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지라르, 유럽에선 ‘기독교를 구한 사람’으로 언급돼”

입력 : 2017.11.12 17:55

[크리스찬북뉴스 인터뷰] 르네 지라르 전문가 정일권 박사

정일권 르네 지라르
▲학술대회 발표중인 정일권 박사(오른쪽).
현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르네 지라르 연구 전문가이지, 최근 <르네 지라르와 현대 사상가들의 대화>를 출간하신 정일권 박사님을 강도헌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이 만났습니다. -편집자 주

-먼저 박사님의 학위와 저서, 그리고 자기 소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독일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을 거쳐 유럽에서 르네 지라르 이론에 대한 학제적 연구 중심지로 성장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 조직신학부 기독교 사회론(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분야에서 신학박사(Dr. theol.)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대체로 국내에서 2005년 '불멸의 40인'으로 불리는 프랑스 지식인의 최고 명예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종신회원에 선출된 르네 지라르의 이론을 중심으로, 동서양 사상을 문명 담론의 차원에서 비교 연구하는 학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라르를 직접 2번이나 만나 연구와 관련해 학문적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지라르는 프랑스 사상가로서 21세기 기독교 부흥을 이끌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고까지 말해집니다.

박사학위 이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 인문학부 박사 후기 연구자(post-doctoral research fellow) 과정으로 학제적 연구프로젝트 '세계질서-폭력-종교(Weltordnung-Gewalt-Religion)', '정치-종교-예술: 갈등과 커뮤니케이션'에서 연구하고 귀국했습니다.

저서로는 지라르의 이론으로 불교 문명의 역설을 분석해 불교 연구의 신기원을 이루는 연구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독일어 단행본 <세계를 건설하는 불교의 세계포기의 역설- 르네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의 빛으로(Paradoxie der weltgestaltenden Weltentsagung im Buddhismus. Ein Zugang aus der Sicht der mimetischen Theorie Rene Girards(Wien/Münster: LIT Verlag, 2010))>가 있습니다. 이 독일어 단행본은 비서구권 학자로서는 최초로 르네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 연구 시리즈(Beiträge zur mimetischen Theorie) 제28권으로 출판됐습니다.

또한 박사학위 논문 '세계를 건설하는 불교적 세계 포기의 역설'은 획기적 혹은 신기원을 이루는(bahnbrechend) 연구로 평가받아 '세계질서-폭력-종교' 학제적 연구프로젝트로부터 출판비를 지원받아 출판됐습니다. 붓다가 은폐된 희생양이라는 최초의 주장이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책을 좀 더 진전시켜 <붓다와 희생양: 르네 지라르와 불교 문화의 기원(SFC, 2013)>을 출간했고, 이 책은 제30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목회자료(국내) 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르네 지라르와 불교 연구에 있어, 저는 부족한 가운데서도 국제적 인지도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독일어와 영어 단행본과 논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연구로 책이 인용되고 있으며, 독일어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한국어 위키백과, 나무위키 같은 온라인 백과사전에 주요 연구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또 니체 이후 100년 동안의 포스트모던-디오니소스적 전환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 르네 지라르와 현대사상(새물결플러스, 2014)>, <십자가의 인류학. 미메시스 이론과 르네 지라르(대장간, 2015)>, 그리고 <르네 지라르와 현대 사상가들의 대화: 미메시스 이론, 후기구조주의 그리고 해체주의 철학(동연, 2017)>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반신화다. 르네 지라르와 비교신화학>이 올해 11월 초반 혹은 중순에 출판될 예정입니다.

지라르 이론의 빛으로 폭력과 종교(Violence and Religion)에 대한 연구를 넘어, 최근에는 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 분야도 연구하여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통섭과 융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우주의 기원과 문화의 기원을 화두로 빅뱅 우주론과 양자물리학, 미메시스 이론을 통합학문적으로 논의한 단행본도 출판 과정에 있습니다.

번역서로는 칼빈의 성령론에 대한 고전으로 평가되는 크루쉐(Werner Krusche)의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를 번역한 <칼빈의 성령론(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2017)>이 있습니다.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빙교수로 지라르를 강의했으며,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 동안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를 통해 지라르를 소개했으며, 한동대학교, 고신대학교, 브니엘신학교 대학원에서 강의했습니다. 국내 많은 인문학, 철학, 신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포함해 그 동안 20여 편에 가까운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그 외에 청어람아카데미, 현대기독연구원, 목회자 포럼, 인문학 서원과 여러 연구공간 등에서 르네 지라르의 이론과 사회인류학적 불교연구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르네 지라르 정일권
▲르네 지라르 박사와 함께한 정일권 박사. ⓒ정일권 제공
-원래 삼위일체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다가 지라르 쪽으로 옮기신 걸로 아는데, 그 계기가 무엇인지요.

