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41장 분석심리와 정신치료

분석치료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심리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심리학적인 이해는 점차 더 넓게 발전하고 있는데,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모두 정신이나 심리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인간의 심리는 광범위하여 심리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넓어질수록 임상정신의학의 테두리를 넘어서게 된다. 분석치료는 인격의 심층을 살피며,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를 일으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이런 치료의 시각에서 분석심리치료는 어떤 특성을 갖게 되는지를 고찰해 보자.

1. 분석심리와 치료

분석치료는 꿈-분석을 시도하여 치료하는 작업이다. 분석을 시도한다는 것은 꿈-분석을 통해서 정신을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분석심리학에서 분석치료를 받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꿈-분석을 받는다."고 말한다. 분석은 사실상 치료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굳이 분석치료라고 부를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분석심리학적인 치료의 개념을 혼동하지 않도록 분석치료라고 부르게 된다.

1) 분석치료의 정의

분석치료란 일단 분석을 통하여 인간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행위이다. 병든 마음이란 심리 및 정신에 이상이 발생하여 사회생활에서 그 기능수행이 어려워진 상태이다. 이런 경우에 질병은 증상의 정도와 상태에 따라 여러 형태가 있다. 그것은 비교적 약한 정도에서부터 도저히 기능수행이 불가능한 상태의 극심한 경우까지 실로 다양하다.

우리의 심리 및 정신에 이상이 발생한 상태에서는 원만한 기능수행을 위하여 치료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한 심리 및 정신의 치료를 우리는 '분석치료'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분석에도 엄밀하게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치료의 구분은 대개 병인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질병이 무엇 때문에, 어디에서 발생되었느냐를 묻는 질병발생의 원인에 따른 것이다.

말하자면 분석치료란 그 병인(病因)이 뇌에 이상이 있는 체인성(體因性)으로 보는 시각과, 심리적인데 원인이 있다고 보는 심인론(心因論)에 따라 분석치료를 각각 실시하는 입장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하여 우리는 더 물을 것도 없이 분석치료는 대개 심인론에 근거를 두는 것을 위주로 하여 치료하는 것이다.    

2) 분석치료에서 적응증의 문제

분석치료에는 적응증도 포함한다. 적응증이란 어떤 약이나 수술로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질환이나 증세인데, 이는 좁은 의미로서 분석을 통한 치료적인 적응증을 포괄하는 것이다. 융(C. G. Jung) 자신도 '적응증'이라는 용어는 다른 의학 분야에서처럼 이 치료 저 치료에 적응이 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오늘날 정신치료는 아직 그렇게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증이란 표현은 유감스럽게도 일방성에 대한 하나의 단순한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분석심리학의 분석에서는 임상정신의학의 관점보다는 심리학적인 관점이 우세하다. 심리학적인 관점이란 분석에서 일정 조건의 결정이 환자의 심리적인 상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분석심리학의 분석치료는 적응증과 금기의 진단명 같은 의학적인 기술적 용어나 연령과 지적수준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를 일률적으로 분석치료의 금기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석치료의 가능성과 그 대상을 결정하는 문제는 환자의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 달려 있다. 이는 환자의 지적수준이나 연령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지적수준이 높고 연령이 40대 중반 이후인 환자는 때로 심리적인 통찰능력이 우수하고, 인격의 신축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지적수준이 높은 편에 해당하기에 대체로 젊은 층의 경우보다 분석의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히 분석치료의 적응증과 금기란 환자의 심리적인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본보기이다.

그리고 환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분석자의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기에 분석에 있어서 적응증과 금기의 문제는 분석자의 이해능력과 밀접하게 관계됨에도 불구하고 적응증의 판단여부는 여전히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두 번의 면담을 통해 판가름되기는 실제로 어려운 일이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를 진행하면서 판단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3) 분석치료와 정신분석의 문제

분석치료는 대체로 꿈-분석을 통해서 실행하는 정신치료라고 했다. 이 치료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꿈-분석을 통하여 실행되고 있다. 그러니까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분석하여 의식화하는 작업의 일환이지만, 아직도 분석치료와 정신분석의 개념정의가 분명치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이 분석치료이고, 무엇이 정신분석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인간의 심리와 정신의 명확한 개념규정이 쉽지 않은 이유 때문이다.

