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의 논문 '종교개혁의 은혜 교리(은총론): 구원의 확신과 소명의 회복'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지상강좌]라는제목으로 연재합니다.


제4회 종로포럼
▲김재성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3. 세상에 대한 긍정적 관점과 비판정신

훈련을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전진해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빛을 비춰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죄인을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은혜를 입은 성도로서 살아가는 인생관 전체를 재구성하였다. 은혜의 선물을 받은 성도들이 구성원이 되어서 건설한 세속사회, 세상과 정부와 문화 예술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세상과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자애로우심이 베풀어주신 선물"로 환영을 하면서, 기쁨의 대상이라고 보았다. 중세말기 로마 가톨릭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관점으로서, 종교개혁자들이 세상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은 교회 안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는 기독신자의 생활에 대한 교훈으로 확장된 것이다. 타락한 피조물들의 세상에 질서를 회복하게 하도록 성도들이 참여하여 고쳐나가고 자극하는 것이다.

필자는 헨델의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라는 웅장한 찬양곡을 자주 듣고 있다. 맑은 트럼펫이 고음을 내는 부분을 필자는 아주 좋아한다.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왕의 왕, 주의 주라고 외쳐 부른다. 모든 청중이 일어나서 경청한다. 만왕의 왕 앞에서 감히 앉아있을 수 없다. 이런 찬양곡은 하늘나라에서도 천사들이 연주할 것이다.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찬양곡에서도 동일한 감동을 느낀다. 찬양 음악은 은혜를 입든 자들에 의해서 빚어진 것들이요, 창조적 노력의 산물이다.

개혁신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긍정적 관점과 적극적 참여론을 제공하였다. 중세시대에 스콜라주의에서는 기독교 교리가 개념적인 신학이론으로 그치고 말았는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는 영혼의 고통에 짓눌려 있던 자들의 고뇌를 풀어주게 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느냐로 고심하던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복음으로 주어지는 의로움에 근거한 구원을 신뢰하게 되면서, 신자들은 일상의 삶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확신마저도 갖게 된 것이다.

칼빈은 타락한 피조물이 건설한 세상 문화와 도시 문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자 창조하신 "극장"이자 "무대"라고 보았다.

세상은 마치 하나의 극장과 같아서, 하나님의 영광이 관객들에게 펼쳐지고 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과 지혜를 펼쳐 보이신다. 칼빈의 창조론에서 바라본 세상 질서는 타락한 피조물이 건설한 죄악된 세상이라서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세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타락한 자들의 세상이라도 회복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려주셨던 창조의 질서는 모두 죄로 인해서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어서 회복과 재창조의 소망이 살아있듯이, 인간사회와 문명도 역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11편 4절에 대한 주석에서, 칼빈은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처음 세우셨던 그 질서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점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영광이다"고 풀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모여서 구성하는 사회에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공동체와 지도자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베풀어주시기에 여전히 세속적인 사회라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관점은 히포의 어거스틴이 남긴 사상과 관련되어져 있다. 어거스틴은 로마 제국주의 시대가 무너져 내리는 공포를 직접 체험하면서,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끼친 죄의 효과를 명쾌하게 규정하여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인간의 조직은 죄로 인해서 손상되고 왜곡되었으며, 단순히 개인 차원의 고백만으로는 무너진 질서를 회복할 수 없다. 죄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되었다. 어거스틴은 칭의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관계의 틀을 올바르고 똑바로 회복시키는 일이 제일 먼저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어거스틴과 칼빈에게서 공통적인 점은 이원론의 극복이다. 개인 차원의 칭의와 공동체 차원의 칭의가 각기 따로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타락한 인간의 질서를 바로 잡으면서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인간성을 재창조하시고, 만물의 창조 질서가 회복되도록 사용하신다.

세상에서 창조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실제적으로 무슨 역할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었다. 이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들은 인간 사회를 하나님의 뜻에 따르도록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최전방에서 뛰어보려는 추진력을 갖추게 되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성도들은 결코 세상 속에서 몰락해서는 안되는데, 기독신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정신이 있어야하고, 세속 문화에 함께 휩쓸려가지 않도록 한걸음 떨어져서 평가할 수 있는 비판적 태도가 필요하다.

종교개혁자들은 세상을 향해서 선지자적인 안목으로 비판적 설교를 서슴지 않았다. 칼빈은 "구별은 하되, 분리시키지는 않는다"는 원리를 자주 선포했다. 각기 독특성은 인정하지만, 결코 따로 분리시켜서 떼어버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아가서 일하는 것이다. 돈에 휩쓸려서 부자가 되려는 욕망으로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독신자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자 세상에 나아가서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자연 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사람이 칼빈이다. 피조된 자연만물을 더욱 자세히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천문학, 의학, 자연과학이 장려되었다. 벨직 신앙고백서 (1561)에서도 자연만물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반영되어져 있다.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였고, 신부로서 성당에서 사역하다가 성경을 통해서 개혁적인 비판 정신을 터득하였다. 루터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던 독일 동북부에서 봉건 영주의 지배체제 아래서 사역을 했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근대 도시 사회에서 새로운 행동방식과 신앙적인 생활을 주도해 나갔다. 츠빙글리는 쮜리히에서, 마틴 부써는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바디아누스는 성 갈렌에서, 삐에르 비레는 베른에서 종교개혁을 지도해 나갔다.

