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위르겐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19일에 광주로 잠입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최초로 취재한 베테랑 외신기자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은 애초 권력자의 불의가 유발한 비극이었다. 사건 발발 1년 전(1979년 3월) 보안사령관으로 발탁된 전두환은 자신의 심복들을 동원해 보안사령부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군 정보업무에 능한 수하들을 다수 거느린 덕에,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정보의 차단 및 통제에 성공했다.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즉시적 기록들이 조직적으로 파기되고 은폐된 까닭에, 지금까지 누구도 정확한 희생자 수를 알지 못한다. 승자의 편에서 역사를 기술하기 좋은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1937-2016) 같은 몇몇 외신기자들의 취재는 사건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그러면서도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당시 광주에 기자를 파견한 외국 언론사로는 힌츠페터가 소속된 독일 공영방송 ARD를 비롯해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볼티모어선(Baltimore Sun), AP통신(Associated Press)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힌츠페터가 가장 유명한 이유는 그가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직후 가장 먼저 광주 취재를 시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외신기자들이 5월 21일이 지나 광주에 잠입한 데 비해, 그는 5월 19일 김사복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광주에 잠입했다.

힌츠페터는 그저 그런 경력을 가진 기자가 아니었다. 1969년 베트남전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한 경험도 있고, 1973년부터는 일본 특파원으로 지내면서 한국의 여러 공안 사건을 취재했던 인물이다. 다시 말해, 당시로서는 세계의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의 사정에 정통했던 몇 안 되는 외신기자면서 위험지역 취재 경력이 있는 베테랑 기자였다.

그런 그가 목격한 광주민주화운동의 본질은 내란 폭동이 아니라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었다. 애초 사건 발발의 원인도 신군부 측에 있었고, 폭력 양상으로 격화된 원인도 신군부 측에 있었음을 힌츠페터는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발 늦게 광주에 잠입한 다른 외신기자들도 이구동성으로 힌츠페터가 목격하고 기록한 바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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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로 잠입한 힌츠페터와 외신기자들.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취재를 위해 서로 협력하였다.
◈사실과 내러티브: 'Historie'와 'Geschichte', 무엇이 진실인가?

대대로 역사는 승자의 편이었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적인 문화사조로 등극한 오늘날에는 거시적-객관적 역사보다 실존적-미시적 내러티브가 보다 가치있고 유의미한 역사로 점차 인정받는 추세다. 실존철학에서는 전자를 독일어 Historie(히스토리에)로, 후자를 Geschichte(게쉬히테)로 표현한다.

'Historie'는 주로 승자에 의해 작성된 공적 기록으로서 '죽은 역사'를 말한다. 반면 'Geschichte'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 체험한 자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말한다. 'Geschichte'는 그저 기록에만 남는 역사가 아니라, 증언하는 자와 그 증언을 듣는 자의 삶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이야기(narrative)다. 간단히 말해 'Geschichte'는 삶에 근원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다.

당시 일을 직접 목격한 광주 시민들의 증언이나 힌츠페터 등의 기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의 증언이 참된 'Geschichte'로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주목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전달해 주는 애달픔과 감동이 우리 삶을 움직이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개인의 실존적 내러티브를 드라마적 서사로 재현함으로써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강렬한 'Geschichte'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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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김만섭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은 단순히 벌어졌던 일, 즉 ‘Historie’가 아니라, 그의 사고방식과 삶을 근저로부터 바꾸어 놓은 개인적 역사, 즉 ‘Geschichte’다.
고전적인, 혹은 근대적인 사고에 갇힌 이들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때 주로 'Historie'에 의존한다. 이런 이들은 당시 권력자들의 주장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을 내란폭동으로 인식하거나 폭력적 민란 정도로 규정한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세속적인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

이들에게는 힘을 가진 이들을 우러러보고, 그 힘의 의로움과 불의함 여부보다는 힘의 규모 자체를 숭상하는 사고방식이 각인되어 있다. 이런 자들은 힘을 가진 자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 있었던 광주민들의 증언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한 공신력을 가진 외신기자들의 안목조차 부정하는 누를 범하는 듯하다.

<택시운전사>는 단지 광주의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불의가 승한 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삶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사람들은 수시로 불의를 목격하는 가운데 단순 목격자 혹은 방관자로 남을지, 아니면 그 불의를 증언하고 고발하는 증인이 될지 선택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전자는 자신이 본 것을 단순한 과거의 일, 즉 'Historie'로 취급하는 자들이고, 후자는 'Geschichte'로 여기는 자들이다. 목격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자기 삶 바깥에 두고 '감상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목격한 일의 의미 해석을, 힘을 가진 자들에게 위임한다. 반면 증인들은 자신이 체험한 사건을 자기 삶 속으로 들여놓고 그 의미와 가치를 길어내기 위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이들이다.