심리는 무엇이고 정신은 또 무엇인가? 심리는 정신과는 관계없는 것이며, 정신은 심리와는 별개의 것인지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이론이 심층심리학적인 이론이어서 분석심리치료라 불러야 하는지, 심리학 이론으로 분석하는 것이 정신기능을 분석하는 것이므로 정신분석치료라 불러야 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명칭구분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병인론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두 가지로서 신체기능적인 입장과 심인성(心因性)의 입장이다. 신체기능적인 입장에서는 정신병이 신체적인 기능인 뇌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뇌의 이상으로 인하여 정신병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심인성의 입장에서는 정신병이 인간의 심리와 관계를 가진다고 보는데, 이는 정신병이 유발되는 원인을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질병의 유발원인을 둔 입장이 심리와 정신의 경계선을 구분시켜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런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던 그 당시의 의학적인 분수령의 역사를 더듬을 필요가 있다.

2. 분석심리학 이전의 치료

정신치료는 겨우 100년간에 걸쳐 발전되어 독립을 이룬 치료술의 한 분야이다. 그 동안 이 분야에서 많은 견해들이 매우 다양하게 바뀌어왔고 분화되었으며, 또한 많은 경험이 축적되면서 온갖 종류의 서로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정신치료는 사람들이 처음에 이해했던 것처럼 간단하면서 틀림없는 방법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변증법적 과정, 즉 두 사람 사이의 대화, 또는 토론임이 점차로 밝혀졌다. 이런 것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로 구분하여 기술해야 한다.

1) 상호작용으로서 정신치료

정신치료는 환자와 분석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치료하는 치료의 방법이다. 인간은 하나의 정신체계라고 생각할 때 서로가 대화를 나누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변증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변증법은 원래 고대 그리스 철학의 대화술의 하나였는데, 예로부터 새로운 합성(合性)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일컫는 명칭이 되었다. 이것은 정신치료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어갈 때, 즉 다른 인간에게 작용할 때 다른 정신체계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방법은 정신치료가 원하는 효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틀에 박힌 방식으로 아무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다가 정신치료에는 각기 특징을 가진 다양한 방법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물론 분석심리치료가 생겨나기 이전의 정신치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리보와 베른하임의 프랑스식 암시요법인 '의지의 재교육', 바빈스키의 '설득법', 뒤부아의 '합리적 정신교정법', 성욕과 무의식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권력의지와 의식적 허구를 강조하는 아들러의 '교육적 방법', 슐츠의 '자율적 훈련' 등이다.

이상의 정신치료는 각기 나름대로 특유한 심리학적 전제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특유한 심리학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치료방법은 다른 견해를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각 방법은 어느 정도의 성과뿐 아니라 그때그때의 전제를 광범위하게 증명할 심리학적 사실을 제시하기 때문에 각기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점에 대하여 우리는 비록 타당성이 있거나 때로는 모순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의 판단력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최소한 잠정적, 상대적으로 타당한 표명(表明)만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아야 했다.

2) 정신질환에서 기질론의 우세

역사적으로는 1900년대 초기 유럽에서 정신의학의 흐름은 정신질환의 기질론(器質論)이 주도적이었다. 기질론은 신체의 조건이나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거의 신체적인 특성이 정신의 특징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 시기는 칼 융(C. G. Jung)이 정신분석자로서 취리히대학 병원의 정신과에서 근무할 때이다. 당시 정신질환이란 뇌의 병으로 보았고, 그 병인은 유전이거나 뇌에 병변이 있는 것으로 보는 추세였다. 이것이 그대로 근대 독일정신의학에 이어져 내려온 상황이었다. 그 당시 정신의학에서는 일찍 치매가 발병한 것이라는 조발성치매(早發性 癡呆, dementia precox)가 분석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에는 정신분열증으로 부르는 이 조발성 치매가 불치의 정신병으로 분류된 것이다. 물론 현대의학의 발전에 따라 부분적으로는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기도 하고, 적절한 양의 약물을 복용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까지 진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 조발성 치매에 대해 최초로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그 이름을 붙인 사람은 크레펠린(E. Kraepelin)이지만, 심지어 크레펠린조차도 이 병이 저절로 낫는 수가 있다는 것을 관찰하였을 뿐이다. 그것은 조발성치매가 심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정신분석에 효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러한 정신질환이 뇌의 병이라는 생각은 상당히 오랫동안 노이로제의 병인론에도 적용되어 온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학설을 세워서 그 이론을 발전시킨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쟈네(P. Janet)이다.

