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 이창우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모습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약 1:23-24)."

거울 속 자신을 보고 그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이것은 마치 모래나 물 위에 글을 쓰거나 공기 중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을 보고 돌아서는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상은 곧 사라지고 말지요.

말씀이 거울과 같다면, 주일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성경을 읽고 돌아서는 것은 마치 모래나 물 위에 글을 새기는 것 같아서, 금방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지난 주에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를 다음 주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읽은 말씀을 기억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끔 설교단에서 지난 주에 어떤 말씀을 전했지 물어볼 때는 마음이 뜨끔합니다. 전혀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해. 다음 시간에는 꼭 기억하자! 꼭! 다음 시간에 목사님이 물어볼 때는 기억하고 대답할 수 있게 해 보자."

결과적으로 그의 삶은 평생 말씀을 기억하는 일에 바쳐졌습니다.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설교를 들을 때 노트에 기록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는 일만으로도 이렇게 힘들다니! 그러나 사도의 말대로, 오직 말씀을 행하는 자만이 말씀을 기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이 순간에, 즉시 말씀을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죠. 이를 위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것은 정직한 '자기 불신'입니다. 이때 진지함이란 자신을 의심스러운 인물로 다루는 겁니다. 마치 상인이 신뢰할 수 없는 고객을 다루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다루십시오.

예를 들어 노름에 중독되어 있는 자가 노름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 노름을 끊을 수 있는 순간이 옵니다. 좋은 결심이 깨어나는 순간이 옵니다. 그는 어느 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절대 노름을 하지 않기로 했어. 나는 매일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해! 내 평생 노름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그러나 오늘 밤은 마지막이 될 거야."

여러분, 이 사람은 과연 노름을 그만둘 수 있을까요? 그러나 다른 노름꾼이 있습니다. 그는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말합니다.

"자, 너는 너의 평생 축복된 날에 노름을 할 수 있어. 그래, 넌 자유롭지. 그러나 오늘 밤은 노름할 날이 아닌 것 같아. 너는 오늘 밤만은 혼자 있는 편이 낫겠어."

여러분은 누가 노름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첫 번째 노름꾼은 자신의 욕망에 지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노름꾼의 결심은 욕망을 기만한 겁니다. 하나는 욕망에 속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을 속인 겁니다.

욕망은 순간에만 강렬합니다. 따라서 욕망을 이기기 위해서 평생을 약속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황을 뒤집어, "아니야, 오늘은 안 돼. 그러나 내일, 모레는 노름을 할 수가 있지"라고 말한다면, 욕망을 속인 셈이죠. 왜냐하면 욕망이 기다려야 한다면, 더 이상 욕망은 그 힘을 상실하죠.

따라서 욕망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은 두 번째 노름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씀을 듣고 즉시 잊지 않기 위해 말씀을 돌보는 방식입니다.

말씀을 지키겠다고 평생을 두고 약속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매일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는 일에 인생을 바치지도 마십시오. 상황을 바꾸어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평생 말씀을 지키겠다 약속할 수 없어.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 이 말씀은 내 평생 기억해야 할 것은 아니야. 이 말씀을 내일, 모레 행하지 못해도 좋아.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이 순간에 즉시 기억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당장 오늘 이 약속을 지킨다."

이것이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정직한 자기 불신입니다. '오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행동으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설교를 듣고 예배당을 나간다면, 침묵 가운데 이 결심을 간직하십시오. 즉시 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설교자나 설교를 비판하는 데 분주하지 마십시오. 아마 당신이 예배당에서 나와 설교를 분석하고 비판한다면, 설교를 즉시 잊어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설교를 기억하는 것은 말씀을 잘 잊어버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어떤 설교를 했든, 설교자와 설교를 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날 본문을 홀로 읽으십시오. 가능하면 큰 소리로 읽으십시오! 즉시 실행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10년이 지난 후 같은 본문을 읽고 있다면, 그때 역시 홀로 이 본문을 큰 소리로 읽으십시오. 그러면 이것이 또한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큰 소리로 읽을 때, 듣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뿐이니까요. 그때 더욱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일은 쉬워질테니까요.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