"저는 교의학과 조직신학 전공자로서 가장 고전적 신학 분야라 할 수 있는 삼위일체론, 특히 현대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칼 바르트와 칼 라너, 위르겐 몰트만 등과 같은 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을 연구했으며, 특히 삼위일체론적 존재론 그리고 삼위일체론과 양자역학 등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르네 지라르의 사유를 접하면서 큰 지적 충격과 도전을 받게 됐습니다. 특히 20세기 후반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주의, 문화상대주의, 세속화 신학, 사신신학 등으로 수세적 위치로 밀리게 된 기독교 신학이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자세로 자신감을 갖고 주류 인문학과 철학과 소통하고 대화하면서도, 보다 학문적으로 세련되게 기독교를 변증할 수 있는 큰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보았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오스트리아 알프스 중턱에서의 르네 지라르 이론에 입각한 불교 연구는 당시 저에게는 지적 모험과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 지라르가 '불멸의 40인'으로 불리는 프랑스 지식인의 최고 명예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종신회원에 선출되면서, 보다 안정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르네 지라르와 현대 사상가들의 대화>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인문학과 철학계를 위해서라면 이 책이 제일 먼저 나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학자이기에, 먼저 한국교회와 신학계를 위해서 저의 개인연구 분야인 <붓다와 희생양>, <십자가의 인류학>,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를 먼저 출판했습니다.

<르네 지라르와 현대 사상가들의 대화>는 보다 본격적이고 전문적으로 르네 지라르의 사상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로 분류되는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철학자들과, 포스트모더니즘과 니체주의를 점차 벗어나 유대-기독교적 사유를 철학적으로 재발견하고 있는 지젝, 바디우 그리고 아감벤 등과의 드라마틱한 대화 속에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지라르는 프랑스의 전 대통령인 사르코지 대통령과 올랑드 대통령이 자랑하고 추모하는 프랑스의 국민적 대학자입니다. 21세기 유럽과 서구 인문학과 철학의 이론 논쟁 중심에 서 있는 지라르의 근본인류학적 사유는 20세기 철학의 언어학적 전환 그리고 데리다를 비롯한 학자들의 사유에서 볼 수 있는 기호학적 전환 이후의 새로운 사유를 보여줍니다.

1990년대부터 프랑스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에 자리잡고 있는 니체주의가 점차 비판적으로 성찰되고 극복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현상학 분야에서는 신학적 전환(theological turn)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는 니체를 계승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철학적 일기장인 <블랙 노트(Schwarze Hefte)>가 출판되기 시작함으로써, 프랑스 일부 학자들의 담론이었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더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20세기 철학에서 일어난 언어학적 전환 이후 혹은 데리다의 경우처럼 기호학적 전환 후 철학적 사유의 새로운 전환에 대해 지라르의 이론을 중심으로 소개하면서, 기독교적 사유가 여전히 가장 생산성 있는 사유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르네 지라르와 현대 사상가들의 대화
-2장에서 지라르를 '인문학의 다윈'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라르 이전과 이후 인문학의 차이와 변화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지라르의 <문화의 기원>이라는 책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습니다. 20세기 후반 많은 학자들이 기호학과 언어철학에 몰두하고 있을 때, 지라르는 인류학자로서 보다 야심차게 인류 문화의 기원, 발전 그리고 개현, 언어의 기원 등에 천착했습니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최근 현대철학은 죽었다고 비판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책에서 다룬 것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적 사기에 대해 지적한 앨런 소칼과 같은 이론물리학자도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현대철학이 지나치게 언어철학에 천착 혹은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어느 정도 옳다고 봅니다.