당시 프랑스의 낭시(Nancy) 학파에서는 최면에 있어 암시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는데 리볼트(Liebeault)와 베른하임(Bernheim)이 그 대표자들이었다. 이때 쟈네(Janet)는 최면으로 환자를 치료하는데 함께한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근대적 의미의 해리(dissociation)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데, 이는 그가 정신이 갈리진다는 해리 자체를 병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최면은 본래 1841년 영국의 외과의사인 브레이드(James Braid, 1795 -1860)가 시선고정과 반복암시의 메스머리즘적인 기법을 최면, 즉 최면주의(hypnotism)라고 불렀다. 그는 초기에는 최면유도에는 시선의 고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시각 장애자에게도 최면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단일관념(monoideism)이라 하였다. 그는 이중의식(double consciousness)이라는 말도 사용하였는데, 이는 한 정신의 상태는 의식이 되지만, 다른 한 상태는 의식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하게 되었다. 이런 상태는 전술한 쟈네가 해리의 개념을 밝힌 것처럼 오늘날의 해리의 개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3) 정신질환에서 심인론의 등장

앞에서 우리는 쟈네에 대하여 기술한바 있다. 그는 정신이 갈라지는 현상인 해리상태를 병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던 그가 다시 히스테리성 신경증의 심인론을 구체적으로 제기한 최초의 사람이 된다. 그는 신경증을 현실기능(le fonction du real)의 상실에서 그 요인에 주목하여 그 원인을 밝히려 하였다. 그는 신경증 환자가 현실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전체 혹은 현실의 어떤 부분을 견뎌낼 수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심인론에 눈을 열게 되었지만, 그 당시 쟈네도 환자의 체질적인 소인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순수한 심인론을 내세우지 못한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노이로제를 심리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쟈네의 노이로제론은 훗날 프로이트와 융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후 분석에 새롭게 획기적인 계기를 이룬 사람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는 임상을 통하여 환자의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최초로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1890년 최면가들의 영향을 받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에 대해 통찰을 가졌지만, 다음의 문제 때문에 나중에는 최면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최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최면 암시로 증상소실 후에도 재발이 있으며, 그리고 암시가 오히려 억압(re- pression)을 강화하며, 때로는 강한 전이적 관계에 따른 갑작스런 의사-환자 관계의 변화 등이다. 이로써 그는 최면적인 기법과 유사한 자유연상과 정신분석 운동에 전념하였다.

20세기 전반은 정신분석이 발흥하면서 최면의 암흑기였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쟁신경증의 최면치료가 효과를 보면서 최면의학은 관심을 끌었다. 1930년대 미국의 헐(Clark Hull)은 대학의 심리학에서 최면연구를 시작하였고, 그의 제자인 에릭슨(Milton H. Erickson, 1901-1980)은 지난 100년간 주로 사용되어오던 점진적 이완법이나 직접 암시의 최면유도법과는 달리 독창적인 기법들을 많이 소개하였다. 이것은 응용과 간접적인 암시로 요약되는데, 그는 환자의 체면유지와 상대의 입장에서 보조를 맞추고 이끄는데 달인이었다. 이러는 사이에 그를 따르는 에릭슨학파가 미국의 정신분석자들 사이에 형성되기도 했다.

최면에서 문제를 발견하게 된 프로이트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라는 정신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무의식도 알고 보면 우리는 프로이트가 단순한 최면에서 더 암시로 나아간 최면암시법에서 힌트를 얻은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환자의 이마에 손을 대면서 암시를 거는 최면의 방법이나 환자에게 손을 대지 않고도 환자에게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게 하는 방법이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무의식의 개념은 철학에서 이미 사용하던 것이었지만, 그가 무의식의 존재를 과학의 대상으로 삼아 임상을 통하여 밝혀내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존재를 발견함으로 인해 치료의 새로운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로써 프로이트는 자신이 발견한 자유연상법을 기초로 하여 정신을 치료하는 정신분석학파(Psychoanalyse Schule)를 수립하게 되었다.

