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우먼
▲‘정의는 그녀로부터 시작된다(Justice begins with her)’. 영화 <원더 우먼>은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 정의,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페미니스트 영화다.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원더 우먼> 下: 하나님 형상을 닮은 사람과 여성

<원더 우먼>의 서사는 기독교 구원사의 구도를 따르고 있으며, 덕분에 이 영화가 표방하는 페미니즘 역시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아직 여성의 인권과 성평등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시기였다. 주인공인 다이애나(원더 우먼)는 영화 속 여러 장면에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오해와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는 영웅적인 여성상을 보여 준다. 고독하게 정의와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소명의식 없는 남성 정치인들과 사기를 잃은 남성 군인들 사이에서 유독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페미니즘에도 시대와 연구자에 따라 수많은 세부적 층위들이 존재한다. <원더 우먼>에 주로 표현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메시지는 어떤 입장에서 여성성(feminity)의 윤곽을 그리고 있는가? 그리고 이 메시지 속에 담긴 기독교적 의의는 무엇인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의 탄생 시점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

◈전쟁과 여성: 로지 더 리베터(Rosie the Riveter)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의 등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내 페미니즘의 사회적 발흥에 힘입어 이루어졌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역사에서 통용되던 전쟁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기관총, 장거리 야포, 기갑부대, 전투기 등 무기 기술의 발전, 그리고 육군과 공군 전력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속전속결로 적의 대열을 분쇄하는 전격전술(Blitzkrieg)의 발전은 단순히 살상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전선과 후방,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방면으로 펼쳐진 독일 동부전선 사령관을 역임했던 루덴도르프(Erich Friedrich Wilhelm Ludendorff, 1865-1937)는 저서에서 '국가총력전(total war)'이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는데, 이 총력전이 가장 분명하게 현실화된 최초의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다. 국가총력전이란 군부와 민간, 전선과 후방의 구별 없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전쟁 수행에 총동원하는 방식의 전쟁을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열강들의 국가 총력전이었을 뿐, 미국의 일상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약 300만명의 미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막대한 군수물자를 수출하긴 했으나 이는 미국 전체의 국력에 비하면 소소한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국가 총력전에 돌입했고, 대규모 병력이 유럽과 태평양 일대에 파견됐다. 미국 내 남성들의 숫자가 줄어 군수품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되자, 미국 정부가 내건 해법은 흑인들과 여성들의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로지 더 리베터(Rosie the Riveter: 리벳공 로지)라는 명칭이 탄생하게 된 연원이다. 로지 더 리베터란 전선에 동원된 남성들을 대신해 미국 내 군수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군수 공장에서의 업무를 계기로 사회활동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급료를 받아 가족을 부양하면서 가정 내 지위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원더 우먼
▲로지 더 리베터와 원더 우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 격상을 반영하는 도안들.
미국의 여성 참정권은 이미 1920년 미국 수정 헌법 제19조가 통과됨에 따라 법적 보장을 받았다. 수정 헌법 제19조는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성별을 이유로, 미 합중국 또는 어떤 주에 의해서도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직장과 가정 등 일상에서 여성의 실질적인 지위가 개선되는 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간 여성 인권과 관련하여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해 온 요구사항들이 사회적 정황과 맞물리면서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충족되기 시작했다.

여성 인력도 남성 못지 않게 중요한 군사적 자원으로 인식되면서, 미국 정부는 여성들의 생산 활동 참여를 더욱 독려하기 위해 기존의 남성적 영웅과 차별되는 여성 슈퍼히어로의 등장을 미디어 업계에 요구했다. 여성들 또한 순전히 남성만을 영웅시하는 미디어 콘텐츠의 편향적 성격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들에 힘입어 슈퍼히어로 캐릭터 작가들은 다수의 슈퍼히로인(superheroine)을 창조해 냈는데, 그 가운데 원더 우먼이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원더 우먼이라는 캐릭터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페미니즘과 연관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었고, 마스턴 박사는 저명한 심리학자답게 이런 요구를 면밀하게 파악하여 최적화된 페미니즘의 영웅을 창조해 낸 것이다.

