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28장 개인무의식으로서의 페르조나(2)

자아는 외부세계에 관계하는 기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것이 관계기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 자아는 자신을 어느 정도 포장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자아의 본능성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그 본능적인 대응이나 반응이 반드시 의식적이지만 않고 때로는 무의식적인 측면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자아의 페르조나를 이해해야 한다.

1. 페르조나의 특징

페르조나는 개인의 외적인 인격이라면 이 인격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페르조나의 정체는 이것만으로 모두 밝혀진 것만은 아니다. 이는 페르조나의 특성을 더 고찰하여 기술해야 할 이유이다. 여기서는 페르조나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므로 그에 따른 이해를 넓게 할 수 있다.

1) 피상적인 인격

페르조나는 진정한 인격의 실체가 아니라 가상이라고 했다. 이는 페르조나가 인격의 피상(皮相), 즉 '껍데기'임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껍데기 인격이란 인격의 실체인 진정성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전제로 한다. 이는 자아가 내면의 인격을 숨기고 외부와 관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포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다.

페르조나의 껍데기는 겉과 속이라는 개념에서 이해된다. 자신의 껍데기라는 것은 숨겨진 인격부분이 아니라 외부로 드러난 인격부분이다. 껍데기는 개인의 특성과 관련되는 일부분이지만, 진정한 실체는 아니라는 특징은 페르조나의 존재방식에서 규정되는 측면이다. 다시 말하면 자아가 객체와의 관계에서 외적으로 집중되는 것을 통하여 특징되는 존재방식인 것이다. 그것은 페르조나가 자아인 자신에 속해 있으면서 진정한 자신은 아닌 순전히 외적인 것을 위한 특성을 지니는 것 때문이다.

페르조나의 껍데기는 우리나라의 가면이나 탈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왕의 가면을 쓰면 속의 나와는 상관없이 왕처럼 행하게 된다. 탈춤을 추는 사람이 노인의 탈을 쓰면 노인과 같이 행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외면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내면적인 개인의 특성이다. 내면적인 특성이 외면적으로 드러난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정한 자기의 실체는 아니지만, 자신과 관련되어 외면적으로 드러난 자신의 특성을 모두 외적인 인격(external person)이라 부른다.

이 외적인 인격에는 현실에서 자신을 둘러싸는 외부적인 것들, 출생신분, 학력, 각종 사회적인 직위 등이 이른바 가면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페르조나는 가면이나 탈을 쓴 사람, 또는 사회적인 직위가 나타내는 특성으로 보아 주체자의 어떤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보다는 가면이 갖는 개성을 따라야 한다. 그 때문에 페르조나는 실상과는 거리가 먼 가상(假相)에 가까운 특성을 지니게 된다. 실제로 페르조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 개인무의식의 한 단면

페르조나는 개인적인 측면이 있다. 페르조나에 개인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가면을 쓴 자신이 어떻게 개인적인 측면이 가능하다는 말인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페르조나는 융에 의하면 무의식적 자아의식과 관련이 된다. 페르조나는 무의식적인 자아의식의 개성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를 간접적으로라도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인이 집단 앞에 표출되는 한에 있어서는 하나의 역할을 지니고 있으면서 무의식적 자아의식은 사람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억압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의 순수한 개인적인 태도는 무의식적인 측면으로부터 여러 반응을 일으키지만, 그 반응에는 개인적인 억압과 함께 집단적인 환상의 베일아래 개성적인 발전의 새싹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인 무의식의 분석을 통해서 보면 집단적인 소재가 개성적인 요소와 함께 의식에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융은 개인무의식의 한 단면과 관련하여 철학을 전공하는 어느 여대생을 예로 든다. 그녀는 부친을 닮은 남성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만난 남성은 그녀의 지성으로 대하게 되지만 유독 그 남자에 대하여 지독하게 비판적인 특성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습성을 지녔다.

이것은 이미 그녀가 자신의 무의식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부친의 영향을 받은 것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그녀 자신은 부친고착(父親固着)성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융은 그녀가 어머니를 외면한 아버지의 그림자 측면과 무의식에서 깊은 이해심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머니의 경쟁자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융이 그녀의 개인적으로 무의식을 분석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융은 의사라는 직업상 환자로부터 자극을 받아 짜증내거나 흥분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부득이 그녀가 기대하는 영웅이며 아버지 겸 연인이 되어야 했다고 술회한다. 그녀의 무의식적인 욕구는 자신이 기대하는 인물에 상응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개인에게서 집단적인 소재가 개성에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의 반증이라는 점에서 무의식적인 특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 집단무의식의 한 단면으로서 페르조나

페르조나는 의식의 원천이 되는 무의식, 특히 집단무의식과도 관련되고 있다. 집단무의식은 그 특성상 때로 사회적 관습이나 양식으로 굳어져 자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집단무의식은 보이지 않는 사회의 정신적 특성이 전체적인 요구나 기대감으로 일정하게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르조나가 외부, 객체와의 관계에서 외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한 개성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특성의 한 양식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페르조나는 한 인간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무의식적인 것의 한 표출인 것이다. 여기서 집단무의식은 집단적 정신과 동일한 것임을 의미한다.

페르조나가 개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외부세계에 대하여 어느 정도 변장하거나 둔갑이 된 자신을 연출한다는 것을 상정한다. 진정한 자기의 어떤 생각을 나타내기보다는 무의식중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단체 등의 생각이나 의견 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융은 페르조나가 집단적 무의식과 같은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역설했다.

