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29장 개인무의식으로서 페르조나(3)

페르조나는 자아의 실체를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면의 성격을 갖는다고 했다. 이것은 페르조나가 외부세계와 관계를 하고 적응하는데 불가피한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페르조나는 의식적인 특성이 어느 정도, 그리고 주로 개인무의식적인 특성이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집단무의식이 작용하는 특별한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부분에 대해서 상응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자아와 페르조나의 특성은 그 발견과 병리적인 차원에서의 인식도 중요한 부분이 된다.

1. 페르조나의 발견과 인식

페르조나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발견되는가? 페르조나의 존재를 발견하는 방법은 학자에 따라 그리고 학파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가능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병리적인 증상과 관련하여 몇 가지 차원에서 그 발견을 시도하고 한다.

1) 외계와의 관계상실에서 발견

페르조나는 그 특성상 관계기능(Beziehungesfunktion)이라고 했다. 이러한 관계기능은 자아가 외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식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페르조나는 대개 자아가 주로 외부와 관계하는 기능이 일차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다. 영혼이 자아와 무의식의 깊은 곳을 연결하는 기능을 가진 것처럼 페르조나는 자아로 하여금 외계와의 관계를 맺게 하여 주는 기능인 것이다.

물론 자아는 무의식의 특성을 의식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는 측면이 관계적으로 가장 드러나는 특성이 있다. 이런 페르조나는 분석하면 자아가 지금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자신 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며, 이러한 자각이 때로는 심각한 충격과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거짓된 인격을 진정한 인격으로 착각하여 살아온 결과라는 점에서다.

2) 페르조나의 존재 인식

페르조나의 인식은 반드시 분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상의 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이 어떤 계기로 체면이 손상되었거나 상실되었을 때, 갑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를 경험하거나 깊은 실의에 빠지는 경우이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페르조나에 매달려 자유롭지 못한 관계를 하였다는 점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현상은 평소에 생각하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결과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페르조나에 심각한 손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힘을 잃고 있다.

그런가 하면 페르조나가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못한 사람은 외계와의 관계상실의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무의식적인 여러 충동에 사로잡히며 타인과 사회에 대하여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고 자기의 기분에 의해서 행동하는 완고하고 무자비한 인격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요즈음 인터넷중독으로 사회와 관계를 단절하고, 혼자만의 세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가상세계를 살아간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게임중독에 빠진 사람은 오로지 게임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만 같다. 이들은 대개 현실의 세계를 단절하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과 교류하며, 게임을 위해 온갖 정열과 물질, 그리고 시간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내면에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서는 매우 특이한 사람으로 자처한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현실의 세계로 나오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초라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페르조나의 상실로 인한 개인의 인격의 파괴와 더불어 도덕적 인 혼란을 유발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실제로 각종 범죄를 일삼기도 한다. 인터넷중독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다가 그것을 못하게 하는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매우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 대표적인 유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 페르조나의 병리적 증상

페르조나가 병리적인 상태가 되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페르조나의 병리적 상태는 페르조나의 치료적인 차원과 조건이 됨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1) 가벼운 인격의 해리

가벼운 인격의 해리는 페르조나의 병리적인 증상의 하나이다. 인격의 해리는 "정신이 왔다 갔다"고 말하는 것으로 어떤 때는 건강한 사람처럼 온전하다가 어떤 때는 정신병자처럼 정신이 문제를 보이는 양상이다. 이런 경우의 인격의 해리는 자아가 지나치게 외적인 인격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증상이다. 자아가 자신의 외적인 인격, 이를 테면 외적인 특성으로 나타나는 사회가 인정하는 호칭이나 직위, 나이, 그리고 학벌이나 집안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페르조나의 병리적인 증상은 개인이 자신의 외적인 인격인 페르조나와 지나치게 동일시하게 되면, 무의식이 자아의식의 일방성을 대상하게 되면서 유발된다. 이로 인해 이들의 정신은 하나의 전체가 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작용이 의식의 경직된 태도를 과보상(overcompensation)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아의식이 그 기능을 정지시키기에 충분한 인격적 장애가 발생한 결과이다.

페르조나로 인한 증상은 모든 분별력의 상실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개인이 외적인 인격을 진정한 자신의 존재와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모든 분별력의 결핍은 곧바로 개별적인 것을 집단적인 것 속에 녹여버리도록 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 결과로 이들은 감정이 자유롭지 못하고, 자기의 무의식을 모든 요구를 타인에게 강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개체의 증상이 공동체와의 관계차원에서 분화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이들에게는 모든 덕행의 성과, 그리고 최대의 악행도 개인적인 것이다. 한 공동체가 크면 클수록 모든 큰 공동체에 특이한 집단적 요소들의 합이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보수적 편견으로 지탱되고 있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개체는 도적, 정신적으로 말살되며 그와 더불어 또한 사회의 윤리적 및 정신적 진보의 유일한 원천도 봉쇄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개인의 개별성이 몰락하는 것으로 어떤 측면에서는 억압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기에 사람이 선하고자 할 때는 악을 억압해야 하는 경우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페르조나로 인한 증상은 병리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은 개인이 특정한 페르조나에 자아를 완전히 일치시키면, 자신을 찾도록 하는 일정한 증상이 유발된 결과라는 점에서다. 물론 이런 것이 장애까지는 일으키지 않더라도 페르조나와의 동일시는 가벼운 해리증상을 일으킨다.

더욱이 이런 현상은 자아가 외적인 인격과 동일시되면 내적인 인격과 의식된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영향을 받아 내적인 인격에 자아가 동화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여기에는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활달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으로 통하는 사람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해당한다.