◈페미니즘과 여성: 평등과 특수성

페미니즘 연구자 맥레오드-해리슨(Mark S. McLeod-Harrison)은 그의 논문 '기독교 페미니즘, 성, 그리고 인간 본질들(Christian Feminism, Gender, and Human Essences)'에서 페미니즘의 시대별 동향을 분석해 제시한 바 있다. 이 논문에 의하면, 1970년대까지 미국의 페미니즘은 주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요구하였다.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제시한 평등의 근거는 바로 동일한 '사람됨(humanness)'에 있었다. 이들은 사람됨의 대표적 표지를 '합리성(rationality)'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들어 남녀평등을 요구하였다.

원더 우먼
▲1970년대 이전의 페미니즘은 주로 백인 중산층과 지식인 여성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남-녀의 인간적 동일성에 근거한 평등을 요구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이런 움직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까지 페미니즘이 지목했던 남녀평등의 수혜 대상자는 주로 중산층 백인 여성들이었다. 저소득층 여성, 유색인종(특히 흑인) 여성들의 삶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합리성이라는 개념이 실은 남성중심적 문화가 제시하는 사람됨의 기준이기 때문에, 합리성을 근거로 남녀평등을 주장하게 되면 사실상 여성을 남성과 동일화하려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1980년대의 페미니즘은 기존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여성들에도 관심을 갖는 가운데, 모든 여성들의 삶 속에 발견되는 동일성(identity)과 차이(difference)를 규정하는 데 주력하였다. 다양하기 그지없는 여성들의 삶을 포괄할 수 있는 참된 여성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가운데, 점차 여성성을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적 관점에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대세를 이루었다.

유명론이란 피에르 아벨라드(Pierre Abélard, 1079-1142)와 윌리엄 오캄(William of Ockham, 1285-1349) 등에 의해 정립된 중세 스콜라 신학의 한 사조를 말한다. 유명론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개별적 존재자들만 존재할 뿐, 존재자들을 하나로 묶는 동일성이나 본질(essence)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에 본질이라고 여겨왔던 것은 사실상 사람이 부여한 명목에 불과하다는 것이 유명론의 주된 입장이다.

원래 아벨라드나 오캄이 유명론을 주장한 이유는, 중세 말의 학문이 과도하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경도되어 있음을 비판하려는 것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기본적으로 형상(εἶδος), 이데아(ἰδέα), 혹은 실체(ὑπόστασις)등의 개념에 의존해 삶의 다변화된 현상들을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원리로 일괄 해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원더 우먼
▲중세 유명론의 대표자인 아벨라드와 오캄. 보편적 본질이란 명목일 뿐이며 실재하는 것은 개별 존재자들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벨라드와 오캄은 이런 사고방식이 개별적인 존재자, 개별적 현상을 억지로 보편적 원리에 끌어맞추는 행사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그들은 존재의 보편적 본질들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이해해 보려는 신학적 시도가 어떠한 인간적 원리에도 구속되지 않는 하나님의 초월적 자유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믿었다.

다시 돌아와, 1980년대의 페미니즘도 점차 유명론적 입장을 견지하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세부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상 보편적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거부함으로써 여성성 개념 규정에 일단의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경향은 다원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의 지배적 영향력에 힘입어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강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에 의해 규정된 본질적 사람됨과 여성됨(womanness)을 발견하려 하는 기독교 페미니즘의 정립에 하나의 큰 도전이자 난제로 부각되었다.

◈기독교와 여성: 참된 사람됨과 여성됨의 조건

맥레오드-해리슨의 연구는 유명론적 경향에 치중하고 있는 세속 페미니즘의 정황 속에서, 기독교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 페미니즘은 성서에 제시된 사람됨의 규정, 즉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라는 근원적 본질을 중심으로 삼되, 삶의 다양성을 적정한 수준으로 포용하는 파생적인 본질로서의 여성됨을 탐구해야 한다. 이것은 보편성과 개별성을 변증법적인 긴장 속에서 종합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통해서만 가능한 작업이다.

