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후기 스콜라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비판

입력 : 2017.08.13 19:34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지상강좌] ④

*본지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의 논문 '종교개혁의 신학적 원리와 성경의 권위'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지상강좌]라는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제4회 종로포럼
▲김재성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루터의 반스콜라주의 신학사상

15세기 인문주의가 확산되면서, 근대 서구 사상에서 인간 중심의 자율적 의지에 대한 강조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루터는 죄를 범한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짓눌려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은총을 근간으로 하는데, 십자가에서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루터가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것은 성경의 의미를 명쾌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조직적인 교리체계를 제시한 적이 없었다. 그는 스콜라주의를 비판하고, 면죄부의 남용을 지적하고, 십자가 신학을 주장했다. 그러는 사이에 종교개혁의 선두주자로 등장하였지만, 사실은 루터가 기독교 신앙에서 독창성이나 근원적인 정통교리를 최초로 세웠던 것은 아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성경강해를 맡은 교수였고, 충실하게 그의 직분을 감당하였다.

1) 초기 성경 연구

루터는 철저하게 성경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1505년에 어거스틴파 은둔수도회에 들어가서, 기초 교육을 마치고 1507년 신부로서 서품을 받았고, 지속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게 되었다. 1508년 10월에 스승 스타우핏츠의 부름을 따라서 비텐베르크 대학교로 옮겨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1509년 3월에 학사 학위를 받았고, 스콜라주의 기초교리를 강의할 수 있었다. 1512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음 해부터 정규교수가 되었으며, 시편강해 (1513-1515), 로마서 강해 (1515-1516), 갈라디아서 강해 (1516-1517), 히브리서 강해 (1517-1518) 등으로 이어졌다.

시편강의를 하면서 면죄부 판매의 남용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진실하게 회개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한 바 있었다. 루터는 시편을 전체적으로 예수님의 기도문이라고 풀이하면서, 겸손, 교만, 심판, 신뢰, 복음 등 주로 예수님과 관련된 의미들을 설명하였다. 루터는 1513년부터 시편 강해를 할 때에, 특히 104편 14절 해석에서 발라를 우호적으로 언급했다. "발라는 이탈리아 최고의 학자이다. 그는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그의 저서를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 1514년부터 1517년 사이에 초기 설교에 보면, 발라를 참고했음이 드러나는데, 누가복음 14장 10절에 대한 설교에서도 발라의 해석을 채택하였다.

1517년 9월 4일, 루터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반대하는 97개 조항을 만들어서 스콜라주의를 논박했다.

철학적인 개념들과 신학적인 질문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논쟁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루터는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원칙적으로 신학에서는 전혀 그런 것들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철학을 사용하는 것은 해로운 것이다."

1517년 10월 31일, 95개 조항을 내걸고, 면죄부를 팔아서 이득을 취하는 교황의 권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루터는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여 말씀과 성례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인 견해들을 제기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는데, 그 모든 철학자들과 교황주의자들 보다도 성경 안에서 배웠다."

루터는 어거스틴의 은총론에 기초하여 점차 스콜라주의자들이 펠라기우스주의에 빠져 있음을 비판하였다. 교회가 아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기초한 성경에서만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는 구원에 이르는 충분한 진리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2) 후기 스콜라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비판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살았던 시대에 최고 학문은 중세말기 교회가 제공하던 스콜라주의 신학이었다. 스콜라주의란 1250년부터 1500년까지 종교적인 신념들을 이성적으로 정당화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일에 강조점을 두었던 중세 시대의 신학을 의미하는데, 모든 학문의 왕관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분석하면, 스콜라주의란 기독교 신학의 교리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신앙체계라기보다는 신학을 조직하는 방법론을 가리킨다. 중세 시대에 학문은 거의 신학적 영향 하에서 교회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교육 기관들과 수도원은 스콜라주의라는 기독교 신학을 체계화하고 본래적인 합리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중세 스콜라주의 학파의 최고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저술들에 의하면(Thomism),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인 내용들을 철학의 합리성을 활용하여 증명하려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채용하여 기독교를 논증하는 저술들이 가장 절정기의 스콜라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흠모했던 아퀴나스는 다양한 철학적 논리와 논증적인 요소들을 세밀히 조사하여, 기독교 신학이 이성적인 논리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주도면밀하게 입증하려 했다. 둔스 스코투스(1265-1308)가 제시한 하나님의 두 가지 권능에 관한 대조적 변증법으로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을 뿐이다.

아퀴나스의 실재론이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인 개념을 활용한 것으로, 보편적인 것들은 구체적인 세부항목 하나하나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인 인식론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구학파"(via antiqua)라고 부르는데, 중세 시대의 스콜라주의는 신학의 핵심적인 인식론으로서 칭의를 이해할 때에도 "존재론"을 강조하였다.

하던 후기에 이르게 되면서, 실재론을 거부하는 유명론이 대두되면서 학문과 교회의 강조점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주의와 펠라기안주의가 대립해서, 중세시대에는 반펠라가우스주의(semi-pelagianism)가 널리 퍼져있었다.

14세기와 15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 인문주의가 확산되면서, 유명론(nominalsim)이라는 새로운 학풍이 "신학파"(via moderna)가 형성되었다. 사물이나 우주의 보편적인 개념을 추구하기 보다는 각 개별자의 특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윌리엄 옥캄(William of Ockham, 1288-1348)과 가브리엘 비엘(1420-95)로 이어지면서, 칭의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요시하였다. 칭의란 각 사람의 노력이나 선행을 넘어서서 외부적 차원이 있음과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에 대해서 더욱 더 강조하는 탐구자들이었다.

중세말기 스콜라주의 신학은 새로운 학풍의 등장과 함께, 어거스틴의 새로운 부흥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은총을 강조하는 또 다른 신학사조가 펼쳐지게 되는데 기여를 했다.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브레드워딘(Thomas Bradwardine, 1290-1349)과 리미니의 그레고리(Gregory of Rimini, 1300-38)가 주도하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이 전개되어졌고, 종교개혁자들에게 새로운 신학의 터전과 관점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여지는 후기 스콜라주의 어거스틴파 신학파를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특징들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철저하게 유명론적인 인식론을 갖고 있었다.

둘째, 주지주의자들에 맞서서, 공로를 인정하는 자발적인 행동을 추구하였다. 지식을 갖춘 사람이 이성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역할을 강조하는 자력주의다.

셋째, 어거스틴의 저술을 방대하게 사용하여 저술하고 가르쳤다. 특히 펠라기우스주의가 주장하던 것에 반대하였다.

넷째, 원죄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가 아주 강하였다. 타락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원죄는 구원의 경륜과 역사에 있어서 분수령으로 간주하였다.

다섯째, 칭의 교리 전반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특별한 은총과 연관성을 강조하였다.

결국, 중세시대 말기에 널리 퍼져있던 스콜라주의 신학파의 신학사상은 어거스틴과 로마 가톨릭의 공로사상이 뒤섞여있으며, 구원론에서 칭의와 성화를 혼란스럽게 섞어놓았음을 알 수 있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음 자에게 의롭다하심을 선포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중세 로마 교회는 성례제도를 통해서 주입되는 의로움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노력하여 공로를 세움으로 자신이 의로워지는 과정에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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