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이단 발흥 부추기는 병든 한국 사회 질타하다

입력 : 2017.09.10 16:44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드라마 <구해줘(中)>

구해줘
▲<구해줘>의 이단묘사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한다.
병든 사회, 죽은 공의(公義)가 낳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시대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말이 있다. 의미를 따로 밝힐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지만, 정작 그 출처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말을 처음으로 기록에 남긴 이는 명(明)나라 만력제(萬曆帝, 재위 1572-1620) 시절 궁중 태감(太監, 고위 환관)을 지낸 유약우(劉若愚, 1584-?)다.

유약우는 <작중지(酌中志)>라는 저서를 남겼다. 무려 23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명 황실과 궁중의 생활을 상세하게 기록한 귀중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 유약우는 다음의 유명한 문구를 역사에 남긴다.

"[나는] 석가의 가르침(불교)을 극도로 증오한다. [불교는]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이는 것(惑世誣民)으로 여겨 가장 먼저 배척하는 것이 마땅하다(極厭憎釋教,以為惑世誣民,最宜擯絶者)."

유약우가 이런 말을 남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명 황실과 고위관료들이 주자학(朱子學)을 숭상했기 때문이다. 성리학(性理學)으로도 알려진 주자학은 주희(朱熹, 1130-1200)의 유교 경전 해석을 바탕으로 발전된 학문이다.

삶의 개별적-실존적 현상보다는 그 현상 이면의 보편적 이치(理)를 성찰하고 깨닫는 데 주안점을 두었던 주자학은 태생부터 귀족적인 학문이었다. 이치를 깊게 통달한 자들, 즉 현학적 태도로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자들이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 정도로 학문에 심취할 수 있었던 이들은 거의 대부분 부유한 관료, 지주, 토호가문 출신의 유학자들뿐이었다.

주자학을 숭상하던 이들은 불교를 천박하고 위험한 사상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불교가 근본적으로 인간평등 사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과 출신에 관계없이 누구나 불타(佛陀, Buddha, 불법을 깨달은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이름)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주장은 고정된 신분질서를 옹호하던 주자학 추종자들에게 경멸과 증오를 불러 일으켰다.
 

구해줘
▲주자학의 시조 주희(왼쪽)와 명 제국 황제 만력제.
둘째, 유약우가 불교를 극히 싫어했던 이유는 명 제국 내부의 혼란한 정세를 틈타 온갖 종류의 변종 불교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사실 당시 명 황실의 정치가 엉망이었던 점이 더 큰 원인이다.

유약우가 섬기던 황제 만력제는 역대 명 제국 황제들 중 가장 무능하면서 가장 오래 재위(48년)한 인물로 평가된다. 명 제국의 멸망은 만력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역사가들 사이에서 인정되는 정설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그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보낸 황제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만력제의 정치 성향은 나태함 그 자체였고, 이로 인해 명 제국은 만력제 시대를 기점으로 국운이 급격하게 쇠퇴했다. 나라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가운데 민초들의 삶은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각처에서 민란이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이 시기를 틈타 온갖 종류의 이교(異敎, 주자학의 입장)가 판을 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불교의 변종이 많았기 때문에 유약우가 불교 전체를 지탄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원래 명 제국은 건국 시기부터 백련교(白蓮敎), 미륵교(彌勒敎) 등 불교로부터 파생된 변종 종교집단의 난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일이 많았다.

처음 유약우가 '혹세무민'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단지 이단의 발흥과 폐단을 지적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이 역사적 성찰을 담은 시각으로 봤을 때, 이 말은 이단의 발흥이라는 사태를 초래하는 데 일조한 국가적-사회적 타락을 함께 지적하는 의미로도 이해됐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드라마 <구해줘>는 혹세무민이라는 말이 담은 의미를 적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주인공 상미(서예지 분)의 가족이 이단종교 구선원의 흉계에 빠지게 된 데는 오직 힘있는 자들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공권력, 약자를 짓밟는 것이 일상화가 된 폭력적 분위기의 교육현장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구선원 교주 백정기(조성하 분)와 사도 강은실(박지영 분)이 얼마 되지 않는 호의와 선물, 그리고 몇 마디 말로 상미의 가족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은, 상미 가족이 이미 사회의 구조적 불의와 부조리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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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에서 상미의 가정을 파멸시키는 교주 백정기.
전편에서는 주로 기독교계 내부의 문제점들을 이단 발흥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단이 순전히 종교 자체의 내적 모순에 의해서만 발흥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이단은 사회 전체에 불의가 승할 때 왕성하게 성장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기독교 계열 이단들은 단지 한국 정통 기독교계의 실책과 무능 때문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불의에 희생되는 약자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배려와 동정이 고갈된 한국 사회의 무자비함이 하나의 중대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해줘>는 이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구해줘
▲지역 국회의원과 친분을 다지는 이단 교주 백정기.
◈이단과 권력: 불의한 권력과 기만적 이단의 결탁

