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시리즈 11] 종교개혁과 문화 - 문화개혁의 선구자

양희준 기자 입력 : 2017.07.18 09:19

[종교개혁과 通하다] 황두환 목사(송현교회 부목사)

황두환 목사
▲황두환 목사(송현교회 부목사)
우리는 종교개혁 정신을 어떻게 첨단화된 이 현대 사회에 개혁의 디딤돌로 사용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실업률 증가, 비정규직 확산,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 빈부격차 등 이러한 상황속에서 종교개혁을 언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500년전의 개혁 정신을 과연 지금의 시대에 사회 변혁으로 다시 불 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마치 어떤 맹신과도 같이 이 종교개혁을 의미를 두고 바라보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 시점에서의 종교개혁 정신은 기독교인들로부터의 철저한 반성과 회개운동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수많은 기념 예배와 세미나, 학회, 여행 등이 종교인으로서 하나의 문화로만 자리잡은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진정한 개혁이 우리 안에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종교개혁은 단지 소비하는 모습으로만 보여지게 될 수도 있을것이다. 루터, 칼빈, 츠빙글리로 대표되는 개혁정신이 지금도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개혁 전선에 나서야 한다.

 

중세에는 사람을 개인적인, 단순히 가족, 조합, 당파, 인종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일원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도시에서 농민은 하나의 이방인에 불과하였고 같은 도시민이라도 신분이 다르면 서로 이방인 취급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한 사람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이를통해 근대 문화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중세에는 왜 이렇게 많은 이미지들과 조각들, 그림들, 성유물들이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서 동원되었던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졌던 기본적인 생각의 틀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적인 세계의 사물들은 그 안에 어떤 것을 상징하는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물들을 볼 때 단지 겉으로 보이는 사물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상징까지 볼 수 있다라는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건물을 세울 때에도 숫자의 상징성을 더해 각을 맞추고 무늬를 넣었다. 3은 삼위일체를 4는 복음서의 숫자를, 7은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와 일곱 영을 상징했다. 이렇듯 중세의 건물은 실용성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신적인 상징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것을 사랑했고 사물에서 상징을 찾으려고 노력했음을 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순교자들의 무덤이나 그들의 성유물이 남아있는 곳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곳곳마다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성유물, 그림, 모자이크, 조각상 등이 하나님을 '보는 데' 매우 유용하고 긍정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우 우려할만한 일들이 일어나고만다. 문화예술 작품이 단지 교육수단으로만 그 역할을 감당했어야 했는데, 그것들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실재를 담았다는 잘못된 믿음을 확산했기 때문이다.  부적이나 신들을 섬기는 제단들, 축귀와 병을 낫게 하는 이교적 풍습과 시각적인 것들을 통해서 영원하고 신적인 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빵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성상, 조각, 그림들 속의 예수님도 실재 예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로서 글을 읽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조각, 성유물, 그림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 머문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이고 신적인 실재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제 중세에서 성상, 조각들, 문화 예술작품들은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진정한 진리란 보이는 물질적인 사물들과 시각적인 이미지만 남게 되어버렸다. 

15세기에 이르면, 이런 중세적인 관점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점차 글이 적힌 책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문화예술 작품보다 글로 적힌 텍스트가 훨씬 우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히기 시작했고 중세에서 종교개혁으로 전환되는 가장 큰 변화의 요인이 된 것이다. 이제 종교개혁을 따르던 곳에서는 중세 로마교회의 건물안에 있던 성유물, 조각상, 그림들을 허물어내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성경이라는 책 이외의 모든 시각적인 형상들은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종교개혁자들은 무엇보다 인간의 타락한 마음으로는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르게 발견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을 통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나니"라는 말씀을 가르켰다. 인간의 타락한 마음은 성령님 안에서 말씀으로 새롭게 되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참된 영광과 예술 작품을 그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성경에 의해서 변화된 심령을 가질 때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그 어떤 시각적인 문화예술보다 오직 성경만을 강조했던 것이다. 성경에 토대한 교회의 건설, 곧 올바른 가르침과 예배를 세워나가는 것, 이런 점에서 중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상상력과 그것에 근거한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말씀'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성경이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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