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게 된 맹인처럼… 당당한 믿음

입력 : 2017.09.11 15:26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 것이니이다(요 9:25)".

요한복음 9장을 요약해 보면, 이를 기록한 요한은 맹인(어둠)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권능과 맹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맹인은 부모와 바리새인들의 위협에도 자기가 직접 체험한 구원에 대한 사건을 말했습니다. 그의 메시아관은 점점 분명해지고 확신에 찼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구원은 지식과 행동에까지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질병이나 재난, 죽음 등이 자신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나 지금이나 무슨 일이 잘못 되면 모든 것을 '조상 탓'으로 돌리고, 잘 되면 '자기 탓'으로 공을 돌리지 않습니까?

당시 로마나 유대 사회에서는 '침'이 눈병을 치료해 주는 약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간혹 벌에 쏘이거나 모기에 물렸을 때, 간지럽거나 따가울 때, 상처가 날 때 종종 침을 바르고 진흙을 발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침을 바르고 진흙을 바르는 분들을 볼 수 있고, 진흙으로 피부질환을 치료하거나 고운 피부를 위해 진흙을 사용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진흙은 화장품 연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진흙은 빛깔이 붉고 차진 흙을 말합니다. 보통 벽돌은 진흙과 모래, 석회 따위를 버무려 높은 온도로 굽습니다. 진흙으로 만든 이 팩은 유분 제거 능력이 탁월해 지성 피부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침'은 수분점액 단백질 무기염류 및 소화요소인 아밀라아제로 구성돼 있으며, 입안을 돌면서 음식 찌꺼기, 세균 세포 및 백혈구를 모은다고 합니다.

사람의 입에서 매일 1-2리터의 침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침은 다양한 기능을 하는데 ,주로 입안을 매끄럽게 하고 축축하게 함으로써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며, 음식물을 약화시키거나 반고체로 변화시킴으로써 맛을 느끼게 하고 음식물을 보다 쉽게 삼킬 수 있도록 해 주며, 특히 세균의 감염을 억제하는 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그 시대는 안식일이면 일하는 것은 물론, 약의 사용도 금지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소경에게 진흙을 발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적의 치료 방법을 통해, 유대인들의 형식주의와 권위적 사고를 지적하십니다.

약을 쓰지 않았지만, 치료는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모는 두려워하여 아들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은 안식일을 지킬텐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쳤으니 그가 하나님께로서 온 사람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온 사람들만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서 온 사람임을 이미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눈을 뜬 것이 사실이 아니며, 요술을 부리거나 일종의 속임수가 분명 깔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맹인은 이미 예수님을 선지자로 호칭했으며, 그를 다시 부른 유대인들 앞에서 맹인이던 자신이 지금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당당하게 진술함으로써, 예수님이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곧 메시아임을 증거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애써 부인하며, 안식일에 관한 모세 율법의 권위를 존중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이 안식일의 법을 무시하고 깨뜨렸으니, 우리는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도 인지하지 못하고, 오래 동안 지니고 가두었던 사고를 털어내지 못한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쌓여온 병폐와 위선에서 탈피하지 못하며, 장차 임할 새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지도자들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고달픔의 연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난과 고통의 비참함 속에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맹인의 믿음을 본받아, 의심치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주의 군병들이 돼야 할 것입니다. 옳은 믿음을 갖고 과감히 증거할 수 있어야 하며, 거짓된 풍설과 낭설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믿고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돼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눈을 뜨는 것을 직접보고도 믿지 못하는, 감동 없는 삶의 연속에는 늘 좌절과 불행의 그늘에서 희망 없는 삶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이렇듯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현대판 바리새인과 맹인의 부모처럼, 암울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버려야 할 구습을 버리지 못하며,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두 손과 마음으로 굳게 붙잡고 있는 병폐들을 과감히 청산하지 못하며, '이대로가 좋다'며 안주하는 신앙인들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래도록 믿어온 우리 신앙인들이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독교는 낭패를 당하고, 미래를 열지 못하는 뒤처진 종교로 전략할 것입니다. 책임 있는 교회 지도자들과 노회, 총회의 지도자들께서는 말로만 변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 가슴에 와 닿는 변화를 추구하셔야 합니다.

잘못된 법은 과감히 수정하고, 미래희망적인 제안은 과감히 수용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변화를 뒤로 미루며, 양들을 불공평하게 대우하거나 아파하는 이웃들을 외면한다면,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난 너희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하시며, 소나기 같은 무서운 징벌을 내리실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맹인과 같은 믿음과 확신의 눈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는 참 평안의 그리스도인이자 당당하고 용맹스런 십자가 군병들이 돼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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