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요새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성평등 인권부, 성평등 위원회, 성평등 인권통합교육, 심지어 육아 휴직제나 임금공시제 앞에도 성평등을 붙인다. 이 추세론 '양성평등'이 슬그머니 사라질 모양새다. 마치 남녀평등을 대체하는 뭔가 참신한 용어처럼 들리기도 하고, 아예 '양성평등'의 줄임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양'자의 삭제는 여성과 남성의 2분법적 구분을 없애고, '젠더'를 헌법과 법률에 이식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1남 1녀의 결합, 그리고 출산을 염두에 둔 전통적인 혼인과 가족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첫째, '성평등'은 남녀 두 개의 성에 국한하지 않고, 수많은 젠더를 인정하겠다는 함의다. 물론, '젠더'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국가는 개인이 결정하는 다양한 성을 수용하고 이를 전제로 모든 법률을 손질할 의무를 부과한다.

미국 뉴욕시는 2016년 6월경 공식적으로 31개의 성을 공포했고, 개인이 선택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수용하지 않는 기업들에는 10만 달러가량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미국 연방정부도 2016년 5월 모든 공립학교의 화장실과 락커를 학생들이 생물학적 성 대신 스스로 결정한 성에 의해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둘째, '성평등'은 혼인이 굳이 1남 1녀의 결합일 필요가 없음을 내포한다. 동성혼의 도입은 물론, 심지어 일부다처나 일처다부, 그리고 복혼마저도 기존의 금지선이 무너질 수 있다. 주지하듯 미국연방대법원은 2015년 6월26일 동성결혼 합헌결정 당시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혼인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 정의한 것이 정체성을 정의하고 표현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판시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이미 공식문서에 "엄마", "아빠" 대신 "Parent 1", "Parent 2"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도 저출산, 고령화에 맞물려 1인 가구 증가 등 보다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려는 게 추세인 건 맞다. 그러나 본격적인 토론은커녕, 아직 대화조차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이제 대한민국이 '남녀'를 대체하는 '다양한 종류의 성'을 인정하고, 가족제도의 근간도 손보려 한다면, 깊은 성찰과 열띤 토론을 반복하여 대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외국의 몇몇 사례를 비판도 없이 수입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남녀구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불과 십여 년 남짓에 불과했고, 서구 국가들은 벌써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으니 말이다. 유독 대한민국이 전 세계의 추이도 살피기 전에 서둘러 '성평등'을 도입할 이유가 있겠는가.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다름'을 존중하라는 명제 위에 서 있는 건 아니다. 수많은 다름 가운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그냥 용인의 영역에 놓아둘 건 무언지 기준을 정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라는 '법치주의'다. 다만, 옳고 그름의 기준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변화에 반응하여 평화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근간이리라.

과연 사람에 대한 무제한적 구분을 인정할 것인지 본격적인 논의를 해보기도 전에 '양' 자부터 빼버리고 시작하는 건 분명히 큰 문제이다. 특히 국회 개헌특위도 얼마 전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양성'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논의했다. '성평등'을 헌법에 명시하려는 건 최고 상위규범으로 불특정 다수의 선택적 성을 인정하려는 것이란 점을 깊이 염두에 둘 일이다.

출처-경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