4)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정신치료

정신치료는 크게 응용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인간의 심리 및 정신을 치료하는 기술이란 사실상 응용심리학의 범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 발전되어 온 정신치료는 인간의 심리 및 정신을 연구하는 순수한 정신치료가 더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프로이트와 아들러이다. 그들은 정신치료의 초창기에 정신치료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치료법을 창시했기 때문이다. 칼 융도 이들의 뒤를 이어 어떤 측면에서는 동조하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반대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특히 프로이트는 정신치료가 최면치료와 전기자극법 외에 다른 치료가 없던 초창기에 인간의 무의식을 발견하여 정신치료의 길을 연 선구자가 되었다. 다만 그의 관점은 정신장애에서 인과적인 것으로서 성욕이론과 정신적 사건은 본질적으로 유아적인 쾌락과 그 만족에 달려있다는 것으로 공감을 얻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물론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별개로 심리학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아울러 프로이트의 이론은 다른 장소, 다른 상황,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형태로 인지될 수 있는 정신적인 흐름임을 심리학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프로이트의 성적인 이론은 엘리스와 포렐의 저술들과 이미 동독지역에서 발간되는 인간의 성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잡지인 《안트로포피테이아》(Anthropophyteia)와 앵글로색슨족의 국가들에서 빅토리아 시대 이후의 성(性) 실험과 프랑스의 사실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문학에서의 성애적인 자료가 폭넓게 다루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를 일이다.

반면 아들러는 열등감의 개념에서 그의 이론을 갖고 있는 편이었다. 그의 이론의 핵심개념이라 할 열등감에 기초하고 있는 힘(power)의 요구가 많은 사람들의 삶이나 문제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고 있었다. 이런 아들러의 관점은 프로이트의 관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정신적인 사실들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들러의 열등감 이론은 인간이 힘을 지향한다는 점을 중요한 본 것이었다. 만약에 힘을 갖지 못하면 열등감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정신병의 근본이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에로스가 문제인가, 아니면 힘이 문제인가는 사람의 일차적인 특징을 구분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5) 정신치료에서 취리히 학파의 약진

정신질환의 치료는 다른 치료에 비해서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갖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은 불과 100여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정신치료의 길을 여는 때만 해도 최면술이나 전기자극법이 치료의 주된 방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을 통하여 정신을 치료하는 방법은, 비록 그것이 과학적인 체계를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대단한 진전이기도 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여 치료하는 작업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정되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의 특성상 눈으로 확인 이 가능하도록 치료의 방법을 보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어서 비(非)유태계열로 분류되는 스위스 취리히 학파의 등장으로 인한 정신의학의 약진은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매우 획기적인 일로 간주되고 있다. 그 당시에 정신치료는 유대인들이 거의 독점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보이지 않는 정신에 대하여 유달리 유대인들이 관심을 갖고, 또 그것에 대한 치료방법을 선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아무튼 정신의학에서 취리히학파의 정신의학자들인 블로일러(E. Bleuler), 융(C. G. Jung) 등이 정신분열증 환자를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는 데서 새로운 전환기가 이룩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심층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분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심리 및 정신을 분석하여 치료하는데 심리적인 이론과 학설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계기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심인성을 주로 하는 정신분석의 주류형성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정신치료에서 두 큰 산맥을 이루는 유태계의 오스트리아 비인의 정신분석학파와 비유태계의 스위스 취리히의 분석심리학파가 모두 독일어 문화권이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빈의 프로이트와 아들러, 취리히의 블로일러와 융이 이러한 양대산맥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이들이 학계에 인정을 받을 만큼의 큰 치료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보아 정신분석학파와 분석심리학파로 구분하여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정신치료는 진정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창의적으로 연구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역사를 갖는다는 점을 우리가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분석심리와 그 치료에 대해서 기술했다. 분석치료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심리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심리학적인 이해는 점차 더 넓게 발전하고 있는데,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모두 정신이나 심리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로 인간의 심리는 광범위하여 심리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넓어질수록 임상정신의학의 테두리를 넘어서게 되었다.

거기에 분석치료는 인격의 심층을 살피며,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를 일으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목적을 두는 것이었다. 이런 치료의 시각에서 우리는 분석심리치료가 어떤 특성을 갖고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 배경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