기독교인은 기본적으로 'Geschichte'의 관점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바라본다. 기독교의 증인들, 즉 'μάρτυς(martus)'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단순 역사적 사실로만 목격한 이들이 아니다. 이들이 목격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 동시에 삶 전체를 근본부터 변화시키는 내밀한 개인적 체험의 원동력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주변 세계를 지향하고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개개인의 증언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택시운전사>가 전하는 광주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진실된 삶의 내러티브, 즉 'Geschichte'로 듣고 성찰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갖춘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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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증인들만이 그날의 일을 ‘Geschichte’로서 전달해 줄 수 있다. <택시운전사>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증인들의 생생하고 가슴아픈 삶의 내러티브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과 권세: 권세들에 복종하라(롬 13:1-7)

광주민주화운동이 내란폭동이 아닌 권력자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면, 이제 기독교인의 관심사는 권력의 정당성 문제, 그리고 권세에의 복종 문제로 넘어간다. 사도 바울은 권세를 대하는 기독교인의 자세와 관련하여 다음의 유명한 명령을 남겼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

이 명령은 교리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숱한 논란을 낳았다.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권세들은 거의 다 악을 저지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때문에 권세와 관련된 사도 바울의 명령은 신정론(theodicy)의 주제로 발전되곤 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다음의 질문을 두고 절박하게 고뇌하고 탄식했다. "권세들이 하나님께로 나온 것이라면 과연 이렇게까지 악독할 수 있을까?"

만약 바울이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증인된 삶을 영위했다면, 후세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고민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전도와 목회를 위해 헌신하던 기간 내내 로마제국 권세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힘과 훼방을 당했으며, 결국 로마 황제 네로(Nero Cladius Caesar, 37-68)에 의해 목이 잘려 죽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남긴 명령이기에 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대대로 해결되지 않는 난제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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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을 장대에 묶어 화형시키는 로마 권세자들. 이런 악독한 박해가 가해지는 와중에도 바울과 사도들과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권세들에 저항치 말고 굴복하라 명했다. 과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누가 봐도 악의로 충만한 것이 분명한 권세에도 굴복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악독한 권세라도 굴복해야 한다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고 따라야 할까?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하나로 인정받는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극심한 심적 고난을 감수하는 가운데 이 질문에 답하려 했다.

어거스틴은 회심하고 침례를 받은 이듬해(388년)부터 생을 마감하던 해(430년)까지 약 40여년간 신학자와 목회자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 서로마 제국은 한창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고트족(Goths), 반달족(Vandals) 등 게르만 계열 이민족은 쇠약해진 제국을 끊임없이 침탈하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오랜 기간 북아프리카 히포(Hippo)의 주교로 헌신했는데,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이 힘써 섬겼던 교회가 침략자들에 의해 약탈되는 현장을 병상에서 목격하는 불운을 맞이했다.

당시 로마 동부로부터 침입해 온 이민족은 로마인 입장에서 보면 흉악한 야만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재물 약탈은 기본이고, 수시로 살인과 강간을 자행했다. 제국의 국방과 치안 기능이 붕괴되는 가운데, 고통받던 서로마 제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원인을 묻기 시작했다. 특히 410년 알라릭 1세(Alaric I)가 지휘하던 서고트족(Visigoths)이 로마를 점령해서 약탈했을 때 로마 제국민 모두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제국이 왜 악독한 야만인들의 침탈에 고통받아야 하는가? 왜 신실한 기독교인 형제들이 살해당하고 자매들이 납치돼 강간을 당해야 하는가? 자매들 가운데 일부는 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가?

교회가 이 질문에 대해 온전한 답을 제시해 주지 않은 까닭에 신자들 사이에 기독교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가 만연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거스틴은 성경적 답변을 제시해 주려 했고, 그 결과 <고백록(Confessionum)>과 함께 어거스틴 필생의 역작으로 지목되는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이 빛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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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이 저술과 목회 활동에 전념했던 북아프리카 히포(Hippo). 현재는 알제리에 속해 있는 지역이다. 고대 히포 시가지 터가 보인다(오른쪽).
◈사실과 공의: 권세들의 악행과 기독교인의 고난

<하나님의 도성>은 어거스틴이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 3년 후(413년)부터 시작해 426년까지 무려 1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집필한 대작이다. <하나님의 도성>에서 어거스틴은 "권세가 하나님께로 났다"는 말의 의미를 자세히 풀어서 밝힌다. 우선 그는 이 땅의 권세들이 모두 근본적으로 악을 기반으로 탄생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권세들이 본원적으로 악한 이유를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의 도성, 즉 천국과 달리 이 세상의 국가들은 모두 무단 점령, 살인, 약탈을 통해 수립되었다. 고대부터 위대하다고 칭송되던 제국들, 아시리아(Assyria), 바빌로니아(Babylon), 페르시아(Persia), 마케도니아(Macedon) 제국 모두 살인과 약탈을 통해 국가를 확장하고 권세를 확보했다.

