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디아코니아
▲독일의 디아코이나 단체를 찾은 방문단 ⓒ루터교총회
1.

디아코니아, 참으로 생소한 단어였다. 얼핏 듣긴 했지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기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교회 밖의 모든 일을 디아코니아로 생각하면 된다고 듣기는 했다. 다시 말해서 지역 교회들이 하는 나눔의 집, 암환우 쉼터, 작은 도서관, 청소년 아동 센터 등이 디아코니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교회의 봉사 활동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아닌가 생각했다. 참으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이러한 세상 속에서의 섬김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디아코니아의 필요성은 분명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교회가 예배와 선교라는 역할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과 함께 소통하며, 지역의 필요성을 조금이나마 감당해 나간다면, 교회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2.

마침 독일 MEW(Mission Eine Welt) 선교회에서 나눔의 집(대전벧엘루터교회) 봉사자들을 독일 디아코니아 시설 탐방 초대에 응하고, 여기에 봉사분과위원회 위원들도 함께 하기로 계획했다. 디아코니아는 여전히 나에게 낯선 개념이었고, 지금 섬기는 교회 상황에서 무엇인가 해 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고 여겨서 이번 탐방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2주간 교회를 비운다는 것이 좀 부담 되어 더욱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선배 목사님들의 조언에 따라 동행하기로 마음먹었다.

3월 13일에 독일 MEW로 출발했다. 시차적응도 못한 채로 첫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음식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함께 한 모든 분이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 음식에 익숙해졌다. 지금은 오히려 독일에서의 아침식사가 그리울 정도다.

3.

로텐부르크 지역의 디아코니아 시설 방문은 내가 생각하던 디아코니아 개념을 넘어서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이곳은 장애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는 직업 교육 시설이었다. 또한 양로원은 병원과 교회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노인분의 건강과 영성을 돌봐주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노인 한분 한분의 공간을 인정하며 돌봐주는 디아코니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독일정부가 아닌 디아코니아 단체에서 장애인을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훈련을 시켜주고, 일자리를 찾아주고 창출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양로원은 노인의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진다.

독일의 디아코니아 시설들을 방문할 때마다 어린아이부터 장애인, 노숙자, 노인들 한분 한분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의 삶을 소중하게 대하고 있음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이, 디아코니아의 사역에 임하는 디아코니들의 마음 자세이다.

독일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역은 어떤 현실적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따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부터 섬김의 사역이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혼자 살아가려 하지 않고, 함께 하려 한다. 어린이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노숙자든, 혹은 다른 누구든지 간에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함께 하려 하는 마음이 잘 느껴진다.

4.

한국과 독일의 디아코니아 사역을 정확하게 비교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독교 배경 안에서 인간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섬기는 그들의 사역이 부러웠다. 물론 한국에도 장애우나 노인을 돌보는 시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장애우나 노인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바라보며, 그들의 삶과 공간을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장애우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교육시키며, 그들의 능력 개발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돌보는 수준에 멈춰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노인시설은 실적 위주이며, 프로그램 위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치매 노인들도 인간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노인들 한분 한분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 많다.

나아가 이런 시설의 담당자들을 위한 교육도 미약하다. 직원들의 고충도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 더욱이 힘든 직장이라는 인식 탓에 젊은이들이 회피하고 있는 직업이다. 독일의 치매센타 디아코니아를 방문했을 때, 담당자에게 들은 말이다. 치매노인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 직원들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직원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는 이유도 직원들이 행복해야 치매 노인분들을 잘 돌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시설운영을 위한 정부의 지원금을 많이 끌어오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된 시설 보고를 하고, 이를 통해서 정부의 예산을 축내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들의 관리가 부실하고, 서류보고에 의존하다 보니,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도 봉사를 많이 하고 있지만, 과연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사역이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한국교회는 유치원을 운영하더라도 교회 성장에 목적이 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아니, 나조차도 디아코니아를 그런 관점에서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긴다는 생각보다 지역을 섬기는 일을 통해 교회를 알리고 전도하려는 목적으로 디아코니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그런 목적으로 디아코니아 사역을 한다면, 디아코니아의 순수한 목적은 상실될 것이다. 나아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독일의 디아코니아 사역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디아코니아의 정신이다. 예수님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것이라면,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이다.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빗자루를 들고, 동네를 청소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모습이다.

독일 디아코니아의 목표는 섬김이다. 섬기는 마음으로 작게라도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독일 디아코니아 방문을 통해 배운 가장 큰 소득이다. 제자들까지 떠나버리고, 세상이 무시하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섬김이 온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의 작은 섬김 또한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이 될 수 있다. 그런 섬김의 사역이, 이 땅의 모든 교회에서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병용 목사(부산제일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