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사건은 히위 족속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하고, 이에 분노한 시므온과 레위가 성의 모든 남자들을 할례를 빌미로 살육하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야곱이 형 에서의 위협으로부터 피해 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벧엘에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고 한 맹세를 행하지 않고, 세겜에 머물러 안주하다 야곱 일가에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의 징벌이자 경고였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 들어섰을 때, 아브라함이 취했던 행동을 본받아 하나님에게 단을 쌓았습니다. 그 이름은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곧장 벧엘로 가야 했지만, 중간에 세겜 에서 장막을 치며 거주하다 뼈아픈 사건을 체험하고 말았습니다.

사고를 저지른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은 그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고, 오직 디나와 의 혼인을 허락해 준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몰염치한 태도는 야곱 아들들의 마음을 더욱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후에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이 마치 여동생을 창녀 같이 취급했다고 말합니다. 돈을 주기만 하면 언제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창녀와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고를 부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야곱은 함구합니다. 오히려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고 했는데, 이는 '화를 입게 했다, 수치를 당하게 했다, 욕을 먹어 마땅하게 했다'는 뜻도 됩니다. 어떤 학자들은 야곱이 윤리적 차원에서 시므온과 레위의 행위를 책망하지 않고, 그들이 저지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미칠 위험만을 생각한다고 비난합니다.

창세기 49장 6-8절에서는 야곱이 직접적으로 아들들의 악한 행동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행위는 저주를 받을 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 그들의 살육은 어느 면으로 보나 끔찍한 죄악이기 때문에, 창세기의 기자는 고의적으로 야곱의 책망을 생략했을 수 있다고도 보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 교회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야곱이 곧장 벧엘로 갔더라면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도 디나를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정말 사랑하고 마음에 두었더라면, 사고를 치기 전 먼저 가서 혼인을 청했더라면, 이런 사고를 사전에 막았으리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사고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므온과 레위도 속히 가족에게 알려 서로 소통을 했더라면, 슬기롭게 해결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욱하는 급한 성격 때문에 비참한 사건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동생 디나를 이용해, 할례를 받도록 유혹합니다. 당시 할례는 주변 민족들 간에도 공공연하게 행해졌습니다. 특히 야곱은 가진 소유가 대단히 많아, 주변 사람들이 탐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겜 사람들은 별 의심이나 저항감 없이, 할례를 행하자고 하는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디나를 욕보인 세겜은 야곱의 재산 많음을 보고 나중에는 그것을 취하자고까지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저들을 죽이고 그 성에 있는 모든 것을 취하기 위해 할례를 요구하여 그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성취합니다.

세겜과 야곱의 아들 간의 물고 물리는 잔꾀 속에서, 시므온과 레위가 이긴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에게 장자를 뺏은 야곱의 잔머리가 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이 있나 봅니다.

특히 야곱에게 벧엘은 뜻깊은 장소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나타내셔서 야곱을 안심시키며,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장소였습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그는 그 곳에 기둥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 기둥 위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고 서약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약속의 이행을 위해 야곱은 이제 벧엘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곧 디나의 사건이 하나의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를 지었으면 응당 거기에 상응하는 사과와 회개가 반드시 뒤따라야 함을 배웁니다. 일을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당당하게 더 큰 것을 쟁취하려는 교만함과 탐욕에는 늘 화가 뒤따른다는 것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교훈입니다.

믿음의 조상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요 종들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에 따른 모든 것들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종이 교만하여 주인 행세를 한다면, 주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고단하시겠습니까?

요즘 시대,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에 부응하지 않는 성도에게 교회를 나오지 말라고 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다고 개개인에게 전화를 해서 위압감을 주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합니다. 지도자들의 그 어리석은 교회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떠나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면서 많은 경비를 들여 총동원 전도주일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감동 없는 잔치에는 늘 사탄들이 우글우글할 뿐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기위해 그 큰 화를 감내하며 벧엘로 올라간 사실에 대해서는 어찌 함구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자신들이 함께 약속하고 설정하여 놓은 사실을 왜곡하며 지키지 않는다면, 야곱이 서약했던 일을 잊고 안주한 탓에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 참혹한 현실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맹세했던 약속들은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목자와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에 눈치를 보거나 함구하며, 잘못을 저지르는 지도자들 편에서 동조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나머지 많은 양떼들에게 상처와 절망을 줄 것입니다. 그것은 고스란히 하나님의 마음을 힘들게 하며 아프게 하는 것 아닐까요?

하몰의 아들 세겜의 교만함, 시므온과 레위의 교만함과 탐욕이 부른 슬픈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처참히 죽임과 괴로움을 당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줍니다.

모든 신앙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진실하게 회개하며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서약하고 맹세했던 벧엘로 반드시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