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신앙인들

입력 : 2017.09.04 15:15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특별히 주신 선물 중에는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특히 가인의 잘못된 선택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하여, 에서와 야곱, 사울과 다윗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석방하기를 원했지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그리고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선택하여, 실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안타까운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두 강도 중 한 강도의 옳은 선택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스런 선택이며 천국을 차지하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믿음의 후손들에게는 소망의 본보기가 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불길같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던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날 때, 그들은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눠 쓰며 신앙의 공동체뿐 아니라 삶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받아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공동체에 바치기로 했지만, 그 마음속에 사탄의 침투로 인해, 판 것에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 사도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베드로는 "아나니아야, 왜 성령을 속이느냐? 왜 거짓말을 하느냐?" 라고 꾸짖자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부인인 삽비라도 남편이 성령을 속여 즉사한 사실을 모르고 남편인 아나니아가 말한 그대로 속이므로 즉사하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지금도 우리에게 좋은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지금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부부들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성령을 속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쏟아내는 함성을 듣다 보면, 진실이 사라진 거짓과 가면으로 가득 메운 공동체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부부 중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아름다운 부부도 있습니다. 아굴라는 노예의 신분인 반면 브리스길라는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들의 직업은 천막을 제조하는 직업이었고 바울 역시 사도가 되기 전 천막을 제조하는 일을 했으므로,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성경에 5번이나 언급되며, 바울의 사역에 절대적인 협력자가 되는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아볼로의 강의를 듣고 잘못된 강의임을 알고,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성경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며 풀어주기도 하는 등, 성경 지식에도 상당히 해박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도 그 부부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이 부부에게 '나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

과연 신앙인들 가운데 진정 하나님을 위해 목숨 걸고 사명을 감당할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기 위해 고달픈 이사를 3번씩이나 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의 생활이었고, 마치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듯 부부는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보는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두 자매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아주 귀감이 되는 본보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찾아오셨기에, 시중을 들기 위해 분주하게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러나 정작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런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다"고 야단을 치십니다.

이와 달리 마리아는 그 분의 발치에 앉아 말씀에 귀를 쫑긋 하여 마르다의 시중을 모르는 채, 주님의 음성에만 열중을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봐서는 분명 마리아의 행동이 선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좋은 몫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단언하시며 칭찬하십니다.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두 자매 중 누가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종종 마르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분들을 보기도 합니다. 손님맞이에 분주할 때 도와주지 않고, 얄밉게 손님 발치에 앉아 노닥거리는 이들이 못마땅했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자기 방법대로가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곧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일할 때 눈치 보며, 요령을 피우거나 협력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누가복음 6장 46-49절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며, 다만 실천할 때 누구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말씀 해주시는 대목입니다.

특히 누구를, 무엇을 선택해야 옳은 일인지를 잘 증명해 주는 주님의 말씀이며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손님에게는 융숭한 대접으로 임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 뜻을 헤아리는 일이 옳은 선택임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주님의 뜻에 관심이 없이,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사탄들의 놀이 장소로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하여 심히 마음이 무겁고 괴롭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목사와 장로, 그리고 권력과 돈, 명예를 얻으려는 선택이 아니라, 내가 비록 평신도 일지라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서로의 믿음을 점검하는 친교 속에, 나아가 아파하는 세상에 주님의 긍휼을 나누고 그들에게 진정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화있을진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말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슥 11:17)".

이 말씀은 사악한 지도자들로부터 학대받는 이들 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로부터 버림받은 당신의 눈물과 괴로움을 닦아주시고 어루만져 주실 것이며, 목회의 부름을 받은 청지기직을 남용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심판을 시행할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이용하는 목사와 장로들의 말에 아멘으로 입술 잔치를 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을 선택하여 나의 믿음의 생활이 변질되지 않도록 늘 점검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여 곧 다가올 주님의 재림에 기쁨과 환희로 맞이할 영광의 때를 위하여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실천하는 삶을 사는 주님의 십자가 군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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