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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주말부부가 꽤 있다. 직장 때문에 주중에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이 요즘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주말부부'라는 말이 쓰인 뒤로는 특정한 부류로 나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약간 비운의 뉘앙스랄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떨어져 있는 부부, 가능하다면 하루빨리 합쳐야 할 부부로 들렸다. 하지만 이제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미 또래 주부들 사이에서 '로또 맞은 여자'로 통한다고 한다. 대체 무슨 복으로 주말부부를 다 하느냐고 부러움의 시선을 보낸다는 것.

그런데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매주 오는 것도 차츰 버거워지고, 이제 남편이 좀 더 뜸하게 집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 집 남편은 토요일에 왔다가 일요일에 가는데, 어차피 특별한 일도 없는 마당에 뭐하러 차비 버리고 매주 꼬박꼬박 오는지 모르겠다면서,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이젠 주말부부 그만하고 '격주말' 부부나 '3주말' 부부로 업그레이드(?)를 희망한다고.

또 다른 중년 여성은, 남편이 타 지방 근무를 하게 되면 나오는 일정 수당 때문에라도 주말부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자녀 대학 등록금 등 지출이 많은 시기라, 1백만 원 남짓한 수당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집에 남자가 없으면 식비 등 모든 면에서 비용이 줄어든다.

그래서 남편이 일정 기간 타 지방 근무가 끝나서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을 전할 때는, 겉으로 잘 됐다고 말은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돈뿐만이 아니다. 남자가 없으면 아이들과 대충 끼니를 때워도 되고, 움직임이 자유롭다. 모임에 나갔다가 허둥지둥 시간에 맞춰 들어오지 않아도 되고, 애들 두고 쏘다닌다고 남편 눈치 볼 일도 없다.

게다가 주말부부가 오래되니 혼자 방 다 차지하고 편하게 자는 게 습관이 돼서 오랜만에 남편이 오면 자꾸 잠을 깨고, 영 불편하단다. 그래서 남편이 복귀하는 날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과 짜증이 밀려오고, 남편이 가는 날은 표정관리가 안 되면서 어느새 밝아진 자신을 주변에서 먼저 알아본다나.

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사진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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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성들도 처음 주말부부를 결정할 때는 두려움이 작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하고만 지낼 수 있을까? 왠지 무섭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해서 겁이 났다는 것. 하지만 일단 그 생활에 익숙해지니 불편한 것도 없지 않지만 편한 점이 그 불편을 압도한다.

사실 여자는 남자가 꼭 없어도 얼마든지 편하게 사는 존재다. 그런 데다 주말부부는 남자의 그늘이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니, 적당히 떨어져 지내면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일이 된다. 남편도 뜸하게 보니 그 핑계로 시댁과 거리를 둘 수 있어서 더 좋을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들이 들으면 서운할 것 같지만, 그것은 오산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몇 년 동안 살던 서울의 집세가 감당이 안 돼 초등학생 딸과 아내를 원래 살던 전라남도로 다시 보내고 고시원에서 살며 계약직으로 일한다. 그런데 집에 신경 쓸 일이 없어 너무 편하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 마누라 잔소리에 술도 못 마시고, 너무 늦게 들어갈 수도 없고, 집안일도 도와야 하는데 고시원에서는 내 한 몸 누일 곳만 챙기면 끝이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매주 내려갔지만 조금 지나자 차비도 아깝고 해서 2-3주에 한 번씩 내려간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주말부부 남편들은 떨어지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지만, 이 경우처럼 편안함에 길들여진 남편도 꽤 있다.

아이들도 평소 아빠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무서워한다면 아빠가 없는 일상이 훨씬 편하다. 나도 그 옛날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중동에서 몇 년 동안 일하셨는데, 처음에는 서운하고 허전했지만 사춘기 청소년이 되자 그 생활에 익숙해졌고, 다 자라서 아버지가 복귀하자 한동안 무척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가족을 위해 자리를 비우고 고생했지만 나중에는 불편한 존재가 되는 일..., 팍팍한 세상을 사는 기러기 아빠부터 모든 가장들이 겪는 비애일 것이다.

세상의 산업화는 자급자족하던 가족을 도시로 불러냈고, 국가와 기업들의 거대화는 한 가족을 다시 다른 지역으로 쪼개놓기도 한다. 이제 그런 불행한 변화는 누군가에게 로또 당첨과 같은 행운이 될 만큼 세태는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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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같이 좁은 공간에서 부대꼈으면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었을텐데,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 관계가 더 나아진 가족도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 모두는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만 편함을 지향하는 생각이 과해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과 중요한 시기에 떨어져 지내는 것은 나중에 회복하기 어려운 골을 만들 수도 있고, 아내와도 각자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크게 만듦으로써 함께 지내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주객전도의 관계가 되기 쉽다. 서로 너무 자유로운 상태에서 생기는 불의의 사고(?)도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물건이 아니므로 복합적으로 양면이 동시에 느껴질 때도 있다. '시원섭섭'이라는 말처럼 후련함과 허탈함이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주말을 보내고 아내나 남편과 일주일간 헤어지는 것이 이런 '시원섭섭'에 해당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불편을 감수하며 지방으로 떠나는 남편이 측은하면서도 왠지 모를 기쁨에 좀 미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싶은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도 든다. 남자도 혼자 지내면 사람 꼴도 안 되고 불편함이 더 많지만,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모두는 가족을 '기능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세상의 영향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고, 가장은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본분이니 온 가족이 희생해서 불편을 감수하자는 것이 주말부부의 선택이다.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편한 길이 되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일 수도 있지만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

가족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서로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다. 불편을 감내한다는 명분 아래 누리는 묘한 편안함에 너무 중독되지 말고, 최대한 빠른 시기에 주말부부에서 '연중무휴' 부부로 함께하는 길을 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본다.

주말부부의 문제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 로또가 된 것 자체가, 어쩌면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와 전통적 가족 개념의 종말을 보여 주는 단면 같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고, 주말부부에게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농담처럼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주말부부나 그런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창한 고민보다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를 기억하면 좋을 듯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것, 그리고 한 번 멀어지기는 쉬워도 다시 가까워지기는 두세 배 어렵다는 사실을.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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