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31장 집단무의식으로서의 원형론(2)

인간의 정신에 집단무의식이 있고, 원형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이다. 집단무의식이란 정신에서는 거의 유전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이고, 거기에 원형이란 인간의 정신에 가장 기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인격적인 특성이 구조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에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정신의 특성에다가 변경이 불가능한 원래적인 특성이 인격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단무의식의 중심이 되는 인격의 원형에 대해서 고찰함으로써 정신의 더 깊은 차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 원형의 역사적 고찰

원형의 개념은 융이 처음 발견한 개념은 아니다. 융에 의하면 원형의 개념을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플라톤(Platon)이다. 플라톤은 현상에 선재하는 '상위적인 이념'(bergeordnete Idee) 혹은 원상(原象, Urbild)의 존재를 말하였기 때문이다.

1) 원초적인 사고로서 원형

플라톤은 인간 안에 깃들이고 있는 본질적인 것에 대하여 논한다. 그는 이 본질적인 것 자체에 대하여 개념이나 사상,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는 것이라고도 하고, 이를 간단히 이데아(Idee)라고도 했다. 이 이데아들은 모두 순수한 진리가 그러한 것과 같이 항상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이데아는 타고난 것으로 생득적 혹은 선천적인 진리들이라고 했다.

여기에 아돌프 바스티안(Adolf Bastian)은 민족심리학 분야에서 보편적이면서 원초적인 사고(Urgedanken)의 출현을 처음으로 지적했고, 뒤르카임 학파(Duerkeim Schule)의 후베르트(H. Hubert)와 마우스(M. Maus)는 환상의 범주(Kategorien der Phantasie)를 제창했다. 헤르만 우제너(Hermann Usener)는 '무의식적 사고'(思考)라는 형태로 무의식적으로 선형성(先形成, praeformation)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칸트(I. Kant)의 범주학설(Kategorienlehre)도 원형에 관한 역사에 포함된다.

2) 원초적인 상과 집단표상으로서 원형

르네상스 시대를 연구한 야콥 부르크하르트(Jakob Burkhart)는 인간의 유전된 관념행위의 존재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원초적인 상'(原初的 像, urtoemliche Bilder)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도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레비 브률(Loevy Bruhl)의 집단표상(集團表像, representation collective)의 개념이다. 브롤의 개념은 융의 생각을 뒷받침해 준 것이었다.

이렇게 비슷한 학설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서로 관계없이 나타났다. 이것은 원형의 작용과 무관하지 않지만, 예외의 경우가 하나 있는데, 루마니아의 종교학자로서 유명한 멀치 엘리아데(M. Eliade)가 사용한 원형이다. 그의 개념은 의미상으로 융의 경우와 많이 다르다. 그 차이는 원형이라는 개념의 비(非)심리학적인 오용(誤用)이나 남용(濫用)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원형은 작금의 한국문학계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융의 원형론은 특이성이 있는데, 이는 융의 다른 학설이 모두 그러했던 것처럼 경험을 통하여 얻은 가설이다. 융은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관찰하였고, 거기에서 문화적 배경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신화적 요소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요소는 교육이나 학습과도 관계없는 것이라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 출현되는 신화적 요소가 또한 분열증환자(分裂症患者)의 환각이나 망상에도 나타난 것이다. 그것과 원시인들의 사고내용이 유사성을 원시사회의 실제 답사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었다.

신화적인 요소는 신화나 민담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각종 종교현상(宗敎現象) 속에도, 또한 연금술사(鍊金術師, Alchemist)의 경전(經典), 근대의 문예작품에도 나타난다. 이런 신화의 요소는 인류의 무의식이 작용하여 이루어진 정신의 유산 속에 나타나는 것이기에 인간의 아이도 환경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다수의 생득적인 소인을 가지고 태어난다고도 생각한다.

예를 들면 부모, 이성(異性), 출산 등의 기본적인 상황, 청소년기에 부모와 헤어지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반응하는 생득적 소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생득적인 소인은 틴베르겐(Nikolas Tinbergen)이 동물들에게서 발견한 '내적인 해방 메커니즘'(innate releasing mechanisms)과 비교된다. 많은 동물들은 환경 속의 특정 자극에 일정하게 반응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3) 생득적인 정신의 구조로서 원형

융은 다음의 인용문에서 이런 관점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다. "개인적인 재능의 개입이 없이는 인간의 경험은 있을 수 없으며, 또 그 어떤 경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개인적인 재능이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드는 생득적인 정신의 구조이다. 이리하여 남자의 완전한 본성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자를 전제로 한다.

