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빛나는콘서트
▲신인 CCM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응원하고자 열게 된 ‘반짝반짝 빛나는’ 콘서트. ⓒ김신의 기자

비교적 역사가 짧지만 한국에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 들어선지 어느덧 50여년이 지났다. 과거 한국 CCM은 1980~90년대 전성기를 맞았고, 유명한 CCM 음반의 경우 한국의 내로라하는 가수, 아이돌의 음반판매량과 비슷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체 음반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됐고, CCM 시장도 하향세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CM 사역의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이 있다. 지난해 정규·디지털 싱글을 아울러, 음원사이트인 ‘멜론’ 기준 국내·외에서 발매된 CCM 앨범의 수는 3,127개였고, 올해는 6월 28일 기준 1,330개다. 또한포털 사이트를 통해 CCM 관련 학과를 묻거나 CCM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이들의 질문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자리를 잡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4월부터 신인 CCM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응원하고자 ‘반짝반짝 빛나는’ 콘서트를 진행 중인 사역자들을 최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회 맡고 있는 전대현 전도사와 조명을 맡고 있는 박홍준 전도사였다.

-신인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콘서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대현 전도사: 저희 둘 다 CCM 사역을 한지 20년인데요. 개인적으로 사역을 하면서 각자가 알아서 생존해야 하고, 조금만 역량이 모자라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와 함께 이 길을 간 분들이 있었는데 저만 남았어요. 또 지금 한해 몇 천 명의 아이들이 CCM 아티스트의 길을 가기 위해 관련 학과를 졸업하는데도 이렇다 할 열매를 맺지 못한 것엔 저희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채윤성 목사님, 임호 교수님, 함동우 전도사님, CCC vlm팀 등 많은 분들의 뜻을 모아 콘서트를 시작했습니다.

박홍준 전도사: 저는 ‘옹기장이’, ‘주찬양’ 같은 주옥같은 CCM을 듣고 꿈을 꾸며 자란 세대입니다.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할 때 찬양 사역자들이 남아있을지 생각하면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저희도 여력이 안 되지만 후배들에게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전대현 전도사: 덧붙이자면 콘서트의 기본정신은 살아남으란 것입니다. CCM 내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사역자도 오전 시간에는 커피숍 알바를 하고, 팀의 작업실 임대료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는 사역자도 있지요. 콘서트 이후 다음 사역이 잡히기도 하지만 이것은 부수적인 기능이고, 무엇보다 콘서트를 하고나서 사역자들이 다시금 이 길을 걸어갈 용기를 얻는 것,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란 걸 느끼고, 여러 팀이 서로의 삶을 증거하고, 격려하는 것에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대현전도사
▲전대현 전도사. 콘서트를 주최하는 카우치포테이토컴퍼니 대표로 사회자를 맡고있다. ⓒ김신의 기자
-두 분 다 사역하신지 오래되셨네요.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게 돼셨는지 궁금합니다.

전대현 전도사: 대학교 시절 CCC 선교단체 찬양팀 중에 ‘Here's Life’(여기에 생명이)에서 97년도쯤 앨범 작업을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내내 예배 인도도 해왔고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 길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으로 책임감을 느끼면서 사역을 하게 된 것은 2003년 정도였습니다. 교회도 안 나가고, 자살기도도 한 적이 있고, 빈털터리로 크게 방황하던 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저를 새벽 예배로 인도하셨어요. 예배가 끝나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무너진 제 삶이 북받쳐서 거기 계시던 목사님도 흠칫하고 놀랄 정도로(웃음), 펑펑 울었죠.

