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 이창우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우리는 지금까지 따지고 보면 "선물을 주는 자의 의무"에 대하여 나눈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자는, 어쨌든 선물보다 못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받는 자는 주는 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선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이 선물이 완전한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오는 선물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숨어야 합니다. 누가 준지 모르게 숨는 것은 선물을 주는 자의 "의무"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배은망덕을 찬양한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주는 자가 숨었다면 받는 자는 선물에 대해 감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선물은 돌려받아서는 안 되고 심지어 감사, 존경, 찬양과 같은 것으로도 돌려받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주는 자는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주기만 하고, 받는 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받기만 한다면, 선물에서 양자의 차이는 더 커지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선물에서 이런 식으로 평등은 실현될 수 있는 걸까요? 선한 선물, 완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만 오는 것이라면, 주는 자든 받는 자든 하나님께만 감사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온갖 좋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온다"는 이 말씀은 감사를 제거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즉, 숨바꼭질이지요. 한 사람은 숨고, 한 사람은 찾아야 합니다.

숨어야 하는 것은 주는 자의 의무이고, 찾아야 하는 것은 선물을 받은 자의 의무입니다. 눈에 보이는 은인에게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요일 4:20)?

자, 이제 숨바꼭질이 시작되는군요. 한 사람은 절대로 준 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숨습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기 위해 숨은 것이지요. 만약 그가 발견된다면, 그래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된다면, 주는 자의 수치요, 불명예입니다.

물론, 비물질적인 선물에서는 숨을 수 없지요. 충고, 지식, 위로, 동정과 같은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더 고차원적 의미에서 선물을 준 자는 받은 자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낮아지고, 자신을 숨겨야 합니다.

반면 받은 자의 의무는 은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냥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력을 다해 은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물을 준 자를 찾지 못했다면, 그것은 받은 자의 수치요, 불명예이지요. 어쨌든, 준 자가 누구인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알아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누군가는 수치와 불명예를 떠안게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숨바꼭질의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 사람이 숨긴 것을 다른 사람이 찾으려고 노력할 때, 양자는 바로 그 현장에서 하나님을 찾는 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 데에 하나가 되었을 때, 그들의 수치와 불명예는 제거될 것입니다. 한 사람은 숨어야 했지만 발견되는 불명예가 제거될 것이고, 다른 사람은 찾아야 하지만 찾지 못하는 불명예가 제거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물을 받은 자가 은인을 찾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선행을 베푼 손을 발견하기 위해, 은인을 찾기 위해 떠나야 합니다. 받은 자는 이런 숨고 찾는 숨바꼭질을 통해, 주는 자를 찾기 위한 갈망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지요. 그가 인간적인 은인을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은인을 찾든 못 찾든, 은인이 그토록 찾던 모습으로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그런 감사에 대한 갈망이 그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함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선을 행하기 좋아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감사받기에 합당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병든 마음이요, 스스로 자멸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당부 말씀드립니다.

만약 당신이 주는 자였고, 이 숨바꼭질에서 발견되는 수치를 당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도 받은 자는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그래, 이런 감사는 내가 받을 만한 사람이었지. 선한 일을 했으니까."

당신이 이런 마음을 품었다면, 이미 파멸로 가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바리새인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더욱 겸손해지십시오. 그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십시오.

"아닙니다. 모든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눅 17:10)."

당신이 이 숨바꼭질을 통해 발견됐다 해서 감사를 독식하지 마십시오. 당신께 드린 감사를 지체 없이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받은 자가 당신께 준 감사를 하나님께 돌려 드림으로써 선물을 선물되게 하십시오.

인간은 선물을 받을 때,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만 감사하면 될 정도로 비천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은 자에게 알려 주십시오. 인간은 그렇게 땅의 것에 매달리고 매몰되어 만족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십시오.

무엇보다 선물을 주고 발견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철저하게 숨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고 더욱 깊이 숨을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