남자의 신체는 물, 빛, 공기, 소금, 탄수화물 등이 있는 아주 특정한 세계에 열려 있듯이, 처음부터 여자에게 열려 있다. 그가 태어난 세상의 형태가 이미 그의 내부에서 실제적인 이미지, 정신적인 능력으로 태어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험적인 범주는 그 본질상 집단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 범주는 부모, 아내, 자식 등의 이미지이며 개인적인 소인은 아니다."

융은 처음에 집단적 무의식을 종족의식(種族意識), 종족본능(種族本能) 같은 것으로 생각하던 중에 동양의 사상과 종교에 접하여 거기서 또한 보편적 신화요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 확신을 가지고 이 가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바로 원형론의 가설이다. 이는 어느 종족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심성(心性)으로서의 원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융의 원형론은 오해의 소지를 경계한다. 융은 원형론을 정신장애를 가진 환자의 연구를 통하여 얻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융의 연구가 프로이트가 병리적인 현상을 건강인의 세계로 확대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화의 일부를 그의 가설에 갔다 맞춘 것도 아니기에 일차적으로 신화나 종교의 연구를 통해서 무의식의 원형을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융은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심리를 탐구하였고, 신화나 종교의 중요한 관련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융 학파의 분석가는 원형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하여 중요시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신화, 민담, 원시인의 사유, 각종 종교현상을 고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문학이나 종교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한 인간의 꿈, 환상 또는 망상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심리학적 작업으로서 실제적인 목적을 갖기 때문에서다.

2. 원형의 특징

원형은 심리 및 정신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초적인 성격을 지닌다. 융은 이 원형을 인간의 신체와 곧잘 비교한다. 인간의 신체가 오랜 진화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하듯이 심리 및 정신 역시 '역사' 없이는 생겨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역사는 심리형성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의식적으로 이룩된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다른 문화적 전통을 통하여 이룩된 그런 것이 아니고, 처음 인간의 심리가 동물과 유사했던 고대의 인간에 있어서 무의식적인 심리발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는 의미가 아닌 처음부터 선천적으로 지닌 정신적인 특성을 밝히고자 한데 있을 뿐이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정신의 근본적인 기초, 그것은 인간이 경험을 통하여 만들어 낸 조합물이 아닌 본연의 원초적인 특성이다. 그 원초적인 특성이 인간을 결정하는 요소이며, 유전적으로서 내려오는 역사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원형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원형의 자율성

원형은 자율성을 지닌 에너지이다. 자율성을 지녔다는 것은 자아의 지배를 받지 않거나 의식의 제재를 받지 않고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은 물론 무의식의 특성이지만, 정신의 상태와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원형이 움직일 때는 정신의 어떤 상태일 때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이런 원형의 자율성에 대해서 우리는 신체에서 자율신경계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자율신경계를 개인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원형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형은 집단무의식의 바탕이며 그 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집단무의식의 층은 하나의 원형이 아니라 많은 원형으로 이루어진다. 집단무의식의 층이 많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집단무의식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인 동시에 그만큼 자극을 받을 만한 요인이 여러 가지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신의 특성에 압도되거나 이끌려 살기도 한다. 이는 원형을 집단적 콤플렉스(Komplex)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융은 원시사회에서는 이미 이러한 세력(에너지)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 말이 있다고 지적한다.

폴리네시아(Polinesia)인들에게 '물룽구'(mulungu)의 신성한 '힘'을 지닌 단어가 있다. 이것은 그들을 놀라게 하는 여러 힘들 -신령, 귀령, 마력을 통털어 표현하는 에너지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는 비단 원시인 뿐 아니라, 서양의 고대와 중세인들은 '불'의 신성한 힘을 존중해 왔다. '성령의 불'을 위시하여 헤라클리트(Heraklit)의 '영원히 피어오르는 불'로 표현되는 '세계 세력' 또한 스토아 철학자(Stoiker)의 원온(原溫, Urwaerme)이란 '운명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에서 집단적 무의식의 에너지라 보는 강렬한 감정의 세력은 원시사회에서는 이런 명사 속에 투사된 것으로 본다.