로마도 다를 바 없었다. 로마의 권세가 오래 지속된 것은 결코 로마의 권세가 선량해서가 아니라, 로마제국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그분의 일(그리스도의 초림과 기독교의 전파)을 이루시려 한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로마의 권세가 무너지고 있다 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을 필요는 없다. 애초 국가 권력이라는 것은 탐욕을 바탕으로 확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권세들 사이에 선악의 정도 차이는 존재한다. 현명하고 선한 군주의 권세가 악독하고 탐욕스러운 군주의 권세보다는 낫다.

그렇다 한들 권세 자체가 갖는 속성, 즉 타국의 부를 약탈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악을 자행하고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속성은 변함이 없다. 자국민에게 현군으로 칭송받던 이들 대부분이 타국민에게는 공포스러운 침탈자이자 압제자였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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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의 중세 라틴어 판본들. 하늘의 도성과 땅의 도성 간 구분이 명확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명령했을 때, '굴복'이란 말의 의미는 국가 권력이 필히 저지르게 되는 악행에 동참하거나 동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권세들 사이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려 힘쓰고, 그 섭리를 거스려 역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이런 의미에서 '굴복'이란 일면 소극적 성격을 갖는다. 기독교인이 일순간이라도 국가 권력 행사에 적극 동참하거나 동조하는 즉시, 국가 권력이 자행하는 악행에 참여할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권세들의 악행은 하나님의 거시적 섭리 가운데서 자행되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거기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이상이 권세들의 악한 속성에 대한 어거스틴의 해명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 즉 권세들의 악행이 기독교인 개인을 향해 자행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은 권세를 인정하고 거기에 굴복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혹 그리스도인 개인의 재산과 육체의 정절, 생명까지 빼앗는 결과를 낳더라도 이런 악에 대해 초법적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이런 굴복의 자세가 불의한 권세 자체에 대한 굴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권세들이 사람 개개인,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저지르는 악행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한다.

권세들의 악행 자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아니다. 이런 악행들로 인해 권세자들은 스스로의 머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권세들의 악행을 세상을 향한 징벌의 한 방편으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이 저지르는 학살, 약탈, 강간, 비리 등을 방조하시는 것은 그 일들을 옳다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세상과 성도들을 징책하는 도구로 삼기 적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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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과 악인에 상관없이 엄습하는 고통과 재앙은 많은 기독교인들을 고뇌에 빠지게 만든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성경적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 부심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인과 악인에게 차별 없이 해와 비를 내리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선인과 악인이 동일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묵인하신다. 여기에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현세적 삶에 대한 사랑을 징책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

악행 자체가 하나님께서 원하시거나 명하시는 바는 아니다. 권세자들은 그들의 욕심을 따라 악을 자행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묵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일단면을 이 세상에 보여주고 계신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칭의를 받았다 해서 그들이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선인과 악인은 비록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완전히 상반되는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현세적 생활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선인들이 악인과 다른 점은 적극적으로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의롭다 함을 얻은 기독교인들이 현세적 삶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현세적 삶에 대한 사랑을 징책하기 위해, 이 땅에서 불의한 권세들을 통해 가해지는 징벌은 자주 기독교인의 재산과 명예와 목숨을 앗아간다. 그러나 재산과 명예와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천국, 즉 하나님의 도성에 입성할 수 있는 은혜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선인과 악인이 같은 고난을 당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이 불평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고 돌아보는 데 전념할 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저항을 지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도성에 대한 소망, 그리고 영생과 영벌에 대한 믿음은 이 땅에서 자행되는 모든 부당해 보이는 악행들 이면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안목을 제공한다.

이상이 불의한 권세에 대한, 그리고 권세에의 굴복에 대한 어거스틴의 해명이다. 그리스도인은 권세들이 원천적으로 불의하다는 사실을 깊게 고찰하고, 권세들의 악행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묵인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권세에의 굴복이란 이런 정황 속에서 온전하게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사유는 민주주의적 정치질서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낯섦은 자주 사도의 명령에 대한 오해를 낳아, 결국 권세 자체에 아첨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게 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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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라는 개념을 명료하게 밝힌 헨리 데이비드 소로(왼쪽). 이 개념을 가장 훌륭하게 현실화시킨 이는 마틴 루터 킹 목사(오른쪽)다.
◈사실과 처세: 권력지향성에 의한 사실의 부정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도성>에서 수행한 권세와 기독교인의 관계 성찰은 훗날의 위대한 신학자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칼빈(John Calvin, 1509-1564),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등에 의해 비판적으로 혹은 창조적으로 계승되었다. <하나님의 도성>은 전통적인 기독교 정치관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인 것이다.

