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기브온 거민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이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비록 정직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내다보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실수를 범한 셈이다. 가나안 족속을 모조리 진멸시켜야 했는데, 기브온 거민들이 교묘하게 빈 틈새를 뚫고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아이성 점령의 일차적 실패가 첫 번째 실수였다면, 기브온 거민들에게 속아 그들을 살려준 것은 두 번째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듭된 실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엇보다도 기브온 사람들의 외모를 보고 판단한 점이 잘못이었다. 먼 곳에서 온 것처럼 꾸민 기브온 사람들의 뛰어난 위장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그만큼 그들의 계략은 주도면밀하였다. 그렇다고 하여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철저히 다루었다면 속임수 뒤에 숨어 있는 허점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심 곧 겉모양만 보고 쉽게 판단을 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사무엘과 같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도 사울 왕을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선정하면서 외모를 보고 판단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사무엘을 책망하셨다. 사도 바울 역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 것'을 권면하였다(고후 5:7).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외모에 판단의 기준을 두는 것은 곧 자기중심적인 사고이며 종국에는 객관성의 결여가 뒤따르는 위험한 일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수를 범한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지 않은 것에 있었다. 당시는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비상시국사태였다. 모든 일을 총사령관 격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상의해야했는데도 자신들의 판단을 믿고 가볍게 처리하고 만 것이다. 제사장들이 늘 지니고 있는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물어보는 간편한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 없이 자신들의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잘못을 범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뜻이다(살전 5:17). 여기에서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 상의해야함을 포함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들에게 속아 그들과 화친조약을 맺고 그들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삼일이 지나고 나서 기브온 거민들이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운 지역 사람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언약이 거짓에 근거한 것이기에 원인무효를 선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브온 거민들과의 언약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그들과 맺은 언약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약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맹세한 언약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속임수에 넘어가 맺은 언약이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어서 결코 변경할 수 없다는 신앙고백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말아야 한다(시 15:4).

그렇다고 기브온 거민들의 잘못이 정당화된 것은 아니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불러 속임수를 사용한 것에 대한 엄중한 추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범한 잘못에 대한 벌로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종이 되어 여호와의 전에서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이 되었다. 비록 그들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지만, 거짓 속임수를 쓴 것에 대한 처벌은 피할 수가 없었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