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배달하는 ‘달동네 교회’의 아름다운 이야기

김진영 기자 입력 : 2017.08.22 17:35

[인터뷰]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 “주는 게 더 행복”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가 ‘작은 이들의 벗’이라고 적힌 액자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옥수중앙교회가 있는 서울 금호동 주변은 소위 '달동네'였다. 여러 아파트가 들어선 지금이야 그런 흔적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아주 달라진 건 아니다. 그 만큼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었다. 이 교회 담임인 호용한 목사가 지난 2001년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그 정도는 더 심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교회가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그런데 교회 사정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옥수중앙교회 교인들도 알고 보면 다 이 지역 주민들이니까.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호 목사에게 목돈이 생겼다. 공금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돈이었다. 그냥 써버려도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호 목사는 그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것이 지난 약 16년 동안 옥수중앙교회로 하여금 기적을 체험하게 한 출발점이었다. 바로 비우면 채워진다는 기적, 그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무더웠던 8월의 어느날, 교회 인근 카페에서 직접 아이스 커피를 사, 웃으며 기자 앞에 내미는 호 목사와 마주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옥수중앙교회는 지역 사회를 잘 섬기는 교회로 유명하다.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달동네이기도 한 이 지역 주민들이 과연 무얼 필요로 할지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지역을 섬기는 건, 지역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다만, 부임 첫해 우연히 큰 돈을 손에 쥐게 된 게 본격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라면 계기였다. 그 돈을 받아들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 이걸 교회에 내어놓고 지역을 위해 쓰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웃들을 돕고 싶어도 교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선뜻 하지 못했는데, 담임목사인 내가 솔선수범하면 그런 나눔의 정신이 혹시 교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조금 있었다.

역시나 교인들이 감동했다. 그들이 조금씩 더 내어놓으면서 '씨드머니'가 생겼다. 그걸로 쌀과 라면 등을 사서 배고픈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줬다."

-그렇게 일회성으로 끝난 건가?

"아니다. 그 때 교인 150명이 작정을 해서 매월 350만 원의 구제헌금을 했다. 1년에 약 4천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헌금을 작정한 교인들이 주변에 그 사실을 알리면서 동참을 호소하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까지 좋은 곳에 써 달라며 돈을 보내 왔다. 그렇게 매년 1억에 가까운 돈이 모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돈으로 지역 사회 이곳 저곳을 섬기고 있다. 장학회도 만들어서 매년 대학생 20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그 수가 350명 쯤 된다."

-옥수중앙교회 하면 '우유 배달'이 마치 연관검색어처럼 따라 온다.

"사실 우유 배달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야 말로 우연이었다. 지난 2003년, 사업을 하는 처남이, 자기는 비록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무얼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마침 동네에 골다공증을 앓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사실이 떠올라 우유 배달을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한 처남이 100가정에 배달할 수 있는 우윳값 200만 원을, 3년 동안 헌금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그럼 3년 후엔 어떻게 했나?

"물론 처남은 더 이상 우윳값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유 배달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우유를 주진 못할 망정, 하던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결국 교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취지를 설명하고, 유윳값을 정기적으로 헌금할 교인을 모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딱 원했던 만큼의 액수를 교인들이 헌금하겠다고 약속했다. 참 감사했다.

그렇게 2011년까지 교인들의 도움으로 지역 사회 어려운 이웃들에게 우유를 배달했다. 그러다 2012년, 교인 중 한 명이 자기가 우윳값을 대신 내겠다며 불쑥 나를 찾아왔다. 그가 바로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사업이 번창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적자를 내고 있을 때였는데, 그런데도 매월 5백만 원이나 되는 우윳값을 내겠다고 내게 약속을 한 것이다. 그가 지금처럼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어려운 중에도 그렇게 내어놓을 수 있는 그의 신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놀라운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봉진 대표의 도움으로 우유 배달을 이어가던 2015년 어느날, 미국의 거대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직원들이 교회로 나를 찾아왔다. 왠일인가 싶었다. 이유인즉, 골드만삭스가 배달의 민족에 투자를 했는데, 김봉진 대표가 우리 교회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니, 정말 그런지 확인차 왔던 거였다.

그래서 교회가 김 대표에게 받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고, 왜 그렇게 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 얘기를 듣고 그들은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후 골드만삭스 측이 교회로 거액의 기부금을 보내왔다. 교회의 사역에 감동을 받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신기하기도 하고 어떨떨 했다.

교회는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섬김 사역을 펼치기 위해 그 돈으로 별도의 법인을 설립했다. 그랬더니 여러 기업에서 기부금을 보내왔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100가정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우유 배달은 지금 서울시 내 9개 구 약 1,300가정 규모로 커졌다. 앞으로 25개 구 전부로 그 대상을 넓히는 게 목표다."

옥수중앙교회
▲언덕 위에 있는 옥수중앙교회. 그곳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러 아파트가 들어서고 많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달동네’의 흔적을 갖고 있다. ⓒ김진영 기자
-우유를 각 가정에 배달하면서 고독사 한 독거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교회 주변이 달동네이다보니 자식 없이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다. 그들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도 가족이 없어 금새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한때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우유가 하나의 사인(sign)이 됐다. 그날 배달했던 우유가 다음 날에도 그대로 있으면, 그 집에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신호였다. 실제 고독사한 노인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수가 1년에 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럼 바로 구청에 신고를 한다.

그저 골다공증으로 힘들어하시는 어르신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우유 배달이 의도치 않게 고독사한 노인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이 다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우유 배달도 그렇고 여러 구제 사업을 펼치며 이젠 교회 이름도 지역을 넘어 많이 알려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었나?

"전혀 아니다. 말했다시피, 그저 지역 주민들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게 지역교회로서 옥수중앙교회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돼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지역을 섬겨 상생하려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그렇게 교회가 지역의 일원으로 자리잡을 때, 전도도 가능하다고 본다. 거리에서 한 영혼을 만나 복음을 전하려는 구령의 열정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과 함께 보다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방법도 필요한 때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교회'에 나와야만 그게 전도라는 의식도 바꿔야 한다. 복음이 전해지고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면 그가 설사 다른 교회에 나간다 해도 우리가 여기에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한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 됐다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어떤 모양으로든 결실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못다한 말이 있다면?

"간혹 우리 교회가 가진 게 많아서 그 만큼 많이 나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 교회는 넉넉하지 못하다. 그 흔한 사찰집사도 없고 행정 사무원 하나 따로 두지 않는다. 다 우리 교인들이 스스로 교회를 돌본다. 그렇게 아끼고 또 아껴서 돕는 것이다.

나눔이란 가진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 아무리 부자라도 나누려는 마음,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2001년 이 교회에 부임한 뒤 약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몸부림쳐 왔다. 하나님께서 그런 순종을 기뻐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 것 같다. 한때 떠났던 교인들이 소문을 듣고 돌아왔고, 교회의 것을 나눴더니 교회 밖에서 더 많은 기부금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나님을, 그리고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나눔을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누구보다 나와 우리 교인들이 가장 기뻤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행복하다는 걸, 그리고 비우면 채워진다는 걸 비로소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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