2) 원형의 신비한 힘

원형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는 신비한 세력(勢力, Maechte)이다. 신비한 세력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힘이 아니라 매우 특수하고도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세력은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세력이며 원초적 폭력(Urgewalt)과도 같은 것으로 비교할 수 있다. 이 신비한 세력이 우리의 정신에 나타나 그 힘을 행사하는 때가 있다. 그 때는 마치 화산이 터져서 지각을 덮으면 거기의 모든 생물이 죽어버리듯이 그 세력은 종종 그와 같은 무서운 힘으로 의식을 지배한다.

그것이 요동하여 강력한 힘이 발휘되면 정신의 전체가 흔들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마치 강력한 지진으로 인하여 해일이 일어나고 온갖 것들이 쓸려나가는 것과도 같다. 이를 화산으로 표현해도 될 것이다. 잠자던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면 엄청난 세력으로 지표면을 뒤덮어버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원형은 주로 집단무의식의 깊은 층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 원형의 에너지가 의식에 방출되면 의식의 기능이 마비되는 등 엄청난 혼란이 야기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집단무의식의 깊은 층을 이루는 원형의 세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다. 때때로 우리는 도저히 이성적인 설득으로 불가능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는 대개 그 인격 안에서 원형이 지닌 큰 힘이 발휘되는 사람으로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피해망상,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들이 그 좋은 실례이다.

그러나 원형은 반드시 그런 부정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남다른 정신을 소유하여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하여 비범한 인물로 추앙받는 사람들 중에도 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강력한 정신은 자신의 힘이 아닌 원초적 세력에 사로잡힌 것이기 때문이다. 

이 원형의 세력은 자아를 압도한다. 자아의 힘이 원형과 접촉되면, 팽창 및 과장되면서 자유를 잃으며, 원형의 큰 세력에 지배된다. 위대한 사랑에 사로잡혀 자기를 희생하거나 위대한 창조적인 영감에 사로잡혀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사람, 악마적인 파괴의 화신이 되어 집단 살인을 자행하게 되는 사람은 모두 자아가 원형의 세력에 지배된 경우이다. 이처럼 원형의 힘은 자아로 하여금 인간영역을 뛰어넘어 창조 및 파괴의 큰 세력으로 몰고 가는 자아의 힘이다.

그러기에 원형이 일으키는 감정은 평범한 감정이 아니라 신성한 힘이라는 누미노줌(Numinosum)을 내포한 감동 또는 충격이다. 이는 마치 집단무의식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 속에 있는 제신(諸神)의 세계인 것처럼 초인적이며 또한 비인간적인 충동과 같은 것이다.

3) 원형의 보편성과 근원성

원형은 인간 정신의 보편적이며 근원적인 핵이다. 원형은 인간이면 누구의 정신에나 존재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선험적 조건이다. 때어날 때 이미 부여되어 있는 선천적인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 지리적 조건의 차이, 인종의 차이, 문화적인 전통과 관련된 인간관 또는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의 조건이다.

원형은 인간이 태고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시간에 수없이 반복되었으며, 또한 반복되어 갈 인류의 근원적인 행동유형(patterns of behavior)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이다. 어떠한 나라, 어떠한 문화권, 어떠한 종족, 어떠한 시대의 삶도 변함없이 생각하였고, 느꼈고, 행동했고, 말한 것의 유형들이다. 이는 인류가 죽음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어린이, 노인, 위대한 부모의 힘에 대하여, 어둠과 광명, 위대한 조물주의 힘, 현자의 지혜,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여성이 남성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해 온 것들이 모두 태초로부터 체험적으로 침전(沈澱)되어 온 바로 원형인 셈이다.