원더 우먼
▲기독교 페미니즘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사람이라는 인간이해로부터 여성됨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우선 사람됨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고찰해 보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다. 신앙의 관점에서 이는 변개가 불가능한 절대적 본질이다. 이로 인해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다른 탁월한 특성들을 지닌다. 인식하는 것, 사랑하는 것, 창의적인 것, 자유로운 선택을 단행하는 것, 초월적이고 신적인 것을 사모하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가진 고결한 특성들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들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일괄적으로 수여되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됨은 근원적 차원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나, 현실에서는 각자의 신체적 조건, 태어나고 살아가는 환경, 그리고 여기에 필연적이거나 우연적인 여러 사건들이 얽히는 가운데 지극히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여성됨은 기본적으로 이런 다양성 속에 내재된 파생적인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됨이라는 파생적인 본질을 결정하는 두 개의 중심 요소는 생물학적 조건과 문화적 조건이다. 생물학적 조건이란 여성의 몸이 갖는 모든 실존적인 가능성과 한계를 말하고, 문화적 조건이란 한 여성이 처해 있는 문화가 지정해 주는 여성됨의 가치를 의미한다.

이 둘은 서로 교호적인 관계에 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특정한 문화적 조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가운데 정립된다. 그러므로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과 문화적 조건은 사람됨의 근원적 본질 위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런 조화의 정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여성 또한 사람이며,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다양한 실존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사람으로서 여성과 남성이 각각 그 고유한 실존적 가능성을 최대한도로 누리는 일에는 높은 수준의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람은 각기 그 생물학적 조건에만 구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조건을 통해 생물학적 조건을 다스리고 극복하기도 한다.

단 생물학적 조건이나 문화적 조건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극단적으로 억압하거나 해체하는 것은 여성을 여성 자체로서, 남성을 남성 자체로서 이해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원더 우먼과 여성: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됨과 여성됨

영화 <원더 우먼>으로 돌아와 보자. 주인공 다이애나는 유신론적 입장에서 사람됨과 여성됨의 모범적인 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 준다. 미국 정치학 교수이자 저술가인 발레리 허드슨(Valerie M. Hudson)은 문화, 정치, 그리고 종교 일반의 이슈들을 다루는 월간지 'The Federalist'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다이애나를 기독론의 관점으로 분석한 바 있다.

허드슨의 분석에 의하면, 영화 속 다이애나의 캐릭터 설정은 그리스 신화의 창조론, 기독교 창조론, 그리고 기독론을 융합한 결과물이다. 다이애나는 흙으로 빚어진 후 신으로부터 생기를 받았으며 처녀인 어머니를 가졌다. 이로 인해 그녀는 피조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인류의 마음을 죄성으로의 편향으로부터 구원하는 사명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원더 우먼>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원 사역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허드슨의 분석이 특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확보하고 있는 다국적 인문학 출판사 와일리-블랙웰(Wiley-Blackwell)은 일반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철학적 해석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 출판사를 통해 연속 출간되고 있는 <철학과 대중문화(Blackwell Philosophy and Pop Culture)> 시리즈에서는 슈퍼히어로 관련 콘텐츠도 주된 연구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Avengers and Philosophy', 'Wonder Woman and Philosophy', 'Superman and Philosophy', 'Spider Man and Philosophy', 'Iron Man and Philosophy' 등이 있다.

해당 논문집들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구원자로서의 슈퍼히어로에 대한 기독론적 분석이다. 다수의 대중문화 연구자들은 기독교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초월적인 구원자의 이미지 구축에 기여하였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원더 우먼
▲슈퍼히어로 코믹스와 영화가 기독론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다양한 대중문화 연구자들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이들은 <원더 우먼>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기독론을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분석한다.
<원더 우먼>의 기독론적 캐릭터 설정 덕분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페미니즘적 비판의식은 유신론적 인간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 페미니즘과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선 다이애나가 인류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녀의 구분에 연연하지 않는다. 영화 속 다이애나는 인류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유념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사람들을 선과 악, 의와 죄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다이애나가 보는 참된 사람됨의 본질은 생명을 사랑하는 성품과 높은 수준의 도덕적 선량함이다.

사람됨의 기준이 의로움과 선함에 있기 때문에, 다이애나에게는 남-녀의 가부장적 차별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일로 여겨진다. 남성이라 해도 불의하고 부도덕하면 가치없는 사람으로 취급되고, 여성이라 해도 의롭고 도덕적이면 참된 사람됨의 가치를 누릴 자격이 있는 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원더 우먼>의 다이애나는 고결한 '사람'이라면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벨기에 참호전 장면에서, 다이애나는 고립된 마을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총격과 포격을 뚫고 전진한다. 곧 다이애나의 초인적 힘과 의지에 감화된 특공대 요원들과 일반 병사들도 용기를 얻어 돌격에 가세한다.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참된 리더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다이애나가 선봉을 맡는 사건은 다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창조주의 뜻에 부합하는 의롭고 고결한 사람은 그 생물학적 조건이나 문화적 조건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삶의 모범이 될 수 있다."

