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남형두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표절에서 자유로운 정직한 글쓰기'라는 주제로 홍성사 주최 공개특강이 11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개최됐다.

이날 특강에서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지난 2005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지식재산권법을 연구하고 있는 남형두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가 2시간 동안 강연했다.

강연에서 남형두 교수는 최근 표절 시비가 잦아진 이유에 대해 "이전보다 표절이 늘었다기보다, 우리나라가 학벌 사회로써 학위를 선망하다 보니 학술적 글쓰기가 보편화됐고, 글쓰기가 컴퓨터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논문 원문 DB를 인터넷으로 쉽게 볼 수 있고, 표절 여부를 가리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 등 디지털화로 인해 표절을 발견하는 일이 전보다 쉬워진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우리 사회의 표절 논의를 '요격용 미사일'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표절'이라는 미사일이 발사되면 평생 낙인이 떨어져 살아가는 일은 있어도, 표절 여부를 전문가들의 끝까지 검증한 사례는 손에 꼽는다"며 "이 '낙인효과'란 너무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를 통해 표절이라면 그 사람을 더 이상 학계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표절이 아니라면 그 낙인을 벗겨줘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자신이 싫어하거나 어떤 일에 있어 경쟁하던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표절 논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제가 쓴 <표절론> 부제가 오늘 강의 제목인 '표절에서 자유로운 정직한 글쓰기'였다. 다시 말해 누구를 죽이고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표절을 공부해선 안 되고, 그러라고 제가 <표절론>을 쓴 것도 아니다"고 전했다.

그는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모양인데, 이것을 기화로 표절에 대해 공부해 보자고 한 홍성사와 정애주 대표님의 발상이 놀랍다"며 "끝까지 가서 표절인지 아닌지 검증하고 교훈을 얻는 쪽으로 간다면 이번 표절 논의가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형두 교수는 "작금의 표절 논의가 굉장히 우려스러운 것은,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비전문가들이 이 논쟁에 너무 결정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며 "갖다 썼다는 부분이 '일반 지식'이라면 표절이 아니고, 그것이 '독창적 아이디어'인지 '일반 지식'인지 구별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했다.

남 교수는 "미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표절 관련 사건이 있었는데, 제보된 후 결정을 내릴 때까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 과정을 기록한 논문이 있을 정도"라며 "표절을 심사하려면 심리학자와 법학자들까지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해야 한다. 이것이 학문의 과정이고, 그러면서 학문은 발전하는 것이다. 표절 논의도 건강한 학문 발전 과정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06년 교육부 장관에 지명됐다 논문 표절 문제로 사퇴한 김병준 교수를 예로 들면서 "김 교수가 표절을 하지 않았다면, 너무 억울해서 자다가도 숨 막혀 죽을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그렇게 끝났다"며 "표절이라고 결론이 나면 학계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겠지만, 결정이 나지 않은 사안이라면 언론에 보도가 돼서도 안 되고, 접근도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표절
▲남형두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차이점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저작권법은 창작물만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이용자들도 보호하는 법률"이라며 "보호기간 하나만 갖고도 창작자를 적절하게 보호할 수 있고, 과도한 저작권 보호로부터 이용자들을 보호할 수도 있다. 저작권법의 최종 목적은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과 발전"이라고 소개했다.

저작권법상의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사상 또는 감정' 그 자체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저작권법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저작권법은 '표현'된 것만 보호한다"며 "표절은 타인의 저작물이나 독창적 아이디어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발표하는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와 다르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 학문과 관련돼 있기에, 저작권 침해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도 했다.

남형두 교수는 "저작권법은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지지만, 표절은 윤리적 책임만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윤리적 문제이니 괜찮다'고 말해선 안 된다. 윤리적 문제이니 표절이 저작권법 위반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모든 사회 문제를 다 사법부로 가져가려는 소위 '사법 통치(Juristocracy)'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신경숙 표절, 천경자나 조영남 위작 사건을 보라. 예술가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충분한 논의 없이 사법부로 가져가 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검찰이나 법원은 '묻는 말'에만 답하지,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조영남 사건은 '대작'했다는 화가가 시인하지 않아 '사기죄'로, 신경숙 사건도 '업무방해'로 기소됐을 뿐이기에 '표절'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조영남 사건은 법정으로 가선 안 되는 사건이었다. 현대미술가 뒤샹은 '나는 작품에 관심없고 작가에 관심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미술가와 미학자들이 깊이 논의하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며 "천경자 화백도 '자기 새끼를 못 알아보는 에미가 있느냐'고까지 했다. 사실상 작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임에도, 미술계에서 '못 알아보는 에미도 있다'고 했다. 이는 막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신경숙 소설가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표절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라며 "사법부는 사기죄나 업무방해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있지만, 표절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정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남 교수는 "표절은 피해가 있느냐 없느냐에 관심이 있기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도 표절이 될 수 있다"며 "표절은 저작권 당사자뿐 아니라 독자와 학계 전체가 피해자일 수 있다. 독자는 표절인 줄 모르고 읽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정직하게 오랜 시간 걸려 논문을 쓴 다른 학자들이 표절 학자들로 인해 진급 등에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남형두 교수는 "표절한 책이 도서관에 비치돼 있고 시중에도 유통되는 한, 표절에는 시효가 없다"며 "우리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가 아니라 '반드시 가지 않으면 서울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앞서 홍성사 정애주 대표는 이번 특강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정 대표는 "저희는 저자들의 저작물을 가공해 독자들에게 유통하는 집단으로, 독자와 저자 사이에 혹여라도 거짓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기 위해 출판교양 상식을 부단히 함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제 임기 중 저자의 문제로 절판한 책이 한 권 있는데, 그 경우에도 1년여의 조사와 확인을 통해 조치한 바 있다"며 "저자는 일절 대화를 원하지 않았고 변명도 없었기에 절판 조치한 후, 독자들에게는 본사와 서점을 통해 환불조치를 하고, 서점반품과 서고 재고까지 모두 파쇄했다"고 덧붙였다.

정애주 대표는 "최근 표절 의심에 대한 제보를 받아, 의견을 접수한 후 내부조사를 통해 '이유 있다'고 판단해 전수조사를 하기로 하고 제보자의 추천을 받은 두 명의 교수에게 의뢰했으나 모두 고사했고 제보자도 사양한 상태"라며 "독자들과 저작자들, 출판인들의 출판교양 상식 증진을 위해 향후 몇 가지 의미 있는 공개 공부를 더 하고자 한다"고도 했다.

이날 홍성사는 특강 참가자들에게 책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를 선물했다. 이 책에 대해 정 대표는 "이 책은 번역에 아쉬움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재번역'을 하고 있다"며 "이 책을 읽으시다 개정판이 나오면 갖고 오시라. 새 책으로 바꿔 드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