그렇게 새벽기도를 나가던 중 하나님을 떠나 살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마음 속에 ‘여주’라는 지역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단돈 10,200원을 들고 전도여행을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먹이시고 입히셨는지, 치밀하신 동행을 경험했죠. 하루는 교회 10여 군대를 가며 재워달라고 했는데 다 거절당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를 재워주고 밥을 준 곳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이단이었던 거예요. ‘하나님 이게 뭡니까’하고 막 그랬는데, 그날 새벽 3시에 엄청난 비가 내렸어요. 그 순간 여전히 자신의 틀에 갇혀있던 점, 내 안에 있던 타인을 향한 혐오감, 참된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게 됐죠. 찬양 인도를 할 때 제 앞에 어떤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옥의 뗄감이 아니라 긍휼이 필요한 이들임을,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할 이들임을, 또 죽을 만큼 괴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하시고, 어떤 마음으로 예배해야하는 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박홍준 전도사: 전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어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집 옆에 유치원에서 곁눈질로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마저도 얼마못가 그만두었죠. 그런데 재능을 주신 것 같아요. 옛날에 어린아이 창작 동요관련 대회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재미로 나갔다가 상을 받았어요. 요행이겠거니 했는데 다음 해에도 상을 받았죠. 그래서 선생님이 음악을 해야 한다고 부모님께 권유해주셨지만 집안도 어려웠고, 저도 꿈이 초등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교대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 의미가 없어졌고,  그저 하나님을 원망했었죠. 그러다 수련회에서, 전 기억도 안 나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한 적이 있단 겁니다. 어머니도 기억하시더라고요. 다시 시험을 준비해서 몇 개월 만에 공부해서 신학대학교를 갔고, 그곳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역을 하게 됐습니다. 동요를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었는데, 하나님 기준에서 보니 제가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가르치고 동요대신 찬양을 만드는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받았던 재능을 버릴 뻔 했는데 다 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하다가 만들게 된 곡 ‘한 달란트’는 제 고백이예요. 사실 한 달란트가 큰돈이었는데 그걸 묻어뒀던 거죠. 받은 것에서 감사하면 되는 거였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주인에 대한 오해도 있고 관계가 잘못 형성돼 있던 거죠.


박홍준 전도사
▲박홍준 전도사. 콘서트에서는 조명을 맡고 있다. ⓒ김신의 기자
-그렇군요. 콘서트를 준비하면서는 어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체험하셨나요?

박홍준 전도사: 때때로 전혀 관계가 없는 분들이 관심을 갖고 와주십니다. 출연자를 포함한 모두가 다 힘을 얻고 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또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고 싶다고 얘기할 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는 것처럼, 저희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분들에게 힘을 주시고 다시 사역하게 하시는 역할을 하게 된 것 같고, 또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콘서트 이후에 사역이 잡히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통로가 된 것도, 공연 이후 연장선도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전대현 전도사: 때때로 출연하신 분들 중 ‘누가 우리를 위해서 뛰어 다니겠는가’ 이렇게 이야기 해주신 분도 계십니다. 이러한 경험, 대우, 기회가 없단 것이… 뿌듯함이라기보다 속상함이 듭니다. 그래도 여러 경험을 증거해 주시는 것을 보며,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실제적인 체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콘서트를 준비하며 힘든 점이나 기도제목이 있으신가요?

박홍준 전도사: 사람이 모자랍니다. 스테프요. 같은 마음을 품고 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었으면 좋겠단 마음이 있죠. 저희들이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기에, 계산적 마음이 아니라 섬기는 차원에서, 같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이 힘들지만 또 즐거운 부분이 많습니다.

전대현 전도사: 저희도 경험이 없었죠. 공연을 연출하는 일은 저희도 처음이예요. 감정소모도 많아요. 왜냐면 저희는 악역을 해야 하거든요(웃음). 무슨 말이냐 하면 저희는 싫은 소리를 해야 되요. 홍보를 왜 안하시는지, 피드백을 왜 안주시는지… 어떻게 감정이 안 상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답이 안 오는 것으로도 마음이 상할 때가 있죠. 저희가 평균 3일 정 시간을 내요. 제작진과 따로 모여 회의하고 출연진과 미팅도 하고, 생각보다 업무량이 많아서 두 분만 더 계시면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사역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끝까지 주신 길을 따라가는 건 더 좁은 길인 것 같아요. 꾸준히 사역을 하시는 비결 같은 게 있나요?

박홍준 전도사: 저는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같이 가게 됐어요. 제가 원래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었는데, 이요섭 목사님, 이 친구를 만나서 가요가 아니라 찬양을 하게 됐어요. 또 어머니의 기도도 있었어요. 제 형 입시 때부터 새벽기도를 나가셨는데, 29년 째 한 번도 쉰 적이 없으세요. 대단하세요. 저는 그 기도의 힘으로 사역을 하는 것 같아요.