<구해줘>는 시리즈 초반부터 불의한 권력과 이단 발흥의 상관관계를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구해줘>에 묘사된 무지군의 권력구조는 한국 사회 전체 권력구조의 축소판이다. 극중 상미의 가족 전체가 정신적 붕괴를 경험하게 된 계기, 그리고 결국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상미 오빠의 자살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이자 약자인 상미네 가족, 그리고 상미를 도우려던 학생들의 목소리는 모두 묵살당한다. 상미 오빠를 자살로 몰고 간 학교폭력의 주범이 무지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조합장의 외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플롯의 전개를 고려할 때, 만일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었다면, 혹은 이 자살 사건의 처리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면 상미의 아버지 임주호(정해균 분)가 사이비 이단 구선원에 그토록 깊게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측된다. 사회의 법질서 어디에도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해소할 길이 없던 임주호는 세속에 대한 극한 불신으로 인해 가족 전체의 몸과 정신을 구선원에 위탁한다.

이처럼 <구해줘>는 불의한 권력이 약한 자, 억울한 자들을 사회의 가장자리로 몰아가는 모습, 그리고 막바지에 몰린 자들이 영혼을 담보로 이단에 투신하는 모습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불의한 권력이 사람들을 이단의 유혹으로 몰아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단들이 적극적으로 권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구선원 교주 백정기는 무지군의 권력자인 지역구 국회의원을 신도로 거느리고 있다. 백정기는 자신이 가진(혹은 가진 척하는) 병 고침의 능력으로 해당 국회의원의 아버지를 암으로부터 해방시켰다(혹은 해방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일을 계기로 구선원과 지역 국회의원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커넥션이 형성됐다. 그렇다 해서 이 국회의원이 전적으로 구선원의 교리를 믿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구선원이 군민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그리고 구선원의 미녀 사도인 강은실을 애인으로 얻기 위해 백정기에게 적극 협조한다.

교주 백정기는 국회의원의 의도를 잘 아는 눈치고, 국회의원 역시 구선원이 사이비 이단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끈끈한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권력과의 커넥션으로, 그리고 백정기에 대한 군민들의 맹목적 지지로 인해, 무지군 경찰들은 구선원의 문제점과 여러 범죄들을 대략 눈치챘으면서도 묵과해 주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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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계열 이단 JMS(자칭 기독교복음선교회) 교주 정명석과 본거지인 월명동. 신도로 거느린 고위공무원들의 비호 하에 상습적으로 성폭행 및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구해줘>에 등장하는 교주 백정기의 여러 모델 중 하나다.
<구해줘>에 묘사된 권력과 이단의 협력은 절대로 허구가 아니다. 오히려 극중 묘사된 내용보다 더한 측면도 많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한창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바 있는 이단 JMS를 예로 들어보자.

JMS는 원래 통일교 강사였던 정명석이 1978년 설립한 기독교 계열 사이비 이단 종교단체다. 1980년부터 교세가 확장되기 시작하는데,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의 군사반란으로 서울의 봄이 좌절되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암운이 걷히지 않은 어두운 시기를 틈타 실의에 빠진 대학생들의 마음을 공략한 결과였다. 이후 1990년 초반 교세가 최고조에 이르는데, 일설로는 거의 10만에 가까운 신자들을 거느렸다고 한다.

정명석의 악행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통일교의 피가름 이론을 변형시킨 독특한 타락-구원 이론을 근거로 셀 수 없는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일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 염증을 느낀 피해자나 내부자가 JMS를 떠나는 경우, 사실 폭로를 막기 위해 납치, 감금, 폭행 등을 자행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1990년대 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그 정체가 만천하에 폭로됐고, 약 10년 간의 해외도피 끝에 2009년 붙잡혀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장장 20년 동안이나 성폭행 및 납치감금 행각을 이어왔고, 여기에 더해 10년 동안이나 수사망을 따돌리고 도피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도피 중에도 해외에서 얻은 여신도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유린하여, 대만과 동남아 등지에서 수배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에게 몰린 막대한 자금, 그리고 그를 비호하는 공직자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정명석의 체포 후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상당수의 군대, 경찰, 검찰 간부들이 정명석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군대의 경우 준장 및 대령급 인사들, 경찰의 경우 총경급 인사가 그를 비호했고, 검사와 국정원 요원도 정명석 비호세력에 포함되어 있었다.