특히 스위스 도시들이 종교개혁에 앞장을 섰던 것은 지리적으로 특수한 자유도시가 급속히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다. 스위스에는 절대왕정이나 봉건 군주가 없었고, 로마 가톨릭 주교들이 다스리던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차츰 도시마다 귀족들이 이끄는 도시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개혁자들의 도움으로 신앙적인 통일을 도모하게 되었다. 교회는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유익하고도 결정적인 원리들을 제공하였고, 세상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요람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각 도시 지역에 있던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이었다가 회심한 종교개혁자들은 새로운 형식의 삶을 추구했다. 개인적인 신앙의 고민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공동체 안에서도 필요하였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도시 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다. 도시의 종교개혁자들은 결코 고립된 수도원 운동을 강조하지 않았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이 세상을 먼저 있는 그 모습대로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시켜야만 한다. 도시의 문화는 이중적인 면모를 다 가지고 있어서, 기회와 부패, 희망과 타락, 역동성과 비정함이 혼재한다. 도시 문화는 경쟁적인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 지어진 사회의 하부 구조와 상업적인 추악함이 죄악과도 깊이 결부되어있다. 현대의 도시에서는 도덕적 인간성의 고상함보다는 죄악과 방탕한 쾌락주의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큰 도시일수록 더 많은 구조악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판하게 된다면, 수도원주의자들처럼 분리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 세상의 도성 속에 함께 혼재한다고 가르쳤다. 안토니우스가 전개한 이집트의 수도원 운동에 따라가지 않고, 어거스틴은 도시의 교회의 감독이 되어서 영향을 발휘했다. 중세 시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인데, "근대의 헌신"(Devotio Moderna) 이라는 경건주의 운동의 물줄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은 세상을 경멸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으로 압축된다. 수도사들은 현세에 관심을 갖지 말고 도피하여 고독한 은둔 생활을 추구해야만 한다. "근대의 헌신" 운동을 주도했던 헤르트 더 그루트(Geert de Groote)는 철저하게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물질적 소유에서 벗어나려 했다. 심지어 학문적 추구마저도 부인했다. 금욕주의와 독신주의를 고수하려면 수도원 경내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고, 가능한 한 자기 방 안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세상보다는 피안의 세계를 깊이 묵상하라는 것이다.

재세례파와 같이 급진적 개혁운동을 추진했던 자들도 세속질서에 저항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세상이란 악의 소굴이라고 규정하고, 재산을 소유하는 것, 무기를 잡고 싸우는 것, 도시의 권세자들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 등 모든 것을 부정하였다. 이런 후예들이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공동체 생활을 추구하고 있다. 재세례파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아미쉬(17세기에 메노파에서 분리되어서 스위스 야곱 아만이 만들어낸 그룹으로 미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메노나이트(저지대 지방에서 메노 시문을 따르면서 농사를 짓던 자들이 미국 펜실베니아에 이주하여 세운 공동체), 후터라이트(스위스 산간지방에서 제이콥 후터를 따르다가, 미국으로 이민하여 사우스 다코타, 노쓰 다코타에서 살고 있는 자들) 등이 세속 문화로부터 분리적인 신앙인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수도원의 성적인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세워진 수도원은 풍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게 되는 것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이고, 기독신자로서 공적인 책임을 폐기하는 행위였다. 세속사회의 공통적인 신념과 사회구조를 거부해버리면, 공동체의 질서체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체계와 조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수도원에 은둔자가 되어서 이 세상과는 어떤 접촉도 회피하는 길이 영혼의 고통을 벗겨주었던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인 교리가 수도원 운동에서 제공하지 못한 해답으로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확신을 제공하였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교훈들이 엄격한 규율과 개인적인 내핍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감격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1511년 경, 추기경 콘타리니가 남긴 서신들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종교개혁의 원리 속에서 구원의 기쁨을 발견하였다. 콘타리니 추기경은 미켈란젤로 등 일단의 "영적인 사람들"과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공유하였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면서 퇴락의 길에 빠지기 쉽다. 성도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요일 2:15-17).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요 17:15). 기독교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서 살아가는 길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목수로서 그렇게 가정을 위해서 일하였고, 제자들과 함께 세상 속에서 지혜와 진리를 깨우쳐 주셨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시간을 아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16세기 초반,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은 타락과 퇴폐에 물들어서 순수성과 도덕적 권위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속적인 방법들을 직접 소유하고 사용했다. 보르지아, 교황 알렉산더 6세와 레오 10세 등은 교황직을 돈으로 사들였고, 군대를 동원하였으며, 쾌락을 즐겨서 자녀들도 많았다. 교황들은 사냥을 즐기면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거대한 건물과 호화로운 예술에 돈을 물쓰듯이 사용하여 자신들의 권세를 세속적인 방법으로 자랑했다. 이들은 세상을 정복한 자들이 되려고 분투했는데, 결국 세상에 정복당한 꼴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도시 지역의 사회문제를 품어 안고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루터와 칼빈이 그저 확신에 찬 설교와 출판물을 통해서 지역의 정치와 문화에 영향력을 준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직접 정치적인 권세자들과 맞부딪혀서, 술집을 축소하고 범죄자들을  몰아내며 교육의 확대와 출판업의 확장을 지속시켜 나갔다.

세상에 대한 긍정적 관점과 비판적 정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던 칼빈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서 포도주를 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목회자들은 생활비의 일부로써 포도주를 제공받았다. 음식은 단순히 생존만이 아니라 풍미를 즐기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는 하루에 한잔, 주일에는 두 잔 이상의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