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름다운 감사의 계절, 추수감사절을 맞아

입력 : 2017.11.06 16:27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청명한 가을 하늘 맑고 푸르른데,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 사회는 혼탁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밤하늘 숲 속엔 셀 수 없는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며, 큰 별, 작은 별 구별 없이 하얀 구름을 머금고 저마다 자태를 뽐내는 짙은 가을밤의 풍경은, 온통 축제의 도가니로 타들어가는 아름다운 감사의 계절입니다.

그 아래 땅에는 가나안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산과 바다와 강, 그리고 더 넓은 대지를 품은 신비스런 겸손의 단풍들이 계절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표현할 수 없는 색소들을 뿜어냅니다. 세상을 온통 감동의 우산으로 물들인 채 하나님의 신비한 대작품 앞에 보답이라도 하듯, 살포시 가을 바람을 입에 물고, 오래 전 다윗이 양치기 하며 찬양했던 그곳을 향해 창문을 열고 귀를 쫑긋 하며, 목동들의 감사의 노래를 들어 보는 신비한 밤입니다.

교회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11월입니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May flower)호를 타고 북아메리카에 정착하여, 이듬해인 1621년 11월 추수를 마치고 3일간 축제를 연 데서 유래합니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경작법을 배워 농사를 지었으므로, 그곳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야생 칠면조를 잡아 나눠먹은 이후, 칠면조 요리는 추수감사절의 단골 메뉴가 되었고, 이날을 '터키 데이(turkey)'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전통을 이어, 1863년 10월 3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1월 26일 목요일을 국경일인 추수감사절로 선포했습니다. 이후 1941년 12월 26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법령으로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현재 대체로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인 11월 셋째 주일에 감사절을 지키고 있으나, 범교파적으로 정해진 날은 없고, 대개 11월 첫 주부터 마지막 주 사이 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마다 때를 잊지 않고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지만, 감사절에 대한 참뜻은 사라진 채 오로지 헌금을 많이 하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축제의 행사인데, 오직 교회 재정 수입에 큰 역할을 감당하는 절기로 여기는 것입니다. 감사절의 참뜻은 외면한 채, 그저 연중 행사로 자칫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수입'으로 간주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약속의 가나안 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깊고 짙은 내면의 감사의 창을 열 때, 바로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에서는, 기도하는 생활습관만이 축복의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사명을 감당하시는 분들을 위한 주님의 말씀이라 생각이 됩니다.

자칫 하면 자만심과 위선적인 태도로 쉽게 불성실해지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혹에  빠지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준엄하신 경고를 듣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목자들과 지도자들에게 경고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의 똑같은 잘못을 꾸짖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것을 자랑하며 교만의 유혹에 빠져 실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변에서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실천이 다름을 많이 목격합니다. 정치꾼들, 부패한 공무원들, 잇속만 채우는 기업인들, 말뿐인 성직자와 장로들이 언행일치가 되지 않아 사람들을 고통 속에 살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 저 자신마저도 언행일치가 되지 않아,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반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수없이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형제를 섬기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수히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겸손한 마음이 솟아오릅니다. 이웃을 한 형제로 여기며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게 됩니다. 이런 삶의 전형적인 모습은 바로 고요한 인내와 기도의 후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후원의 결과는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실한 기도 후에는 반드시 응답의 열매가 맺혀지지만, 때로 어떤 성도에게는 응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하여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었다 해서 하나님을 욕하고 배신하며, 감사를 버려서는 안 될 것임을 하나님은 욥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수많은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처럼, 주위 환경을 이용해 행동하기 좋은 모습으로 유혹할 것입니다. 문제는 평소 우리 생활입니다. 앞으로 여러 어려움이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나 실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 때, 비로소 신앙생활 속에 마주하는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이겨낼 믿음과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어려움과 문제들이 있더라도 지나고 보면 나에겐 간증이 될 수 있고, 또한 시험을 이긴 후 돌아오는 그 기쁨은 말로 표현을 다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처지를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오래참음의 기도 생활과 감사와 찬송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이웃을 위해, 혹은 주님을 위해 교회 안에서 옳은 일을 하다가, 내 처지가 빈약하고 누가 보더라도 자신이 너무나 연약한 것 같아 스스로 자신을 나무라며, 그만 포기하는 현상들을 보면서 실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신앙인들이 성경을 오해하거나, 급하게 뭔가 이루려는 조바심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들입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행함이 없습니다. 늘 기도로 무장하고 마음과 입술로 뜨겁게 감사하는 자세가 미흡함을 나 자신부터 깨닫고, 오늘도 호흡하고 있음을 감사하는 생활이 늘 익숙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야 외로운 이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그 환경에 지배를 당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자세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고, 늘 기도와 찬양으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이웃을 돌아보고 실천합시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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