정명석이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이어갈 당시에는 지역 공안들을 뇌물로 매수해 상당 기간 동안 수사망을 피했다고 한다. 이 자금은 국내에 남아 있던 JMS 신도들의 헌금으로 충당된 것이다. 이렇게 공권력 내부의 도움과 자금력을 기반으로, 정명석은 이단 교주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 2년 후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후에도 이런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들, 그래서 최소한의 정의조차 외면하는 자들은 종교집단을 바라볼 때, 정통이든 이단이든 상관없이 이용가치만을 따진다. 권력층이 이런 인물들로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이단이 발흥하고 활개칠 여지가 확대된다. 이단들은 금품을 제공하거나 선거시 득표수를 늘려줌으로써 불의한 권력을 십분 활용한다. 이단들은 불의한 권력을 하나의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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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상미의 오빠 상진.
◈이단과 약육강식: 피해자를 한계점으로 내모는 학교폭력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극중 상미의 가족이 이단에 얽매이게 된 결정적 원인은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한 상미의 쌍둥이 오빠 임상진(장유상 분)의 자살 사건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상의 플롯 설정일 뿐, 학교폭력이 이단 발흥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혹 이런 일이 실제 발생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과 피해자의 자살은 한 가정에 닥칠 수 있는 불행의 여러 모습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 사안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미 언론에 수없이 반복해서 공개됐으므로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주목해야 할 점은 학령기 자녀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이 학교폭력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해줘>의 현실묘사는, 비록 전형성 때문에 식상한 면은 있지만, 세태 반영에 있어서 남다른 감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구해줘
▲청와대 홈페이지에 등록된 소년법 폐지를 위한 청원.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은 학교폭력에 대한 전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애초 드라마 <구해줘>는 조금산 작가의 웹툰 <세상 밖으로>를 드라마화한 것인데, 웹툰 원작과 드라마는 서로 세부 설정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원작 웹툰에는 상미의 가족 구성원도 다를 뿐더러, 가정이 무너지는 사연이 <구해줘>에서처럼 상세하게 소개되지도 않는다. <세상 밖으로>의 플롯도 치밀하지만, <구해줘>는 극적 요소를 살리는 설정과 연출이 추가되어 원작 이상의 현실감과 긴박감을 선사한다.

<구해줘>는 몇 해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과 <시그널>을 연출한 이재문 프로듀서의 독립 프로덕션 히든시퀀스가 제작했다. <미생>에서 볼 수 있었던 현실묘사의 감각이 <구해줘>에서도 상당부분 오버랩되고 있는데, 특히 상미의 가족이 병든 사회의 희생자로 추락해 가는 과정은 이단묘사 부분과 함께 이 드라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구해줘>가 이단 구선원 묘사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단 및 변종 종교가 발흥하고 성장하는 원인에는 종교계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부조리하고 병든 사회도 큰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구해줘>는 그 병든 사회의 가장 단적인 모습으로 학교폭력을 제시했다. 드라마 방영 개시 시점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보다 4주 정도 앞서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로듀서의 현실인식이 거의 선견지명 수준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한국 사회의 심각한 병폐 중 하나는 교육'기관'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교육제도 및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안이니 여기서 더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기관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언급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한국 학부모들은 학교라는 기관에 과도한 신뢰를 표한다. 물론 지식의 주입에 관한 신뢰는 아니다. 지식 측면에서 공교육에 대한 기대는 무너진지 오래다. 사교육에 목을 매는 학부모들의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활 및 가치관 형성에 관해서는 아직도 학교에 대한 심적 의존도가 높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한국 고유의 유교적 정서가 깊게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정신적 유산의 영향, 혹은 잔재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대한 이런 신뢰는 과하다 못해 비현실적이다.

과거에는 지식의 전달 경로가 극히 부족했다. 오직 학교만이 입신양명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지방 출신 교회 어르신들이 가끔 해 주시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1950-60년대에는 학교 선생님이 지나가면 그림자도 밟지 않고, 혹 학생들 집이라도 방문하는 날에는 꼭 사이다를 대접했다는 이야기다. 당시에 사이다는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대접하는 음료였다.

그만큼 교사는 지식 전달 뿐만 아니라 생활지도에 있어서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었다.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부여하는 것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권위가 교사들에게 부여되었다. 이런 정황 속에서는 학교에 자녀의 생활지도까지 위임하는 것이 당연했다.
 