이런 어거스틴의 성찰을 판단의 준거로 삼아 영화 <택시운전사>를, 그리고 1980년 5월의 광주를 돌아보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우선 광주민주화운동에 결부된 선악 간 판단은 명확하다. 정통성 없는 권력이 광주 시민의 재산, 생명, 그리고 정치적 권리를 침탈한 일은 기독교적 관점으로든 민주주의적 관점으로든 악이다. 당시 신군부의 권세는 악했고, 그 악한 본성을 광주 시민들에게 드러냈다. 이에 대한 판단이 흐릿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선악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다.

다만 이 불의에 억압당하는 자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적 대응방식과 민주주의 이념이 추구하는 대응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 이념은 현세의 정의에 눈을 돌린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일개 쿠데타 지휘자가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의 정의가, 민주주의 이념이 제시하는 최고의 대의(大義)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민주주의의 체제운영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직접민주주의, 다른 하나는 대의민주주의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좌절시킨 신군부는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유일한 민주주의 운영 방식인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시켰다.

법제화된 민주주의 실현 통로가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 민주주의 열망을 표출할 방법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제안했던 방식, 즉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다. 이는 분명 민주주의 정신이 보장하는 저항의 방식이다. 신군부는 평화시위로 시작된 시민의 불복종에 학살이라는 방식으로 답했다.

기독교적 대응방식은 애초에 민주주의 좌절 단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는다. 또한 정통성이 결여된 권력자들이 계속된 악행으로 인해,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스스로 쇠락하는 날을 기다린다. 법이 보장하는 한도 안에서, 그리고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불의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보호하는 데 힘쓴다.

그리고 고난의 원인이 되는 죄악을 찾아 회개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 당시 초기 기독교인들이 따랐던 방식이고, 대다수의 종교개혁가들이 가톨릭 교회와 결탁한 권세자들의 살해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기독교와 민주주의 양자 간 대응방식 차이가 확연하긴 하나, 분명한 점은 양측 모두 불의한 권세에 동참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주류 인사들은 "권세에 굴복하라"는 명령을 적극적 동조로 오해한 나머지, 혹은 일부러 오역한 나머지, 어떤 사안에서든 권세자 편에 서서 아부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기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정의와 선을 찾고자 하는 이들을 크게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일정 부분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일제 신사참배 강요 사건을 기점으로 정치를 대하는 한국교회의 주류 정서는 신앙의 판단과 전혀 무관하게 권세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고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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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시위대를 취재하는 힌츠페터. 그가 본 광주 시위대는 민주주의 정의를 실현하는 숭고한 정신을 갖고 있었다.
대략 이런 맥락에서, 1980년 8월 기독교 대표 인사들은 전두환 국보위 위원장을 옹호하는 조찬기도회를 개최했을 것이다. 국가 안위와 지도자의 올바른 정치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 권력 자체에 아부하는 요식행위는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내부에서 자행되는 노골적 권력지향 행태들, 예를 들어 교단 운영권을 둘러싼 불법 선거운동, 교회 치리의 주도권을 두고 목회자들과 장로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전투구, 교회의 기업화 및 관료제화, 헌금횡령과 비리, 대기업 편법승계 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편법 세습 등을 바라보면, 과연 기독교계가 권세자를 위한 기도회를 열 때 그 의도가 진정 성경적인 것인지 의심스럽다.

성경의, 사도들의, 그리고 어거스틴과 같이 존경받는 신학자들의 가르침은 기독교인들이 권세들에 순응하는 가운데 이 땅의 도성이 아닌 하나님의 도성을 소망하며 살도록 이끈다. 그러나 권세들이 본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악한 본성을 눈감고 넘어가거나 그 악한 본성에 동조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시민 불복종과 같은 민주주의 정신은 비록 기독교적 가르침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의와 불의를 엄밀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정서와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택시운전사>가 보여주는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은 기독교 관점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숭고한 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신앙의 정신을 왜곡해서 불의한 권세에 아부하는 일, 그리고 비록 신앙으로부터 유래된 것은 아니나 목숨을 걸고 불의에 저항하는 일, 어느 편이 상대적으로 더 의로운지 판단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