여기에 융은 원형의 보편성에 대하여 다음과 말한다. "원형은 보편적이다.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기본적인 원형 이미지를 유전적으로 이어 받고 있다. 세계 안의 모든 어린이에게 어머니의 원형이 유전된다. 이처럼 미리 형성되어 있던 어머니의 이미지는 현실의 어머니가 출현하여 행동해서 갓난아기는 어머니와 관계를 가지며, 어머니를 경험함에 따라 명확한 이미지로 발달해 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원형에 대한 표현에 대하여 개인에 따라 차이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어머니의 경험과 양육법은 가족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머니의 양육법은 가족에서도 아이에 따라  다르게 행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또한 민족이 분화되면 여러 민족의 집단무의식의 본질적 차이도 나타나게 된다." 플라톤은 이 원형의 보편성에 대하여 관여(關與, Teilhabe)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관여란 실제로는 원형(Paradeigma)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오직 그 개념들이 서로 다를 뿐이지만 로스(Ross)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관여'라는 말을 감성 내재하고 있는 이데아라고 이해해서도 안 되고, '원형'이라는 말을 감성을 초월한 것이라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 이데아가 초월적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모두 초월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의 양태에 지나지 않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여와 원형이라는 개념들의 인식적인 의미는 경험적, 시간, 공간적인 세계에서의 모든 인식은 '유비(類比)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원형적인 개념에 관계됨으로써, 감각적인 지각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플라톤이 많은 비슷한 것들이 공통적인 원형, 즉 에이도스(형상)나 로고스에 관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맞대어 비교할 수 있는 존재유비(Analigia entis)론의 시발점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존재유비가 순수한 플라톤주의로 인정되는 이유이다.

3. 원형의 유형과 종교성

원형은 인격의 바탕에 자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도 변화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것은 원형에도 일정한 유형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면서 인간의 심리와 정신에 가장 깊이 자리하는 종교성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 가에 대해서 궁금하게 만든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원형의 유형과 종교성과 관련하여 원형의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1) 다양한 유형의 원형

원형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원형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이런 원형은 가시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도 있다. 출생, 죽음, 부활, 권력, 마법, 영웅, 어머니, 태모(太母), 어린이, 신(神), 악마, 노현인(老賢人), 어머니인 대지(大地), 자연계의 대상(나무-태양, 달, 바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각각의 원형을 붙이면 그 특성의 원형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어린이 원형, 영웅원형, 태모(太母, Gross Mutter) 원형, 삶의 원형, 죽음의 원형 등으로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원형은 때로 그 형태를 달리하여 변형을 가한다고 해도 그 원래의 형태가 달라지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이는 원형이 본래적이고 참된 것이라는 사상에 근거한다. 기타의 모든 것들이 이것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모사된 것에 불과하고, 관여되는 것에 불과하며, 유비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원형의 개념은 단순한 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근원적인, 보편적이고 반복적인 체험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항상 재생할 수 있는 인간 속에 있는 가능성이며 그런 가능성을 지닌 틀이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를 신화와 민담의 세계에서 발견하게 된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야기 속에 언제나 어디서나 발견되는 이야기의 핵, 이른바 신화소(神話素, mytho- logem)는 바로 원형의 내용, 원형상이다.

그것은 어떤 개인의 일회적인 사고, 어느 문화 집단의 특유한 사유형식과 관습, 어느 시대에 특징적인 사조(思潮)의 영향을 확충(Amplification)의 방법으로 하나씩 구별하고 나서 최후에 추출되는 공통적인 핵(核, Kern)이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이데아에 관하여》라는 저서에서 서로 비슷한 것들은 '원래적인' 뜻으로, 존재를 형성하는 유일하고 동일한 것이 있기 때문에 유사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주는 것이 이데아라고 이데아론의 근거를 밝히고 있다. 이런 생각은 원래적인 존재관여, 유비 등을 내세우는 플라톤의 근본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원형은 상호결합이 가능하다. 원형은 무의식 속에서 서로 별개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영웅원형이 악마원형과 결합하면 '무자비한 지도자'형의 사람이 된다. 마법원형과 출생원형이 결합되면 어느 정도 원시문화에서 발견되는 '번식의 마법사'가 출현한다. 이 마법사는 이제 갓 결혼한 신부(新婦)를 위해 종족번식 의식(儀式)을 집행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한다. 모든 원형들이 갖가지로 결합되어 작용함은 인간의 정신에서 인격을 구별하는 특성인 것이다.

