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애자인 A씨는 혹시 자신이 에이즈(AIDS)에 걸린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확인하고픈 마음에 지역 보건소를 찾았다. 피를 뽑은 후 이름 란에는 '토끼'라고 적었다. 신분증도 실명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 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불안한 시간이 흘렀다. 불행히도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감염자라는 사실은 오직 그만 알고 있다.

치료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찮다. 한달에 드는 약값만 600만 원. 사실 에이즈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는 치료제는 없다. 다만 그 증식을 억제할 뿐이다. 그래서 평생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 치료비 전액을 정부가 세금으로 부담한다. 혜택은 이것만이 아니다. 혹시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할 경우, 그 비용 역시 정부가 낸다. 간병인을 써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 요양병원에 몸을 맡겨도 그렇다. 

염안섭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현장에서 에이즈의 실태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염안섭 원장 ⓒ김진영 기자
이상은 국내 에이즈 환자들을 7만번 이상 진료해 온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이 1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한 발언을 재구성한 것이다. 최근 이른바 '조건만남'을 통해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한 10대 소녀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을 안겼다. 이를 계기로 에이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급기야 이날 국감 현장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염안섭 원장이 이날 지적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예로 든 것처럼 우리나라 보건 당국의 에이즈 예방 정책이 지나치게 '복지'에만 치우쳐 '에이즈 확산 방지'라는 애초의 목적을 오히려 놓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구체적인 감염 경로와 실태를 제대로 교육·홍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복지'엔 치중하면서도 '예방'에는 소극적

염 원장에 따르면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에게 우리나라처럼 약값과 같은 기본적인 치료비 뿐만 아니라 간병비 등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금액까지 전액 지원하는 나라는 없다. 이 같은 복지적 혜택을 주는 다른 질병이 없다는 점을 봤을 때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정책이라는 게 염 원장의 주장이다.

보건 당국은 유독 에이즈 감염자에만 이런 혜택을 주는 이유에 대해, 그렇게 해야 비용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에이즈 환자가 발생하지 않고, 또 그래야 에이즈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든다. 그러나 염 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리 있지만,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 문제, 특히 그런 전폭적 지원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그런 정책을 고수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부작용'은 바로 에이즈 감염자들의 소위 '도덕적 해이'다. 염 원장은 이날 국감 증언 도중 에이즈를 주제로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오고간 대화를 소개했다. 콘돔 없이 성관계를 가질 경우 에이즈 감염이 걱정된다는 물음에, 설사 감염돼도 나라가 다 책임져 주니 걱정말라고 답하는 식의 대화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염 원장이 보건 당국의 이런 정책을 비판하는 이유는, 에이즈가 주로 남자 동성애자들 사이의 성관계에서 발생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일반에 적극 알려, 동성 성관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야 말로 에이즈 확산을 원천적으로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에도, 보건 당국은 마치 '사후약방문'처럼, 이미 감염된 자의 관리에만 신경쓰는 소극적 예방책만 편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최근 발표한 '2016년 HIV/AIDS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에이즈 감염자(HIV/AIDS)의 수는 모두 1,199명(내국인 1,062명 외국인 137명)이었다. 이중 남성이 1,105명, 여성이 94명으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누적 통계 역시 에이즈 감염자 총 11,439명(사망자 제외)으로 이중 남성 10,618명(92.8%), 여성 821명(7.2%)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비는 12.9:1이다.

익명검사, 계속 해야 하나?

염 원장은 일명 '익명검사'의 문제점 또한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에이즈 감염 여부를 학인하는 과정에서 이를 의뢰한 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차별 및 편견에서 의뢰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에이즈 감염자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함이다.

염 원장은 "그런데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인지한 자가 치료를 결심한 뒤 약값을 지원받으려면 어차피 신원을 밝혀야 한다. 이 때부터는 그가 국가 관리 시스템 안에 들어온다. 물론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예방법에 따라 그 사실을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는다"며 "그러니까 검사를 받고 약값 등 치료비를 타기까지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만 익명을 보장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제는 감염 사실을 알고도 치료를 포기한 자가 있을 경우다. 익명검사를 받은 그를 그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만약 그가 다른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져 에이즈를 전염시키면, 보건 당국은 그 경로를 파악할 수 없다. 감염 사실을 알고 치료비를 지원받아 국가 관리 시스템 안에 들어오는, 비교적 짧은 그 기간 동안의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이런 위험성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한편, 이날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나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종필 의원(자유한국당)은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국은 에이즈 감염자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심지어 작년 한해 에이즈 환자 치료에 쓰인 국민 세금만 1,000억원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에이즈 감염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 당국은 철저히 원인을 분석하고, 내실있는 예방교육과 캠페인 등 인식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