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요건 중 한 가지는 현장을 배우려는 자세와 열린 마음이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학습하는 태도이다.

현장에서 바라본 크고 작은 교단에 속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생각이 고리타분한 것 같다. 그런데 보수주의적인 태도가 더욱 닫힌 마음으로 사역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로 출발한 순간부터 역사가 정지되어 있는 듯한 생각, 1980-90년대의 사고방식과 습관과 지식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때도 있다.

어느 선교사가 교회를 건축한다. 혼자 설계하고 일을 진행하는데, 나중에 어느 정도 건물이 세워져서 방문해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이유인즉, 교회에 들어서자 6미터 높이의 천장이 굉장히 넓어 보이고 압도적이다. '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이것이 나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난방을 어찌 감당할꼬, 추워서 벌벌 떨게 생겼네. 러시아 현장이 겨울이 길고 추운데, 교회 내부 높이를 저렇게 높이..., 이것은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보수적인 태도와 생각이 만든 것이다.

또 러시아에서 건물을 교회로 등록하는 것은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할 정도로 어렵고 거의 안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확연한 교회의 모습으로 건축을 해서 나중에 발생할 문제들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태도 역시 그렇다.

지방에서 한 교회를 한국교회 후원으로 건축했다. 엄청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한다. 러시아에 몇 개 없는 독특하고 위엄 가득한 모습이다. 그 교회에 방문하여 집회를 인도했다. 2월이었는데 실내가 얼마나 춥던지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교회 천정 높이가 수십 미터나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난방장치가 되어 있지만 그 공간을 덥히지 못하고, 성도들은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한국인 선교사의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현장을 배제하고 선교사의 사고방식과 지식과 태도에 의해 건축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선교사로 출발한 그 때로 멈추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발전하고 있는데, 선교사들의 보수적 태도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보수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보수적인 태도 때문에 시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직도 교회를 성전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신학적 문제도 있어 보인다. 예배당이란 개념이 없다. 외적인 것에서 거룩함을 찾으려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인 선교사가 인도하는 예배의 모습을 보면, 한국교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순서나 진행 모든 것이 한국교회와 동일하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장을 배제한 한국교회의 전통과 습관을 현장에 그대로 이입하는 모습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선교가 한국교회의 습관이나 형식을 이입하는 것이 아닐진대, 이렇게 제국주의적인 태도로 전수해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교회는 형식도 갖추지만, 비교적 성도들이 많이 참여하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공동체 예배이다. 목사 혼자서 독점 하는 권위주의가 아니다.

한 주간의 삶 속에서 겪은 일들을 나누는 간증,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 낭송, 성도들의 가정과 자녀들의 문제를 내놓고 교회가 함께 기도하면서 모두가 참여하는 살아있는 예배인 것이다.

한국 선교사가 주도하는 교회의 모습은 목사의 무대점유 비율이 매우 높고, 성도들은 대부분 시청자가 되는 것이다. 그냥 1시간 침묵하고 앉아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누구 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형교회는 숨어서 예배에 참석 혹은 구경하고 오면 된다. 성도의 역할은 오직 자리를 채워주고 헌금하면 되는 정도로 예배의식이 마무리된다.

선교사가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타문화권에서 사역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나와 다른 생각과 전통과 문화를 가진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예배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한다면,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장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나의 교회 전통을 벗어버려야 한다. 대부분 외적인 것이고 한국적인 것이기에 과감하게 벗어도 전혀 문제될 일이 없다. 자신만의 수구적인 생각을 진리처럼 고수하는 것은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선교사는 많이 배우고 공부하여야 한다. 현대는 많은 학자들의 배출과 신학의 깊이와 넓이와 이해의 폭이 매우 확장됐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에 머물러 그 때의 방법과 태도로 설교하고 가르친다. 이것은 어쩌면 직분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말하고 싶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매일 수백 편의 설교가 쏟아지고, 유명 설교자들의 메시지가 인터넷을 연결하면 어디에서든 접할 수 있게 된다. 복된 일이기도 하지만, 많은 설교자들이 그것을 복사하고 베껴서 전달하는 일들이 많다. 물론 우리가 연구하는 것도 결국 남의 생각과 노력을 복사하는 것이 되지만,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고 재창조해내는 작업은 전혀 다른 것이다.

배움에 대해 열려있지 않으면 한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 자기의 것을 고집하고 습관을 유지하고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현장 사역에서 아주 어리석은 태도로 일하는 경우가 수없이 발생하여 현지의 역사를 퇴행시킨다.

선교사는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우리의 전통을 전수하려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선교사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조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목사요 지도자라는 태도도 버려야 한다. 현장의 목회자들이 훨씬 더 잘하지 않는가?

공무원은 '국민을 섬기는 자'라는 것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 선교사는 현장의 교회와 목회자를 섬기는 헌신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기름 번지르하게 바르고 항상 넥타이 메고 점잖을 떠는 모습을 이제는 벗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식사모임에서도 항상 정장 차림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한국인 목사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문화적 요소라고 하지만, 현장을 누비는 선교사의 자세는 좀더 자유롭고 유연하고 현장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을 제외하고 변화와 개혁을 이루는 것이 좋은 태도가 아닐까? 열린 마음으로 배우라!

세르게이 선교사(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