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우파란, 실존하지 않는 개념이다”… 왜?

입력 : 2017.07.27 16:52

[특별기고] 기독교 우파는 어떤 자들인가?

좌파 우파
앞서 기독교 좌파에 대한 정의(定義), 그리고 그들에 의해 야기된 사태에 관한 언급만 연속했는데, 그렇다면 기독교 우파란 무엇인지 반문이 일었을 듯하다. 기독교 우파란 무엇인가? 어떤 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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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파란 실존하지 않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리에서 가만히 정위(正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 방향으로 벗어난 개인이나 집단의 발생으로 생겨난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우파란 그냥 '기독교'인 셈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 이름의 뜻이 '있다(hayah, הָיָה)'는 정위임에도, '없다'고 말하는 상대적 개념 속에서 악(惡)의 기원이 출래한 것처럼, '기독교 우파'가 아닌 '기독교'인 것이다.

반대로, 흔히 백(白)은 흑(黑)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하거나, 무(無)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有)가 존재한다는 개념들은 다 좌파적 특징으로서, 다 악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거듭 말하거니와 하나님의 이름은 '있다(YHWH)'이기 때문이다. 있는데 없다고 말하는 것이 좌이기도 하다.

그 악마적이면서 무적(無的, das Nichtige)인 개념 속에서 '0'이라는 산술 개념도 나왔다.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산술에서 '0'은 모든 존재를 삼킨다. 좌파적 기운이다. 그 외 베르그송의 '엘랑비탈'이니, '빅뱅'이니, 찰스 다윈의 '진화'니 하는 것들도 다 (천지가) '만들어졌다(בָּרָא)'는 사실에 대한 좌파적 개념들이다.

이와 같은 존재론적 정의는 다음 그 시원적인 성서 이야기를 통해 적용하면 이해가 쉽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이기 직전의 문장인데, 이것은 문서비평상 대단히 어색한 문장이다.

"가인이 동생에게 ('   ') 말하였다"(창 4:8a)

뭐라고 말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개 칠십인(LXX) 역을 비롯한 사마리아 오경, 불가타, NIV, NRS, 등은 대부분 "들로 가자(Let us go out into the plain/field)"를 첨가해 놓고 있다. 가인이 아벨에게 들로 가자고 했다는 의역이다.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과 KJV, NAS, 그리고 독일어 성경 LUO(Luther Bibel)만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는 '공백'을 유지하고 있다.

이 문제를 사본학적이면서도 편집비평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들 하지만, 별로 신통치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놀랍게도 다음 구간의 문장에서 해석학적 기도(企圖)로써 밝혀진다. 아버지 노아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난 다음 둘째 아들 함이 반응하는 대목이다.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   ') 말하였다(창 9:22)".

앞서 가인의 문장처럼 이 어색한 문장에도 대체 함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둘째 아들 함의 죄목이 무엇인가? 그 불분명한 죄에 대해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남성 동성애였다고 확신하는 노먼 가이슬러(Norman L. Geisler) 같은 학자도 있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함의 죄는 ('   ')라고 말한 것이다. 가인의 진정한 죄상은 무엇인가?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동생에게 ('   ')라고 말한 것은 때려죽인 죄에 선행하는 죄이다. 말하는 것도 죄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이 '말하는' 행위는 아벨의 침묵과 함의 두 형제가 지킨 침묵에 반하는 절대 악이기 때문이다.

함의 두 형제 셈과 야벳은 (아무 말 없이) 뒷걸음쳐 들어가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아벨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을 떨치지만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기독교 좌파는 대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메아리를 들어 온갖 선동의 언어로 폭행(Gewalt)하지만, 정작 아벨은 아무 말이 없는 것이다. 침묵.

이와 같은 ('  ') 소리, 공백, 즉 '없다(無)'는 불신의 언어 행위를 통하여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은 가나안의 조상이 되었다.

이영진 기호와 해석
▲이영진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또한 이와 같은 연유로 카나안(Kna'an)이라는 말은 카인(kah'-yin)이라는 말과 빠롤(Parole)로서 그 뿌리를 같이 한다.

이것이 기독교 우파에 대한 정의이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이다. 그는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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