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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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중심에 있는 신학적 개념인 죄는 교회 안팎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죄는 항상 말하기 꺼려지는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죄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기독교인들이 가진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 4가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했다.

1. ‘죄는 하늘의 쌓아놓은 신용카드 빚과 같다. 예수님은 이를 모두 갚아주신다!’

전도에 사용되는 4영리가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당신은 죄인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셨고 당신의 죄를 깨끗케하셨다. 당신이 천국에 갈 때까지 이에 대해 감사하면 된다.

전도의 영역 밖에서도 하나님은 주로 선악에 대한 심판자로 인식된다. 그분은 매일의 우리의 삶의 행위를 판단하고 계신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당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매우 비인간적이고, 소극적이며, 궁극적으로 율법적인 분으로 여기게 한다.

이같은 마음의 태도는 우리를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쉽고 편하게 무시할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땅의 삶에 죄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만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상은 정 반대이다.

2. ‘죄는 그냥 개인적으로 내가 잘못한 일들이다.’

죄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죄를 완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다. 죄는 물론 개인적으로 잘못된 행위가 맞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이보다 훨씬 크다. 죄는 나라와 공동체, 사회 구조에 속해 있다. 또 기업이나 단체도 죄를 저지른다.

이스라엘이 가난한 자, 고아, 과부, 이방인들을 무시했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들이 특정 인물의 이름을 부른 것은 아니었다. 이는 공동체적인 불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이같은 죄를 허용하는 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마찬가지로 죄는 우리가 잘못 행한 어떤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멈추지 못하고 계속 허용해왔던 잘못들이다.

이는 우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지만, 죄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처한 상황과 각 단체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퍼져있는지 살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3. ‘죄는 그냥 괜찮고 좀 섹시하다.’

‘7가지 치명적인 죄’의 이름을 딴 아이스크림이 출시된 적도 있다. 도발적인 광고 덕에 죄는 어느 정도 세속적이고 섹시한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마치 초콜릿과 같이. 조금은 외설적이고 무례하지만 좋은 쪽으로 나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일부 사람들이 상상하는 죄의 이미지일 것이다.

동일하게,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죄가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이다.

불행히도 성경과 우리의 실제 삶은 훨씬 더 암울한 현실을 가르킨다. 죄는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힘이며, 이것이 커지면 모든 생명을 죽인다. 모든 끔찍하고 해로운 중독도 이러한 파괴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선택은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며, 잘못된 행동은 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모든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관계와 기회들, 선한 것을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한다. 죄는 단순하지 않다. 매우 심각하게 파괴적이다.

4. ‘죄인은 교회 밖에 있고, 사회는 매우 심각하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세리와 창기들을 천국과 거리가 먼 죄인들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나중 온 자가 먼저되고 먼저 온 자가 나중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용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자신의 의로움에 찌든 그들의 모습을 강력히 비판하셨다. 시인 제퍼슨 베스키는 “교회는 선한 사람들의 박물관이 아니라 깨진 자들의 병원”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신학은 항상 우리가 선택한 특정한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죄에 속해있다고 이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쉽게 놓치고 교회를 의인들이 근거지로 여긴다. 그리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정죄한다. 누군가 죄적인 어떤 것을 믿는다고 해서, 당연히 미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안전할 수 있겠는가? 교회와 교회 안에 있는 자들도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를 판단하려고 한다면, 주님은 먼저 오랜시간 거울을 먼저 살펴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