그러면 원형이 상호결합이 되어 나타날 때라고 볼 수 있다. 두 가지가 또는 세 가지가 결합되면 원형이 갖는 힘을 그만큼 더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세상을 뒤흔드는 힘의 세력은 그것이 반드시 원형은 아니라고 해도 대개 모두 한 가지가 아니라 몇 가지의 힘이 결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2) 원형의 본능과 종교성

원형은 본능과 동일한 현상을 지닌다. 인간에게 고도로 복잡한 행동을 일으키는 합목적인 충동(Antrieb)이라는 본능은 원형과 비슷한 현상을 갖고 있다. 본능은 원형과 뿌리를 같이 하는 현상이기 때문이지만, 융은 본능(Ins- tinkt)과 원형을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구분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본능(本能)은 생리적인 충동으로서 감각을 통하여 인지되는 심리적인 특성이다. 이런 본능의 전형적인 형태는 어디서나 동등하고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반응의 형태이다.

반면 원형은 그 존재를 상징적인 이미지에 의해서만 나타내는 특성이라는 점에서 본능은 고태적인 충동(archaische Trieb)이며 원형은 하나의 '관'(觀, Anschauung)이다. 본능이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유발시키는 충동이요 정감(Affekt)이라면, 원형은 그 다양한 행위를 선험적으로 파악하는 견해, 또는 관조의 특이한 형태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본능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특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원형은 인간 특유의 여러 성품(Bildungen)을 형성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본능과 원형은 인간의 심리 및 정신에서 본질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 그것은 동일한 특성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는 집단무의식에 본질에 기인하고 있고, 그것은 개인무의식이 집단적이 아니듯이 본능과 원형 또한 개인적인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본능은 일반적이고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원형과 같이 동일한 본질을 갖고 있는 집단무의식적인 현상인 것이다.

집단무의식의 원리에서 원형의 종교성을 생각할 수 있다. 원형은 깊은 무의식의 바탕이기에 '신화와 종교를 담는 그릇'이라는 관점이다. 자율성을 가진 원형은 콤플렉스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원형은 자율적으로 의식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특성이지만, 콤플렉스가 개인적인 경험이 담겨지는데 반해, 원형은 더 넓은 사회적인 경험에 관계할 수 있다.

콤플렉스처럼 사회적인 경험을 담아내는 그릇인 셈이기에 한 시대를 움직이는 신화나 종교 철학 등에 영향을 주어 인류라는 큰 틀의 고통과 불안, 이를테면 전쟁, 질병, 노쇠, 사망 등에 치료적인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영웅이 나타나 용, 뱀, 괴물, 악마 등의 모습을 한 악한 세력들을 이기고 나서 인간을 파괴와 즉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무력감과 절망감, 그리고 불행으로부터 해방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원형이 집단무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한다면, 이는 종교가 자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하여 원형의 종교적인 영향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주어 상당기간 지탱되기도 했다. 기독교의 7세기 초에 억제 되었던 엘로우시스의 신비들(die Eleusinischen Mysterien)과 델포이 신전의 신탁들이 그 실례에 속한다.

그것들은 그대로 헬라 고대의 본질이요 정신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 시대는 그 명성과 의미를 고대적 신비들에 힘입은바 컸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원형적인 오시리스-호루스-신화(Osiris-Horus-Mythos)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신인(神人)의 신비(神秘)이다. 이것은 원형이 그 자체로서 상황에 개입할 수 있고, 그 어떤 충동과 사고형태에 자율적으로 대처하여 의미를 산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원형이 콤플렉스와 같은 특성을 지녔다는 점이 여기에 있다.

4.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앞장에 이어서 집단무의식으로서의 원형론에 대해서 기술했다. 인간의 정신에 집단무의식이 있고, 원형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이라고 했다. 집단무의식이란 정신에서는 거의 유전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이고, 거기에 원형이란 인간의 정신에 가장 기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인경적인 특성이 구조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점에서였다. 인간의 정신에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정신의 특성에다가 변경이 불가능한 원래적인 특성이 인격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집단무의식에서 원형에 대해서 고찰함으로써 정신의 더 깊은 차원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원형의 역사적 고찰과 특성, 그리고 유형 등으로 구분하여 다루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