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북 임지현
▲재입북‘당해’ 북한 매체에 출연한 임지현 씨.
탈북민 출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20일 최근 재입북 사태와 북한에 억류된 한국 선교사들과 관련, '왜 순교의 피는 북한 사람의 몫인가'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주 기자는 "한 집사님에게서 '북한에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김정욱 목사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하자'는 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를 받았는데, 죄송하지만 저는 함께 기도하지 못하겠다"며 김정욱 목사가 지난 2014년 평양에서 했던 기자회견에 대해 회고했다.

당시 자신을 범죄자라고 지칭한 김정욱 목사는 "국가정보원의 지시에 따라 북쪽 사람들을 첩자로 소개하고 중개했다"며 "제가 저지른 반국가 범죄 혐의에 대해 북한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 기자는 "기자회견장에선 김 목사 지시로 간첩 활동을 했다는 북한 주민들의 자백 영상도 상영됐는데, 그들은 이미 국정원 간첩으로 몰려 죽었을 것"이라며 "한 북한 소식통은 그 사건으로 평양에서 최소 30명, 많게는 100명 넘게 체포됐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오토 웜비어
▲북한 법정에 나설 당시의 오토 웜비어. ⓒBBC
그는 "북한에선 기독교를 믿으면 살아날 수 없다. 하물며 국정원 간첩 혐의까지 썼는데 살 수 있겠는가"라며 "그들에겐 가족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기회조차 없다. 김 목사가 선고받았다는 무기형이 그들에겐 간절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주성하 기자는 "그들의 죄라곤 중국 단둥에서 한국 선교사를 만났던 것밖에 없는데, 단둥의 그 선교사가 무책임하게 제 발로 평양에 와서 보위부에 체포돼 자신들을 스파이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며 "고문당해 어쩔 수 없이 불었다 해서, 자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주 기자는 "저만 해도 북-중 국경에 너무 가고 싶지만, 가지 않는다. 제 목숨도 소중하지만, 혹 제가 체포돼 수많은 사람이 연쇄 피해를 볼 것이 더 두렵기 때문"이라며 "제가 자다가 보위부에 납치돼 아는 사람들을 줄줄이 불어 죽게 하고는 기자회견장에 나와 '제발 나를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은 상상조차 끔찍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때 북-중 국경엔 탈북민 선교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비밀리에 성경을 가르치는 '통독반'들도 즐비했다"며 "한국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순교하자고 가르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처소가 공안에 발각되면 일어나는 일은 비슷했다. 선교사는 한국으로 추방되고, 탈북민들만 북한에 끌려가 죽음을 당했다. 저는 북에서 기독교를 믿었다고 고문받다 죽는 탈북민들을 직접 보았다"고 토로했다.

북한 지하교회
▲청진 한 가옥에서 기도드리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보도된 뉴스 장면. ⓒTV조선 캡처
주 기자는 "왜 순교의 피는 탈북민들만의 몫인가. 물론 납치되거나 테러당한 선교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탈북자만 죽고 선교사는 살았다"며 "김 목사가 무사 귀환하면 선교 대상이 됐던 북한 주민들만 죽고 한국 선교사는 살아 돌아오는 기록이 또 하나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순교할 각오가 됐을 때, 탈북민에게 그리 가르치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을 위해 독약을 삼킬 각오가 됐을 때 북한 선교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며 "아프가니스탄 선교보다 10배 이상의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이 북한 선교"라고 강조했다.

주성하 기자는 "하지만 그런 각오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선교사들도 적잖게 봤다"며 "예전 위험한 북-중 국경에서 탈북 고아들을 키우는 선교사에게 아이들을 안전한 한국으로 무사히 오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불타버린 북한 지하교인들의 성경책
▲한 집회에서 소개된,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이 사용하는 성경책. ⓒ크리스천투데이 DB
또 "얼마 전 러시아에서 탈북한 북한 노동자는 도움을 주는 한국 선교사가 성경공부만 계속시킬 뿐 한국으로 가는 데 도움을 줄 생각조차 없다고 연락해 왔다"며 "중국에서 탈북 고아를 키우고 탈북 노동자를 개종하면 선교사는 후원자 앞에 면목이 서겠지만, 그게 고아와 탈북민을 위한 일인가? 그들에겐 안전하게 살 한국행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주 기자는 "이 글로 열악한 사역 현장에서 고생하는 많은 선교사들이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물론 없지 않다"며 "그러나 좋은 사역자들도 사소한 부주의로 한순간에 사람을 죽이는 사역자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시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북한의 한국 선교사 억류에만 분개하고 당장 구출해야 한다고 할 때, 누군가는 그들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며 "탈북 기자인 제가 아니면 누가 또 하겠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