이들은 밖에서와는 다르게 집에 오면 흔히 무뚝뚝하고 때로는 소심하고 잔소리가 많고 짜증을 내며 작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는 경우이다. 우리는 때로 밖에서와 같은 사람으로 집에서도 행세하는 사람을 가리켜 그들이 '가면을 벗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런 병리적 증상의 경우에는 전혀 '딴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2) 내적인 관계상실

페르조나의 병리적인 증상의 하나는 내적인 관계상실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페르조나를 병리적 증상을 인식하는 차원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페르조나의 병리적 차원의 인식은 심각한 내적인 증상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페르조나의 동일시는 병리적 차원의 중요한 증상의 하나가 된다. 실제로 페르조나와의 동일시가 심해지면 자아는 내적인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내적인 관계의 상실은 전술한 외적인 관계의 상실보다는 훨씬 심각한 정신의 상태로서 대개 심각한 질병으로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와 관련된다.

이런 결과는 자아가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그 존재조차도 잊어버린 경우로 보는 데서 비롯된 증상이다. 이런 증상의 하나로 우리는 '갱년기 우울증'을 예로 들 수 있다. 그것은 갱년기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흔히 꼼꼼하고 보수적이고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규칙을 잘 지키는 성격의 사람이라는 것이 이를 설명해준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정신에너지를 상실하는 것과 연계시킨다. 매우 심각한 경우에는 '철저한 성격적 변화', 또는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페르조나에 지나치게 동일시하여 현실에 적응하는 것에 힘을 많이 기울이기 때문에 내면적인 적응, 즉 집단적 무의식에 대한 적응은 오래도록 고려되지 않지만, 만약 이러한 내면에 대한 적응이 문제가 되면 무의식에서서 독특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나와서 의식의 생활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대개 무의식의 영향력의 우세, 이와 결부되어 일어나는 페르조나의 해소나 의식의 주도력의 격감은 정신적 균형이 장해된 상태이며, 이런 상태는 분석치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분석의 과정에서 개인이 알지 못하던 것을 인식하게 되어 자각하게 된 결과로 볼 수 있다.

3) 페르조나의 병리증상으로 인한 심각한 증상

페르조나의 병리적 증상은 대개 동일시라고 전술했다. 페르조나의 동일시로 인하여 나타나는 심각한 증상은 정신에너지와 관련된 우울증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울증은 정신에너지의 고갈로 인해 일어나는 증상이라는 점에서다. 이는 개인이 외적인 인격과 지나치게 동일시하여 정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에서는 페르조나의 지나친 동일시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은 물론 우울증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장애에서도 흔히 지나친 외향화, 즉 외적 세계의 중시로 인해 내적인 인격의 대상이 과도하게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결혼 30년 동안 성실하게 집안일을 돌보아 온 주부가 남편의 외도를 발견하고 갑자기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나는 교회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좋은 일을 도맡아 해 왔습니다. 아이들 시중도 열심히 했고 남편의 뒷바라지도 성실하게 해 왔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쁜 짓을 한 내 남편은 뻔뻔스럽게 돌아다니고, 왜 나는 이런 병에 걸려 병원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까?"

페르조나의 지나친 동일시로 인하여 일어난 증상에 대하여 융의 견해로 도움을 삼을 수 있다. 이런 경우의 환자는 마치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무너질 수 있기 위해 오직 한 사람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거처럼 보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균형상실은 원칙적으로 정신병적 장애와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로 호전되는데 반해서, 정신병은 갈수록 장해가 심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겉보기에는 절망적인 혼란에 직면해서 일어난 공황상태와도 같은 상태, 즉 자포자기의 상태이기에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국은 붕괴되어 이전에 주도적이었던 의지조차 무너진다고 보았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무의식으로서 페르조나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페르조나는 정신에서 관계한다는 관계기능이 중요했다. 이는 외적인 인격으로서 기능한다는 외적인 태도(external attitude)라는 점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개인이 정신에서 작용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페르조나는 진정한 인격이 아닌 피상적 인격, 또는 가상 인격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페르조나로 인해 진정한 자기의 존재를 망각하고 각종 정신의 기능이 혼란을 유발하는 것을 경험하는 데서는 그 존재의 정체와 함께 기능의 문제와 생성, 그리고 존재의 발견을 위한 병리적 측면도 함께 고찰되어야 했다. 이런 점은 페르조나의 특성 때문에 관계에서의 기능복합이나 기능콤플렉스의 개념도 새로운 개념이었을 것이다.

특히 페르조나를 그 특성의 측면에서 개인무의식에 배치한 점은 약간의 논란이 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이 한국에 소개된 지 상당한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이제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감안한 시도이기도 했다. 정신의 특성은 여러 면에 걸쳐 있기에 어느 한 가지로만 특정하여 제한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을 구분하는 데에는 부득불 어떤 구조적인 체계가 필요한데서 시도한 결과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음을 밝히고 싶다.

실제로 페르조나는 의식과 무의식에 모두 관계되어 작용되지만, 외적인 인격태도라는 점을 볼 때 자아의 관계기능을 담당하는 외적인 측면, 즉 개인무의식에 배치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의 사회에서 페르조나의 이해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외적인 인격에 대해서는 일상의 생활에서 이미 다양하게 경험되어 왔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도 나름대로 호칭이나 직위, 그리고 나이와 역할에 따른 다양한 외적인 인격이라는 페르조나를 체험해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페르조나가 진정한 인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지나치게 자아를 동일시하게 되면, 정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은 새롭게 발견되는 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대체로 보이지 않는 정신의 내면에서의 역할보다도 보이는 세계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페르조나의 문제가 정신의 장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게다가 경각심을 넘어 일종의 병리적 증상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정신의 기능을 중요시하는 분야에서는 다시 한 번 새겨들어야만 할 중요한 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