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더 이상 상처에 속지 않는다
난 더 이상 상처에 속지 않는다

앤 보스캠프 | 손현선 역 | 사랑플러스 | 304쪽 | 14,000원

못이 박힌 각목을 잘못 잡다가 다친 경험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못을 다 빼냈다고 생각했는데, 한두 개가 아직 박혀 결국 손을 다치는 경우들이 있다.

혹은 아구를 손질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처음 아구를 접하는 이들은 아구 표면에 있는 분비물로 인해 심하게 미끌거리는 것만 신경쓰다, 몸에 있는 가시로 인해 손을 베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삶에 가시가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과 교제하다 보면 그들과 접촉하는 이들도 다치고, 그들 자신도 다시 상처를 입곤 한다.

학창시절 다니던 교회 중고등부는 50-60명 정도 학생들이 있었는데, 우연찮게 학교에서 이른바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들이 적잖이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부 학생들 중에는 그들을 통해 술담배를 알게 된 이들과, 품행제로 위험 수위 경계선 상에서 왔다갔다 하는 애들이 여럿 생겨, 교회 어른들은 중고등부를 못마땅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겉으로는 껄렁껄렁하고 영 불량학생 같은 이들이, 가까이 다가가 보면 마음과 정에 굶주리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착하디 착한 이들이 태반임을 보곤 했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상담하다 보면 그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허우적대고 방황하는 모습을 여럿 보았고, 내 나이로는 그 문제들을 제대로 도울 수 없어 나 나신의 마음도 짓눌려지곤 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문제 학생일지 모르지만, 가정적이든 주변 환경의 문제로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대못 한두 개가 박혀 있을 뿐이었고, 마음에 커다란 상처와 염증이 있어 그것을 누군가 건드리면 폭발하여 터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후 살아오면서 주변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마음 한켠 커다란 상처와 대못 한두 개쯤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본다. 평상시에는 인격적이고 그런 사람 보기 드물 정도로 착하디 착하지만, 내면의 숨은 상처를 우연찮게 누군가 건드리면 강한 분노와 증오로 싸움을 일으키고 사고를 내고 만다.

또 어떤 이는 그것을 상대에게는 쏟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허물어뜨리다가,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도 보게 된다. 결국 문제는 그 상처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지는 것을 본다.

최근 우연찮게 읽은 두 책은 그런 상처를 접근 하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 준다. <난 더 이상 상처에 속지 않는다>와 <이혼일기>다. <이혼일기>는 상처를 다루거나 치유하려는 책보다는 이혼이라는 사건 전후 속에서 작가의 생각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에세이다.

공감 가는 내용도 많고 인상적이지만, 근원적 측면에서 이 책은 자신의 상처나 칼을 뽑는 것보다는 그 꽂힌 칼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기에 어떤 면에서는 치유는 없어 보인다(이 책이 좋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비슷한 경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저자는 그의 걸어온 과정과 고민을 통해 위로하고 일으켜 세울 뿐 아니라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돕는다).

십자가
ⓒPixabay
하지만 앤 보스캠프의 <난 더 이상 상처에 속지 않는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아와 삶의 폐허 속에서, 치유와 그 치유된 힘으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어릴 적 후진하는 트랙터에 여동생이 짓이겨 죽는 사고를 경험하고 또 자신도 깨어진 유리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꿈꾸었을 정도로 삶이 망가졌던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치유되어짐을 고백하고 그것을 나누는 이야기는, 신학적인 어떠한 설명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치유의 힘을 실제적으로 잘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교리적이나 논리적으로 아무리 잘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지식적 차원에서 그칠 수 있지만, 저자는 이것을 자신의 부서짐과 회복, 그리고 나눔을 통해 무엇보다도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것 같다. 상처의 치유는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실감나지 않는다. 약을 바르니까 낫고 치유되어질 뿐이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이다. 상처투성이로 죽음과 같은 삶을 살았던 이가 내 눈 앞에서 살아난 모습으로 회복된 것을 본다면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십자가를 통한 변화는 설명이 아니라 체험이다.

저자는 그런 치유를 그 자신과 연결 지어 설명하고, 또 그 체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 그 체험을 경험한 이들이 어떻게 상처 입은 세상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상처와 문제에 대해 세상은 그 상처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과 상처준 이를 대항하는 법을 가르쳐 줄지는 모르지만, 정작 그들과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거나 그들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을 때가 많다. 그 상처에 대해 나름의 논리적 설명은 있어도, 그 상처가 치유되고 미궁 같은 상태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은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복음은 상처에 머물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복음을 통해 우리가 당장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상처난 몸으로 아직 상처 중에 있는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세상은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은 한정적이다. 사랑을 노래하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랑을 노래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비록 자신이 상처입고 대못이 하나 박혀 있지만, 그 속에서도 다른 이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며 돕는다.

비록 자신의 상처로 인해 사랑하는 아이에게도 그 상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치유한 그리스도를 통해 그런 상처 가운데서도 다른 이를 돕는다. 또 자신도 상대방을 믿고 상대의 사랑에 자신을 맡긴다.

저자는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팔목에 볼펜으로 그은 십자가를 묘사한다. 아마 그것은 어릴 적 그가 유리조각으로 그었던 자해와의 대조를 위함인 듯하다. 그것을 통해 부끄러웠던 자신의 망가짐과 상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덮어져, 이제 자신의 상처가 남들을 해하거나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도록 이끄는 일종의 메신저와 돕는 손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교리나 논리를 넘어선다. 이것은 교리나 논리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활자화된 교리에 생명력을 넣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도면으로는 도저히 그 집을 알 수 없었던 것을 3D로 만들어 입체화시키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책이라 말하고 싶다. 그저 책 한권 읽고 지적 배부름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을 움직여 변화와 치유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멈출 책이 아니라 여러 번 곱씹으며 묵상해 볼 귀중한 책이라고 할 만하다.

추신: 책을 읽다가 종종 괜찮은 책을 만나 남에게도 읽기를 권하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선물한 책이 몇 권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목록에 들기에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유진 피터슨과 필립 얀시가 이 책에 쏟은 찬사는 사실이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