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정작 그 기술이 왜 개발돼야 하는지는 별다른 입장이 없다"며 "'왜?'라는 질문은 정작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자신과 타인 안에 대화와 소통의 계기를 마련한다. 공학자들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왜?'라고 물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신대 포스트휴먼
▲포럼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참석자들. ⓒ이대웅 기자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그 '왜?'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일 것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며 "이 물음은 포스트휴먼의 등장 자체가 아닌, 그것이 이뤄지기까지 등장해야 할 여러 기술들과 그 기술들이 사용되는 환경에 대한 물음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도전인 것"이라고도 했다.

손화철 교수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강조하면서 과연 소외된 자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섬겼는지, 과학기술을 창조의 이름으로 받으면서 그 창조가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방식으로 쓰이는지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였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이러한 노력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로봇을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로 봐야 하는지,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은 도달할 수 없을 정도의 힘과 지능을 가진 사이보그가 되고 싶어하는 형제와 자매를 허용해야 하는지 등을 묻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손 교수는 "포스트휴먼의 도전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응답 역시 맥락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기술의 문제에 대체로 침묵하던 한국 기독교가 갑자기 일어나 '새로운 인간'의 등장에 한 마디 던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특별히 의미 있는 대응이 되기 힘들다"며 "그간의 침묵에 대한 반성, 기술의 문제에 대한 숙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 대한 깊은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독교적 인공지능이나 기술을 당장 정의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다른 첨단 기술의 함의를 파악하고, 아이가 물을만한 단순한 물음들에 가능한 한 정직한 대답을 확보하는 일은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며 "이런 노력이 좀 더 나은 선택, 좀 더 적당한 속도, 좀 더 적절한 기술 개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신대 포스트휴먼 박일준
▲박일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앞서 박일준 교수는 "제1기계의 시대가 아날로그적 기술에 기반해 거대 기계를 활용한 산업혁명의 시대였다면, 제2기계 시대는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기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가상 세계와 가상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시대"라며 "제2기계 시대에 '몸(the body)'을 성찰하는 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여겨왔던 이분법적 경계선, 즉 자연/인공, 인간/기계, 생명/무생물, 유기체/무기체 등의 구별을 포스트휴먼(posthuman)의 맥락에서 성찰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인간은 생물학적 몸의 연장으로서 도구를 사용했고, 그 도구의 활용을 통해 다른 존재들과 경쟁하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신화적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곧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들과 생존경쟁을 벌여 적자생존의 게임의 승자가 됐음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경쟁과 억압 구조는 '인간'으로 묶이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해방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소유와 종속을 통해 특정 인간들만이 모든 특권을 누리고, 그에 이르지 못한 다른 인간들과 존재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스트휴먼 시대는 첨단 과학기술의 힘으로 우리가 낙원에 이르게 되는 시대만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찬란한 시대의 비전은 오로지 결국 그러한 기술을 소유한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며 "오히려 여전히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존재들에게 다가가 함께 고난당하는 '동료-고난자'가 요구되는 시대로, 그들의 아픔이 우리의 몸으로 체현되고 공감되는 시대가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시대인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기독교의 신 즉 하나님은 다른 종교의 신들과 다른 독특한 반전을 갖고 있다. 유일신으로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무소불위하고 편재하나, 그런 막강한 신이 불완전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을 사랑해서 그들을 구원하기 바랐다. 그래서 그 신은 그 무기력한 인간 세계로 내려와 인간이 됐다. 바로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성육신"이라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구원의 본질은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규정하는 육신의 세계를 벗어나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불완전하고 무기력하고 무능한 육신의 세계에서 죽는 것, 바로 거기에 구원의 가능성이 도래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과신대 포스트휴먼 박일준 손화철 신익상 전진권
▲패널 토의에서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박일준, 손화철, 신익상 교수, 전진권 박사. ⓒ이대웅 기자
우종학 교수(서울대) 사회로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는 두 발제자 외에도 손익상 교수(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전진권 박사(서울대 과학철학) 등이 함께 참석자들이 제출한 질문에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