지라르는 인류학적 깊이가 없는 현대 사유는 공허하고 허무주의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지라르 이후 21세기 인문학과 철학은 기호학적 전환과 언어학적 전환 이후의 포스트모던적 허무주의와 반실재주의(anti-realism)를 극복하고, 다시금 언어의 지시성을 회복하고 현실 세계의 '레알'을 사유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지라르는 '사회과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지라르 이후 인문학은 보다 통합학문적 그리고 융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던 학자들이 패러독스적 텍스트에 자의적 감명만 받으면서 '숨겨진 희생양'을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매우 날카롭게 느껴졌습니다. 역설적 논리 속에 숨겨진 폭력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도 '신화는 곧 언어'라고 하면서 신화를 언어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해독하려다 실패했고 신화 속 숨겨진 희생양을 보지 못했다고, 지라르는 비판합니다. <십자가의 인류학>에서 소개했듯, 폴 리쾨르도 자신의 신화이해에 있어 '빠진 고리(missing link)'는 바로 지라르가 말하는 희생양이라고 지라르와의 대화 속에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지라르는 '신화의 수수께끼'를 자신의 희생양 메커니즘 이론 속에서 마침내 해독해 냈는데, 신화는 결국 희생양,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희생염소(scapegoat) 스토리이기에, 본질적으로 역설적이고 모순적이고 야누스적인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세계 신화의 논리는 일그러져 있는데, 그것은 신화가 고차원적인 지혜여서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수수께끼가 가득한 것이 아니라, 마녀사냥의 텍스트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철학과 선문답에 가득한 온갖 종류의 '헛소리'와 패러독스들도 20세기 후반 반문화 운동과 포스트모던적 반대철학 운동 등의 영향으로 매우 고차원적인 것으로 새롭게 오해됐지만, 저의 불교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희생염소(scapegoat) 역할을 하는 붓다들과 보살들의 보살행과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5장의 슬로터다이크를 다룰 때 불교의 창조적 포기(세계포기)를 질투의 글로벌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독일의 국가적 철학자로 평가되는 위르겐 하버마스 이후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로서 잘 알려져 있지만, 계보학적으로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노선에 서 있는 학자입니다. 또 인도에서 요가 수행을 직접 했던 학자로서 니체를 따라 불교의 지혜를 철학적으로 낭만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슬로터다이크는 지라르의 독일어 번역본 후기(Nachwort)를 쓴 사람으로서 지라르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학자입니다. 그는 지라르의 모방적 욕망이론을 언급하면서 사회심리학적·문화심리학적으로 질투의 글로벌화라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 사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라르 이론에 기반해 인도학과 불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저로서는, 슬로터다이크는 불교의 '포기의 지혜'를 주는 희생양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 포기자들(world-renouncer, 붓다들과 보살들)의 희생제의적이고 비극적인 삶을 불교 텍스트 속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은 포스트모던 사조의 황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 중 하나인 다원성과 상대성(다원주의, 상대주의와 다르다)은 앞으로 계속 영향력을 발휘할텐데, 지라르의 문화인류학이 절대성을 변호할 수 있을까요.

"글로벌화된 세계 속에서 다양한 종교와 인종이 소통하는 시대에, 문화적·종교적 상대성과 다원성은 온건한 의미에서 존중돼야 합니다. 지라르가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상대주의의 독재처럼,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 같은 강한 의미에서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입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 등과 같은 사조는 서구 대학이 그 존재 이유로 여겨왔던 진리(Veritas) 개념 자체를 부정할 만큼 반문화적이었고 반철학적이었습니다.

지라르가 전개한 이론논쟁을 통해, 20세기 후반 잠시 풍미했던 포스트모던적 반대철학(counter-philosophy) 운동과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의 허무주의적 급진성은 21세기 유럽 인문학과 철학에서 점차 극복되고 있습니다. 지라르뿐 아니라 지젝과 바디우 같은 현대 주류 인문학자들이 그 동안 지나치게 추방됐던 유대-기독교적 텍스트와 가치를 사유적으로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기독교적 전통이 추구해 왔던 진리, 윤리, 논리, 그리고 이성이 철학적으로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오.

"11월 초 르네 지라르와 비교신화학을 다룬 책이 출간됩니다. 그리고 우주의 기원과 문화의 기원을 화두로 빅뱅 우주론과 양자물리학, 미메시스 이론을 통합학문적으로 논의한 책도 출판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다면 이후 영미권 학자들에게 지라르 이론에 기초한 불교 연구를 소개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Scribd에 온라인으로 출판한 저의 책 <'무'의 불교철학을 해체하기: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폭력적 기원(Deconstructing the Buddhist Philosophy of Nothingness: Rene Girard and Violent Origins of Buddhist Culture)>을 다듬어서 단행본으로 출판해 보고 싶습니다."

대담: 강도헌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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