전대현 전도사: 저는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뿐이었어요. 다른 생각을 할 여유 자체가 없었죠. 다른 것도 잘했다면 진로를 고민했을 텐데, 중학교 때부터 이 길만 걸었죠. 그러한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제가 원했던 방식으로는 삶이 단 하나도 풀리지 않았단 거예요. 스펙터클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삶을 아름답게 이끌어주신 것 같습니다

또 저도 음악이 아니라 신학 전공인데, 뮤지컬, 영화 음악, 음반 제작까지… 하나님께서 삶에 주신 반전의 역사인 것 같아요. 제 스스로를 음악인이라고 소개하기도 멋쩍은데 돌아보니 이것만 하고 산거예요. 신기한 것이, 기도한 것도 다 이루어졌어요. 집이 너무 가난해서 차비도 없고 노숙자처럼 살거나 반 지하에 살면서, 아침에 햇빛이 들어오는 집에 살게 해달라고, 얻어먹지 않는 인생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여전히 가난하지만 햇빛이 엄청 들어오는 12층 집에 살고 있어요. 밥도 모자라지 않게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것들이 다 되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사실 대학가요제 나가고 싶었는데(웃음), 가요 톱1은 못했지만 지금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있고 내가 빛나진 않아도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미 원했던 걸음은 깨지고, 다 틀어졌지만, 그게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올려드리는 훈련인 것 같습니다.


전대현박홍준전도사
▲전대현 전도사, 박홍준 전도사. ⓒ김신의 기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박홍준 전도사: 살아남으라고 했던 전대현 전도사님의 표현을 빌리고 싶습니다. 분명히 힘든 길임을 알고 들어선 것일 텐데, 이 힘든 길 가운데 다 따로 주시는 은혜가 있고, 하나님을 만날 뿐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켜주시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텼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있으니 10년 후에도 찬양 사역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유명해지고 이런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사명을 묵묵히 지키고 버텼으면 해요.

전대현 전도사: 시니컬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제 경험을 들어 얘기하면 이기적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사람이 어려워지고 빠듯해지면 이기적이게 되고, 내 것을 챙기기 바빠지기 쉽지만 이기적으론 살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공연을 하다보면 겉으로 거룩하고 멋진 말을 하지만 자기만 돋보이고 뭔가 더 하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태도도 발견합니다. 물론 거룩하고 멋진 욕심도 있지요. 내가 받침이 돼서 누군가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이 사역자의 마음인 것 같아요. 내 등을 내어드려 누군가가 빛날 수 있게, 그 마음을 가진 자는 분명 자신이 빛나요. ‘나는 쇠하여야겠고 누군가는 흥하여야겠다’ 이런 마음, 상대를 예수님 보듯 하는 마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기본적 성경의 원칙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티스트들이 워낙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욕망이 커서 이게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찬양 사역’이란 무엇인가요?

전대현 전도사: 허세 가득하게 얘기할게요(웃음).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고리, 문이라고 할게요. 옛 이스라엘도 전쟁할 때 성가대가 맨 앞에 갔고 요즘도 성도들이 교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보는 게 찬양 팀이고 하늘과 땅을 거룩히 이어주는 첫 번째 문이 찬양 사역이라 생각해요. 물론 찬양은 당연히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고요.

박홍준 전도사: 저는 삶이 묻어나는 멜로디인 것 같아요. 와 닿는 찬양과 와 닿는 찬양 사역자는 노래가 좋을 뿐 아니라 가사나 이런 부분에서 그 사람의 삶이 나타나서 더 많이 은혜가 되는 것 같아요. 노래뿐 아니라 삶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요.

전대현 전도사: 형님 말씀 듣다 생각나는데, 늘 현장에 있는 이들이 사역자인 것 같아요. 어떤 현장에 있는가를 보면 그가 어떤 사역자인지 알 수 있는 것 같고요. 예수님은 분명 이 땅에 오셨을 때 약자들, 가난하고 홀로된 자, 고아와 과부, 병든 자, 죄 지은 자의 곁에 계셨죠. 지금도 너무 단순하고 선명한 기준인 것 같습니다. 그가 누구의 곁에 있는가를 보면 이 사람이 사역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위를 향해 누군가는 아래를 향해… 그 사람의 서 있는 곳을 보면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역은 밑을 보면서 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