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락 오독
▲홍종락 번역가가 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나니아 연대기> 등을 쓴 문학가였던 C. S. 루이스의 문학비평론 <오독: 문학 비평의 실험> 출간기념회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개최됐다.

이날 출간기념회는 이 책을 번역한 홍종락 번역가의 강연 이후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됐다. 출간기념회에는 홍성사 임직원들을 비롯해 출판 관계자들과 독자들, C. S. 루이스를 사랑하는 팬들이 참석했다.

홍종락 번역가는 C. S. 루이스 관련서 <나니아 나라를 찾아서>를 공저했으며, <개인 기도>부터, <영광의 무게>, <피고석의 하나님>, <당신의 벗,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세상의 마지막 밤>, <실낙원 서문> 등 루이스 저서들을 번역했다. 뿐만 아니라 <루이스와 톨킨>, <루이스와 잭>, 등 C. S. 루이스 관련 서적들도 한글로 옮겼다.

홍성사의 'C. S. 루이스 정본 클래식' 22번째 책인 <오독(誤讀)>은 1963년 별세한 그가 1961년 펴낸 작품으로, 기존의 문학 비평 방식이 과연 정당하고 유익한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문학 비평 방식'을 실험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해 홍종락 번역가는 "우리는 보통 책을 이야기할 때 전문가의 권위를 빌려 좋은 책, 그리고 나쁜 책이라고 말한다. 이미 누군가의 판단에 따라 책을 접하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라며 "이는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책은 재미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좋은 책이라는 소개로 읽기 시작했지만 막상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할 때, 그 평판을 부정할 순 없으니 자신이 책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종락 오독
▲출간기념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는 "그래서 C. S. 루이스는 반대로 제안한다. 책 읽는 독자들의 반응을 먼저 보자는 것"이라며 "<오독> 전체를 통해 이러한 실험에 대해 풀어놓으면서 이러저런 피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 번역가는 '루이스와 함께 떠나는 책읽기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책 내용을 비롯해 독서와 번역, 그리고 C. S. 루이스 등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먼저 지난 1년 반 동안 번역한 책들을 소개했다. 최근 번역 순으로 존 레녹스(John Lennox)의 리처드 도킨스 비판서 <하나님의 장의사(God's Undertaker, 미출간)>, <존 파이퍼의 성경 읽기(두란노)>, C. S. 루이스의 <오독>과 <폐기된 세계상(The Discarded Image, 미출간)>, 루이스 전기를 썼던 루이스 전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복있는사람)>,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사랑 안에서의 정의(Justice in Love, 미출간)> 등인데, 이 책들의 공통점으로 "저자들 모두 C. S. 루이스를 한 번이라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독서에 대해선 '소설 <완득이>가 재미없다는 한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완득이>가 재미없다는 이 교회 주일학교 학생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진행했던 소설 <완득이> 독서퀴즈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이 아이는 퀴즈를 대비해 내용을 파악하고, 등장인물 이름과 줄거리를 달달 외웠던 것.

그는 "그렇게 해서 아이는 좋은 성적을 얻었지만, 그 책이 선사할 수 있었던 온갖 미덕, 즉 독서의 즐거움, 좋은 책에 푹 빠져들 때 얻을 수 있는 감동과 공감, 보편적 가치에 대한 깨달음 등을 다 놓치고 말았다"며 "이는 공부라는 이름으로 부과된 폭력이 아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홍종락 오독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홍종락 번역가는 "루이스는 이 책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교수들에 대해 '안 됐다'고 표현했다. 책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경험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러고 보니 저도 번역을 위해 읽는 책과 재미로 읽는 책이 따로 있었다. 루이스 책은 원래 즐거움을 위해 읽다가 번역을 위해 읽는 책이 된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번역을 위해 읽으면 아무래도 그냥 읽을 때보단 피곤하고 힘에 부친다. 제가 알고 싶은 내용에만 집중해서 읽고 관심없는 부분은 건너뛸 자유, 제 마음대로 느끼고 마는 자의적 해석의 기쁨 같은 것들이 없기 때문"이라며 "대신 모르는 것도 어떻게든 알아내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남들로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내야 하는 고된 길을 가야 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홍 번역가는 "루이스의 독서론은 한 마디로 '믿음의 독서론'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 대척점에는 니체와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 19세기 서양 주요 사상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의심의 해석학'이 서 있다"며 "이는 텍스트 속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권력의지와 경제적 이해관계, 억압된 성적 욕망을 간파하도록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독서'로 잘 알려진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그는 루이스의 <나니아 여대기> 마지막 책 <마지막 전투>에 나오는 '속지 않으려 단단히 마음먹는 캐릭터들', 즉 난쟁이들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누구에게도 속지 않고 누구 편도 들지 않으려다 결국 스스로가 만든 불신의 덫에 갇혀, 진실이 밝혀져도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됐다"며 "그러나 속을 수도 있는 상황,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은 믿음의 조건이기도 한 것 아닌가. 그러므로 상대가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리라 일단 믿어주고 귀를 열어놓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종락 번역가는 "무조건 속지 않겠다고 작정하면 속임수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배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더욱이 그런 태도는 큰 낭패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믿지 않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잔뜩 쪼그라들어, 엉뚱하고 가치 없는 편협한 것들만 믿고 붙들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오독>은 분명 책에 대한, 독서를 다룬 책으로 루이스의 독서론을 흥미롭게 살필 수 있고, 책과 읽기에 대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며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제 경험이기도 한데, 내용을 꼼꼼히 따라가다 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장소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삶과 인격을 대하는 태도와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고 전했다.

홍종락 오독
▲오독(C. S. 루이스 | 홍종락 역 | 홍성사 | 188쪽 | 16,000원)
홍 번역가는 "루이스에게 책은 결국 '정보'를 접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격'을 만나는 자리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며 "그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독서의 목적은 자기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존재의 눈으로 바라보되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는 것을 말한다. 사랑에 빠지듯, 독서도 그러한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또 "문학적 독자의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책을 여러 번 읽는다. 둘째, 책 읽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셋째, 독서 후 읽기 전에 비해 무언가 달라진다. 넷째, 책의 등장인물과 장면이 실제 경험을 해석하는 창이나 렌즈가 된다"며 "루이스의 글을 통해 그의 인생을 따라가 보면, 그가 바로 문학적 독자의 전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홍종락 번역가는 "<오독>은 문학비평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제게는 경건서적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체와 같이 대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며 "루이스는 자아에 갇히지 않고,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과 구원을 말한, 진정 지성과 영성, 삶의 체험이 통합된 사상가였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변증에 대해서는 "루이스는 가장 효과적이고 뛰어난 변증 방법에 대해, 그 안에 기독교적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지만 기독교적인 기초를 깔고, 전문가가 되어 그 분야에 가장 정통한 내용을 정직하게 쓴 내용이 가장 강력하다고 했다"고 했다.

루이스 숫자
▲루이스 서거 70주년을 맞아 제작됐던 ‘숫자로 본 루이스’. ⓒ일러스트=그래픽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