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기독문학세계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밥 딜런이 20대에 접어든 1960년대의 미국은 F.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1896-1948)가 20대였던 시절 타락했던 위대한 미국의 꿈을, 재건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난다. 피츠제럴드가 '재즈 시대'라 불렀던 미국의 1920년대는 '광란의 시대'라 할 만큼 번영과 환락이 극에 이른 시대였다.

당시 겨우 스물 세 살의 나이로 미국 문학의 작가의 반열에 들었던 피츠제럴드는 그 시대를 '기적의 시대, 예술의 시대, 풍자의 시대'라 보았지만, 시대의 혼란에 대해서는 이렇게 고발한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때문에, 시대적 불안감은 안정적인 황금빛 포효에 가려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더 화려한 파티와 더 큰 공연과 더 거창하게 높아가는 빌딩에 있었고, 도덕규범은 더 느슨해져 시대정신은 파티와 자동차외 찰스턴 춤으로 대변되었다."

이렇게 타락한 미국의 꿈에 대한 반성은,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사회적 운동으로 시작된다. 경제적 풍요로 강대국이 된 미국 사회에서 성장한 딜런의 세대는, 높은 교육수준 덕분에 부모 세대가 강조하던 물질만능주의를 거부할 신념을 지녔고, 기존의 권위에 대항하는 반 문화 운동을 펼칠 용기가 있었다. 또한 정치적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1917-1963)의 등장도 미국 사회의 이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당시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는 위대한 미국의 꿈을 재건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성지였다. 밥 딜런도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그리니치 빌리지와 인연을 맺는다. 그는 행크 윌리엄스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으로서, 고등학교 시절 이미 로큰롤 밴드를 조직하여 여러 번 공연을 했다.

그러나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로큰롤이 보여주는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우디 거스리의 포크 음악과 흑인 전통 블루스로 관심을 돌리면서 밥 딜런이라는 예명으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두고 1961년 자유롭고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성지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와 클럽을 오가며 부른 그의 노래는, 이듬해 첫 엘범 <밥 딜런 (1962)>이란 이름으로 태어난다.

그의 예명 '밥 딜런' 은 또 한 사람, 영국 웨일스의 시인 딜런 토머스((Dylan Marlais Thomas, 1914-1953)를 생각나게 한다. 딜런(Dylan)이란 웨일즈어로 '물결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는 딜런 토머스의 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을 사랑했고, 이 시는 밥 딜런의 젊은 혼에 불을 지핀다. 다음은 시의 한 부분이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밥 딜런
▲영국 가디언지 보도화면 캡쳐.
시인은 어두은 밤이 다가왔을 때, 어둠과 맞서서 분노하고 치열하게 싸워야한다고 외친다. 어둠은 빛이 꺼져감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선한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도,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 한다.

비록 이 시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위해 지어진 것이지만, 토머스 딜런은 이 시를 통해 꺼져가는 생명의 시간을 , 그리고 전후 세계 시대의 어둠을 상징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밥 딜런은 웨일스의 시인 딜런 토머스와 이렇게 연이 닿아있던 것이. <계속>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