그렇다 해서 다이애나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에 전혀 무감한 것도 아니다. 그녀는 처음 본 남성인 트레버에 관심을 갖고, 그가 신의 의도에 부합하는 선량하고 용기있는 사람임을 확인한 후 트레버를 자신의 연인으로 선택한다.

다이애나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가진 생물학적 조건과 문화적 조건을 신에 의해 지정된 사람됨의 본질 안에서 조화롭게 감내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다이애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가부장적 문화의 억압에 대해 냉소적이다. 이는 그녀가 차별당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분노를 갖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차별이 참된 사람됨의 본질에 따라 살아가고 행동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권력과 정치적 이익만을 취하려 하는 남성 장성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다이애나의 질타 장면은 남-녀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문화가 사람의 근원적 본질을 저해한다는 문제의식을 표명하고 있다.

원더 우먼
▲테미스키라를 떠나 사람들의 세상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다이애나. 여성에 대한 부당한 문화적 차별을 결연하게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성과 여성: 구별과 조화의 회복

2016년 9월, <원더 우먼>의 촬영이 한창일 무렵, 슈퍼히어로물 전문 만화가이자 소설가인 그레그 러카(Greg Rucka)의 발언이 할리우드 영화계의 소소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는 다이애나의 고향 테미스키라가 오직 여성들만 거주하는 곳이라는 것을 근거로, 다이애나를 퀴어(queer) 캐릭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 <원더 우먼>의 감독 패티 젠킨스(Patty Jenkins)와 주연배우 갤 가돗(Gal Gadot-Varsano)은 명백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이 영화가 여성 동성애에 대해 어떠한 암시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유신론적인 기독교 페미니즘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적 요소가 관여될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더 우먼>은 사람됨의 근원적 본질로서 의로움, 선량함, 그리고 자애로움과 용기라는 덕목들을 제시하고 있고, 여기에 근거해서 책임감 있는 자세로 남성과 여성에 부여된 생물학적 조건과 문화적 조건을 조화시킬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동성애란 유신론적인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참된 여성됨의 한 조건(생물학적 조건)을 간과하고 해체하는 행위다.

원더 우먼
▲<원더 우먼>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유신론적 관점에서 조명하기 때문에 동성애적 소재가 관여되기 어려운 작품이다.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명론적 입장에서, 즉 세속적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는 문화적 조건이나 생물학적 조건 모두 개별적 삶의 특수성에 속한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적 조건이 동성애를 허용한다면, 그리고 개인의 취향이 동성애를 지향한다면 그 역시 삶의 특수성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의 근원적 본질과 실존적 조건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기독교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는 여성과 남성 고유의 생물학적 조건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은 자기 삶의 전인적(全人的) 정황과 조건들을 성실하게 감내하는 가운데 참된 사람됨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책임을 진 존재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참된 사람됨과 여성됨의 본질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원더 우먼>은 비교적 만족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영화로 평가된다. 이 영화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아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요소들이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타의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같이 <원더 우먼>도 하나의 상업화된 신화로 분류된다. 때문에 이 영화는 곳곳에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고, 기독교적 소재들을 포스트모던 스타일로 왜곡해서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 없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정체성을 유신론적인 관점에서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점에 대하여는 기독교적 입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원더 우먼>은 동성애 문화의 범람이라는 시대적 도전에 대한 문화적 해법을 제시하는 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람의 도덕적 본질에 대한 성서적 이해의 깊이를 강화하는 것이 참된 페미니즘의 길이며,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조화로운 이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본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든 자기 삶에 연관된 모든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재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격식 없이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브리콜라주라고 한다. 이 기법은 오늘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조형예술, 팝아트(pop art) 등에 자주 동원되며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오늘날의 영화는 삶의 모든 관심사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요소와 불편해할 만한 요소들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본 칼럼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영화들 속에 뒤섞여있는 아이디어들을 헤아려 보고,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