구해줘
▲<구해줘>의 학교폭력 장면. 학교라는 공간은 더 이상 과거처럼 생활지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일반적 지식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그리고 학습과 지식 전달의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학교와 교사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인식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편의 때문인지,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생활지도와 가치관 형성 책임을 학교와 학원에 전면 위임하고 있고, 학교는 떨어진 권위만큼이나 저하된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을 방치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 양측에서 다 떠밀린 학생들은 이 병든 사회의 부조리한 면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학생들이 반응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는 강자의 편에서 부당한 학대와 폭력을 자행하며 살아가는 것, 둘째는 약자의 편에서 피해자로서 살아가는 것, 셋째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끼지 않고 방관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구해줘>의 두 남자 주인공, 한상환(옥택연 분)과 석동철(우도환 분)이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이 겪는 불행한 현실을 잘 반영하면서도 그 현실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상환은 방관자로 살아가던 자신의 모습에 혐오와 죄책감을 느끼고 약자를 돕는 쪽으로 돌이키는 인물이다. 석동철은 처음부터 약자의 편을 든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의협심이 이 두 배역에 투사되어 있다. 그래서 시청자는 그들이 상미의 오빠를 돕기 위해, 그리고 상미 본인을 이단에서 구출하기 위해 벌이는 활극에서 카타르시스를 얻고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학교폭력이 이단 발흥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자행되는, 그리고 갈수록 그 양상이 잔혹해지는 학교폭력 및 청소년 범죄의 발생은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깊이 병들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회가 병들수록 이단 발흥의 가능성은 커진다. 이 점은 혹세무민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걸출한 복음전도자들도 이 점을 깊게 인식하고 있었다.

구해줘
▲위대한 복음전도자인 동시에 사회개혁가였던 찰스 피니.
◈이단과 공의: 사회의 공의(公義), 순전한 복음 전파를 위한 필수조건
 
전편의 칼럼에서 잠시 소개한 바 있듯, 찰스 피니(Charles Finney, 1792-1875)는 현대 기독교 부흥주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명성은 단지 복음전도자로서 수행한 사역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복음전도자이자 부흥사인 동시에 역동적인 사회개혁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장로교 목회자로 헌신하기 이전 피니의 직업은 변호사였다. 다시 말해 당시 미국이 가진 사회적 문제, 그리고 법률적 문제에 정통한 엘리트 중 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그가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갖고 있었던 식견과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은 목회자가 된 뒤에도 변함없이 빛을 발했다.

피니가 주도하다시피 하던 제2차 대각성운동(1790-1840) 당시 미국 사회 최대의 현안은 바로 인권,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노예제도 문제였다. 미국의 정국은 노예주(slave state) 세력과 자유주(free state) 세력으로 양분된 채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피니는 노예제와 더불어 극심한 남녀 간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부조리들이 복음 전파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믿었다. 이는 그가 부흥운동 및 목회 현장에서 얻어낸 소중한 교훈이기도 했다.

이에 피니는 상당수 보수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예제 철폐 및 여권 신장에 앞장섰다.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 등 동시대 개신교계 근본주의 지도자들이 노예제를 옹호하고 전통적 성 역할을 주장하던 시기에, 피니는 당시로서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개혁의 대안을 제시했다.
 

구해줘
▲구선원이 베푼 잔치에서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이단 사역자 강은실. 사회가 병들수록 이단과 변종 종교가 주는 위로에 빠져드는 영혼의 수는 늘어난다.
역사적인 결론을 살펴 보면, 핫지보다는 피니의 주장이 복음전도 사역에 있어서 더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찰스 핫지의 위대한 신학적 업적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목회 현장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직접적인 결실을 맺은 것은 피니였다.

피니는 사회개혁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복음이 순전하게 전파되어 영혼 구원이라는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의 공의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게 인식하고 있었다.

정통 기독교회는 피니의 사례를 통해 이단 문제에 대응하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이단의 발흥을 근본적 차원에서 예방하려면 사회에 온전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교회가 힘 닿는 범위 안에서 사회의 공의 확립에 최대한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피니가 후세대의 사역자들에게 남긴 중요한 교훈 중 하나다.

<구해줘>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 교훈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은 이단 문제에 있어 정통 기독교회들이 보이는 무능함에 대해 아쉬움과 실망을 표하는 동시에, 이단 발흥을 부추기는 병든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질타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한 불의로 인해 피해자 및 희생자들이 한계선상으로 내몰리고, 교회들이 이들의 영혼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과연 이들이 향할 곳이 어디일지 추정해 보라. 범죄, 아니면 혹세무민하는 미신과 이단뿐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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