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스토프, 정의와 사랑이 결합된 신앙을 위한 탐구

입력 : 2017.10.12 17:27

[Cross Review 1] 그의 대표작 <사랑과 정의>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이승용 간사님의 '책과 사람,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편집자 주

사랑과 정의
▲<사랑과 정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홍종락 역, IVP, 520쪽.
월터스토프의 대표작 <사랑과 정의> 출간 기념 단상

국내에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로 널리 알려진 기독교 사상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의 제대로 된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사랑과 정의: 정의로운 사랑은 가능한가>가 그 책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30년 넘게 활약한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 사상가다. 이러한 표현이 과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학문적 여정의 초기인 1970-80년대에는 주로 인식론적 철학을 깊이 연구했다.

칼빈 칼리지 출신답게 젤레마와 스톱 교수에게 영향을 깊이 받으면서 학문적 동료 알빈 플란팅가와 함께 개혁파 전통과 성경적 근거에 입각한 이론 작업에 매진한다. 신학, 미학, 존재론, 인식론, 정치 철학, 종교 철학, 형이상학 및 교육 철학 등 매우 광범위한 그러나 서로 연결된 영역에서 치밀하게 탐구하면서 수십 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이미 1990년대 초기부터 미국 철학회, 미국 기독교 철학회 회장뿐 아니라 와일드 강좌, 기포드 강좌에 초빙되는 등 영미권 학계에서 정점을 찍기도 했다. 칼빈 칼리지 뿐 아니라 복음주의 사상가의 학문적 수준을 높인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평생 자신 앞에 놓인 주제를 놓고 씨름한 노장의 사상가, 그가 삶의 경험과 연결해 최근 연구를 집중한 주제가 바로 '정의'다.

이번에 역간된 <사랑과 정의(Justice in Love)>는 원서가 2011년에 출간된 책으로, 앞서 2008년에 펴낸 <정의: 정당한 것들과 부당한 것들(Justice: Rights and Wrongs)>의 후속작이자 기독교적 정의(와 사랑의 관계)를 깊이 파헤쳐 본 대표작이다.

Nicholas Wolterstorff
▲<사랑과 정의>의 원작 《Justice in Love(2011)》, 앞서 발표한 《Justice: Rights and Wrongs》.
그는 일찍이 실천지향적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1981년 자유대학의 카이퍼 강연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강연을 엮어낸 책이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 자본주의 사회와 신학적 지형도를 탁월하게 분석·융합해 개혁신학과 해방신학의 접점이 가능함을 모색하면서, 가히 '원조급' 세계 기독교의 공공신학적 비전을 제시한 걸작이지만, 책에서 정의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랑과 정의> 출간은 월터스토프의 학문적 역량이 무르익었을 때 집중적으로 다룬 정의론에 관해, 국내에 소개된 한 권의 이론서다(2013년 자신의 정의론 여정을 에세이 형식을 빌려 요약해 펴낸 《Journey toward Justice》가 복있는사람에서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로 출간되기도 했다. 두 권을 함께 읽으면 보완되는 지점이 많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
월터스토프는 처음부터 존 롤즈의 정의론을 과감히 비판하면서 기독교 전통에서 길어낼 수 있는 정의를 살펴보았는데, 이 책 <사랑과 정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 전통 내에서 오랫동안 오해받았던 사랑과 정의의 문제에 집중한다.

특히 신약의 사랑이 구약의 정의를 대체한다는 니그렌의 고전적 아가페주의적 방식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의와 상반된다고 여겨지는 여러 지점을 다룬다. 또한 용서의 개념이 어떻게 정의와 연결될지를 최신 성서신학까지 살펴보면서, 성경적 '의(righteousness)' 개념을 '정의'로 연결해내는 칭의론을 설득력 있게, 그러면서도 다소 도발적으로 제시한다(도발적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그는 고전적 칭의론을 전면 수정하지 않고는 기독교적 정의를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많은 독자들이 <사랑과 정의>를 통해, 소위 은혜, 용서, 사랑을 강조하며 정의는 그리스도인의 일차적 의무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기독교(복음주의) 신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표현은 곧 정의로우신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며, 구약과 신약, 교부 전통에서 칭의와 결합된 정의의 하나님을 다시 길어내 새롭게 다듬어낼 수 있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사랑과 정의> 서론은 아래 문장으로 시작한다. 제대로 탐구하기에 아쉬움 없는 책이 나와 반갑고 기쁘다.

"서구인들의 문학과 철학과 신학이 '사랑과 정의'라는 주제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었다. 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주제가 우리의 논의를 지배한 것은 고대로부터 전해진 두 포괄적 명령, 곧 정의를 행하라는 명령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명령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랑과 정의를 주로 갈등이라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결코 불가피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있다. 소위 둘 사이의 갈등에 해당하는 사례 중에는 불의한 사랑의 사건과 무정한 정의의 사건, 그리고 좀더 깊이 따져 봐야 할 사건도 있다.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정의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고, 정의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의를 저지르는 일이 되건 말건 사랑을 선택하고, 어떤 이들은 무정한 일이 되건 말건 정의를 선택한다.

이 책에서 나는, 바르게 이해하면 두 명령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둘이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의-명령에서 정의를, 또는 사랑-명령에서 사랑을, 또는 둘을 모두 오해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이들이 갈등을 보았다고 생각한 곳에서 나는 조화를 보여 주려 한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저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nasher.duke.edu
우리는 어려운 사상들과 씨름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실제 삶에서의 정의를 위한 실천과는 동떨어진, 그저 지적 유희를 위하거나 아는 척 떠벌리기 위한 딱딱한 이론서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모두가 이 책을 통해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으며, 당연히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사상들과 씨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형성하는 수많은 내용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존 이론적 장치들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습속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의 영역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따라서 정의가 메마른 신앙과 교회에 지쳐 떠나려는 이들, 한국에서의 정의로운 삶에 어떻게든 참여하려는 평범한 사람들과도 연결되는 저자와 책일 수 있다(그는 제3세계 온두라스에서의 경험과 충격으로 정의의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매주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보다 근본적인 주제를 진지하게 다뤄주길 바란다고 생각한다. 경험적으로도 알게 되었고, 어린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교회에서 어려운 책들로 공부하고, 그 내용이 녹아든 설교를 전하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 머리만 커진 신도를 양산하는 역사적 과오를 똑같이 범하게 될까? 그럴 위험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야말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탐구하는 길을 제시한다고 고백하는 단 한 권의 책의 공동체이며, 모두가 공부와 어울려 삶을 즐기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목회 현장을 (아주 조금) 경험해봐서 알지만, 그래서 이런 말이 쉽지 않다는 것 알지만, 그럼에도 지성과 영성이 하나라는 일원론적 사역과 교회를 꿈꾼다(신자들의 독서 행위와 신학 등 학문 공부 분위기를 폄하하는 데에는, 우선 현실적인 괴리감과 모순을 전제로 하더라도, 이원론적 사고를 전제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며 자유로운, 나이와 성별을 초월해 모두가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는 교회의 가장 기본 밑바닥을 지탱하는 데에는 여전히 탐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의 노력이 닿아 있다고 믿는다. 기본 개념 없이 읽기 무척 어려울 테지만,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혀 정의와 사랑이 온전히 결합된 신앙이 새롭게 꽃 피길 바란다.

이승용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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