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교도소
▲이 표지석을 따라 약 1km를 더 가면 소망교도소가 있다. ⓒ김진영 기자
소망교도소
▲소망교도소의 본관 ⓒ김진영 기자
드높은 가을의 하늘이 유난히 파랗던 10월의 어느날, 이파리가 여무는 가로수를 따라 오른다. 자그만 촌락을 뒤로 하고 저 높이 몇 개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외룡리에 있는 소망교도소. 지난 2010년 12월 1일 문을 연 이곳은, 아시아 최초의 민영교도소다. 명성교회를 중심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사랑의교회 등 한국교회가 힘을 합해 세웠다.

국내에 있는 교도소 숫자는 모두 53개. 소망교도소를 빼면 전부 국영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여러 이유로 민간이 영리를 목적으로 교도소를 운영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런 가운데 교정시설의 노후화, 과밀수용 등이 제기됐다. 소망교도소의 설립은 비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려는 첫 시도였다. 현재 약 400명을 수용하고 있고, 113명의 직원들과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을 돌보고 있다. 설립 후 수용자가 해마다 늘어 지금은 정원을 모두 채운 상태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건, 어떻게 하면 '죄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낼 것인가 였다. 어쩌면 '죄인의 종교'인 기독교야 말로 교도소 운영에 최적화된 주체일지 모른다는 생각..., 소망교도소의 설립에는 그런 신념이 바탕에 있었다. 인간을 진짜 교도(矯導; 잘못을 바로잡아 인도함) 할 수 있는 건 기독교 정신,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이다. 선례가 없다. 스스로 방향을 정해 길을 내야 한다. 소망교도소의 지난 7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심동섭 소장은 "그야말로 첫 민영교도소여서 법적 지위의 확보와 설립 정신의 구현, 자율성의 보장 등 여러 면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라며 "정부도 민간도, 모든 눈들이 소망교도소를 향해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첫 예배의 자리, 눈물로 예수를 만나다

수용자들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8시부터 일과에 돌입한다. 크게 두 가지다. 절반은 공장으로, 나머지 절반은 학교로 향한다. 공장에선 목재와 금속을 가공하고 출소 후 사회적응을 위한 직업훈련 등을 받는다. 요즘 유행하는 바리스타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학교는 인성, 예능, 검정고시 등을 위한 교육의 장이다. 그렇게 일과를 끝내는 시간이 오후 4시 30분. 바로 저녁밥을 먹고 오후 5시 45분, 각자의 방으로 향한다. 이후 군대의 점호와 같은 인원점검이 있다.

소망교도소
▲교도소 철문 옆에 ‘소망의 동산 소망의 꽃이 피어납니다’라는 글과 그림이 붙어 있다. 소망교도소에는 이런 것들이 군데군데 있다. ⓒ김진영 기자
소망교도소
▲교도소 안에 있는 정원. 직원들이 직접 꾸몄다고 한다. ⓒ김진영 기자
하루의 대강이 이렇다. 여느 교도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도 하고, 예배도 드리지만 다른 교도소에도 있는 것들이다.

가장 큰 차이라면 '공기'일지 모른다. 기자의 말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한 수용자의 고백이다. 법정에서 바로 구속돼 국영 교도소에 얼마간 있다 약 7개월 전 이곳으로 왔다는 그는, 첫 느낌을 이렇게 기억했다. "공기가 달랐다"고. 무언가 밝고 따뜻했던 분위기..., 이것이 그로 하여금 마침내 숨을 쉬게 한 까닭일까? 아무튼 그의 표현은 그랬다.

예수를 모르던 그는 수감 후 지인에게서 "예수를 믿어보라"는 권유와 함께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소망교도소의 존재를 듣게 된다. 어린 두 아들과 처,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그의 마음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으로 캄캄했던 밤에, 누군지 모를 이에게 그는 기도했다. 그 응답이었을까? 소망교도소로의 이감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 드려본 예배.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예수를 만나고 기독교인이 됐다.

이날 만났던 다른 수용자는 곧 출소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얼굴이 밝아 보였다. 그는 원래 기독교인이었지만 제대로 된 신앙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 죄를 짓고 형이 확정되던 순간, 그는 이것이 '죄의 열매'라는 걸 직감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를 떠나 있던 지난 날이 깊은 후회로 밀려왔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죄책감, 전과자라는 낙인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소망교도소에서 다시 주님을 만나고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그는 특히 '번호'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언제나 변함없이 불러준 교도관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도 나도 모두 '회복 중인 사람'

소망교도소 유정우 연구관은 "브라질 민영 아파키교도소에 가면 수용자 명찰에 포르투갈어로 '리쿠페란도'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회복 중인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수용자만 아니라 교도관이나 직원들 명찰에도 똑같이 적혀 있다. 결국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회복 중인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망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만나며 그들과 내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과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문하곤 한다"며 "따지고 보면 복음은 아예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저지른 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 답이 아닐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을 바꾸는 건 의심과 정죄, 판단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일 것이다. 소망교도소가 그런 교정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망교도소
▲소망교도소 재소자들이 만든 각종 수공예품들 ⓒ김진영 기자
소망교도소에선 매월 10여 명이 출소하고 그 만큼이 다시 입소한다. 지금까지 80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재범률은 전체 교도소 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소망교도소로의 이감을 원하는 재소자들이 꽤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