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사진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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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힘든 것이나 분노를 견디는 일은 어리석고 손해가 나는 일이 돼 버렸다. 너무 참으면 병이 된다는 말도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세상에서는 참지 말고 발산하라든지, 분노하지 않는 이성이 불합리한 세상을 가져오는 것이니 분출하고 폭발시키라는 식의 메시지들을 무분별하게 많이 들을 수 있다.

​물론 항거하고 외치고 개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내의 미덕까지 폄하해서는 안 된다. 요즘 우리의 삶을 보면,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아우성이고 도무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 만연돼 있다.

이것은 스피드 시대를 추구한 인간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과응보의 현실인데, 욕정과 분을 참지 못해 생기는 수많은 악한 범죄들과도 직면할 수 있음을 인간이 늘 간과한 결과라 하겠다. 망각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스피드 시대이다.

부부생활과 연애에도 참는 일은 많이 줄었다. 지금 이 시대에는, 그 옛날 일주일씩 기다려서 받는 우체국 소인 찍힌 편지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약속 장소에 못 나가면 하염없이 기다리다 나중에 집에 가서나 겨우 통화로 확인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느린 데이트,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 전화를 했지만 집에 없어 통화를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아쉬움 같은 것들은 옛날 배경의 영화에나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보다 상대방을 더 진지하게 이해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수분 내에 답이 안 오면 답답해서 재촉하고, 약속 장소에 나타날 때까지 계속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이 시대와는 달리, 기다리고 참고, 또 다음을 기약하는 그 여백에 상대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채워졌을 것이다.

사랑의 안정적 결실에는 인내가 필수이다. 인내하지 못해서 생기는 연인간의 다툼은 비일비재하다. 사랑 싸움은 상대방이 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서운함이나 원망, 나에 대한 소홀함 등이 원인이다. 이런 감정들은 가까이 계속 부대끼면서 추궁하거나,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툼을 일으키면 해결되지 않는다. 둘 중 누군가는 기다리고 참아줘야 일이 해결된다.

조금 지나면 오해가 풀릴 일을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 연인이나 부부 간에는 무척 많다. 더러 싸움도 필요하지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불필요한 낭비나 손실은 잠깐의 화를 참지 못해 터뜨리는 분노, 마음속에 떠오르는 비난을 자제하지 못해 험한 말을 내뱉는 경솔함, 얼마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마음을 바꾸면서 생기는 오해 때문에 많이 발생한다.

남녀 간의 이별도 결국은 그런 일이 발단이 되고 누적되어 곪아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경은 인내에 대해 여러 곳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그 중 다음 말씀은 성도의 덕목에 관한 것이지만, 연애와 남녀관계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하다.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롬 5:3-4)".

남녀 사이의 환난과 고통은 시시각각 다가온다. 이럴 때는 감정적 대처보다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하고 견뎌 보면 오해도 풀리고 관계도 개선된다. 이런 성공의 경험들이 서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우리도 잘 지낼 수 있구나, 오래도록 함께해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성급함은 사랑을 그르친다. 섣부른 고백이나 한 템포 쉴 줄 모르는 분노, 자초지종도 듣지 않고 오해해버리는 경솔함..., 이런 것들이 사랑을 갉아먹는 요소가 되고, 그것은 결국 이별과 큰 상처로 이어지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큰 비극은 어쩌면 두 가문의 불화가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서 최면제를 먹고 잠든 연인을 보고 바로 자살하는 로미오의 성급함인지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의 결실을 앞두고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사랑의 위기가 다가올 때, 감정의 폭풍우가 몰려올 때, 사랑에 대한 투자라 생각하고 '시간'이라는 묘약을 조금만 사용하라. 연인이나 배우자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줄 수 없다면, 우리의 사랑은 정말 하찮은 것이다.

무언가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면, 잠깐 멈춰 서서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사랑하는 이를 깊이 돌아보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왜 그토록 성급했는지.... 후회할 때면, 이미 당신 곁에 그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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