다만 페르조나가 집단정신에서 나온 얼마간 우연한 또는 임의적인 단면이라는 정황 덕분에 페르조나를 개별적인 것이라고 보는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페르조나는 그 이름이 말하는 대로 집단정신의 가면이라는 것이다. 다만 페르조나는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이 개별적이라고 믿게 만드는, 마치 개성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가면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페르조나가 가면(假面)을 의미하듯이 일종의 '마음의 가면'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페르조나는 진정한 자신이 아니면서 '개성적인 것'이라 보이게 만드는 가면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융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우리가 페르조나를 분석한다면, 즉 가면을 벗긴다면, 우리가 개성적이라 생각했던 것이 근본적으로는 집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말로하면 페르조나는 다만 집단정신의 가면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페르조나는 집단정신의 가면이라고 했다. 그러한 가면은 다른 사람들이나 본인 자신을 개성적인 것이라 믿게 하는 착각을 일으키는데, 실제로는 집단적인 마음을 분장하여 연출하는 역할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페르조나에는 이미 어떤 개인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자아의식의 페르조나와의 전적인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 자기(Selbst), 이를 테면, 본래적인 개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비록 직접이 아니라 간접으로라도 그 존재를 인지하도록 한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자아의식이 우선 페르조나, 즉 타협성과 동일시하여 집단성에 어떤 것으로 나타나 하나의 역할을 한다고 해도 무의식의 자기(自己)라는 사람의 눈에 주목되지 않을 정도로 억압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페르조나는 자기의 본래 개성인 것처럼 빠져들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 분석심리학은 이처럼 페르조나와 자기의 개성을 일치시키는 것을 병리적 현상으로 주목한다.

2. 페르조나의 생성

페르조나의 어떻게 생성되는가? 페르조나의 형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페르조나의 생성은 여러 가지 특성과 관련되어 유발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다음의 두 가지를 들어보기로 하자.

1) 집단의 요구에 의한 페르조나

페르조나는 집단이 요구하는 것에 의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자아가 외계와의 관계에서 또는 그 역할에 따라 보이는 자신을 크게 생각하는 것이나 역할이나 직위에 걸맞는 집단의 요구에 적응 및 순응해 가는 동안 이미 페르조나는 생성되어간다. 말하자면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는 이른바 기능적인 인간의 생활을 거치는 체험을 통하여 그 집단이 요구하는 외적인 인격을 이루어간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국민된 도리, 민족의 일원, 선배로서, 후배로서, 상사로서, 아랫사람으로서와 같은 경우에도 이미 집단 공유의 보편적인 원칙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적응은 자연히 그 집단이 요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을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존재에 적합한 페르조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운 사람'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한다. '남자다운 사람, 여자다운 사람'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그 분은 선생님답다, 또는 그 분은 목사님답다"는 말이 가능해진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신분에 걸맞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사회는 특히 페르조나가 강조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개성보다는 그 단체에 부합된 사람, 또는 그런 직위에 합당한 사람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다.

페르조나는 개인이 싫든 좋든 간에 그런 직위에 걸맞는 사람으로 되어야 인정받는다는 점이 중요시된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어느새 진정으로 개성적인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내면을 감추거나 포장하고 오로지 그 직위에 걸맞는 사람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누구든 집단의 규범을 벗어나 개성을 발휘하려고 하면 즉각 이를 위험시하고, 그 사람의 도리를 따지게 된다.

페르조나의 이런 특성은 지나치게 외부에 걸맞는 사람으로 치중되어 살아갈 때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개인이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다듬어지게 되는 것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살피지 않으면 외부세계가 요구하는 사람으로만 변형되어 가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아들된 도리, 친구의 의리, 조직체의 단합 등을 내세우며 집단으로부터의 이탈을 '이기적, 독선적, 비인간적 몰인정' 등으로 규탄하는 편이다. 이런 현상은 페르조나가 개성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집단이 요구하는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2) 무의식의 보상으로서 페르조나

페르조나는 무의식의 보상으로도 형성된다. 개인은 모르지만 집단 앞에 드러나는 개인의 특성, 즉 페르조나는 무의식의 대비에서 보상하는 내용에 의해 형성된다. 이런 점에서 융은 "의식의 순수한 개인적 태도는 무의식으로부터 여러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반응에는 개인적인 억압과 더불어 집단적 환상의 포장 아래 개성 발전의 새싹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융은 개인적인 무의식의 분석을 통해서 집단적 소재가 동시에 개성의 요소와 더불어 의식에 공급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결과는 프로이트 이론의 시각에서 고찰하는데 익숙한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임을 덧붙인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철학전공의 여대생의 예를 든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고착된 특성을 가진 내담자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아버지와 같은 특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였다. 이런 현상은 그녀가 아버지와 매우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닮은 남자를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상대 남자를 그녀의 지성(知性)으로 만난 것이라는 점에서 무의식적 보상에 대한 결과로 보았다. 그녀의 지성이 지적인 여성에게 흔히 있는 독특한 저항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는 지적인 여성의 저항적 지성은 항상 남의 흠을 잡고자 시도하고, 불쾌할 정도로 개인적인 심리로 심하게 비판하며, 게다가 자기 의견을 객관적인 소견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다.

3) 전이의 결과로서 페르조나

페르조나는 환경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개인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의식적으로 전이된 경우를 의미한다. 전이는 개인의 심리가 상대방에게 옮겨진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은 반드시 전이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전이의 일반적인 의미를 가진 메타-커뮤니케이션(meta-communication)을 예로 들 수 있다.

메타-커뮤니케이션은 상대방과 교류할 때, 그 숨은 의미가 전달되는 특성을 가졌다.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되는 것으로 실제로 말하는 것보다는 그 숨은 의미의 전달이 더 중요해진다. 이런 경험은 주로 관계차원의 대화에서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기에 의사소통이라는 차원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런 경험은 물론 일화적인 차원, 관계적인 차원, 그리고 암묵적 인 관계의 차원과 관련되어 일어난다. 이런 숨은 의미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되면 그것은 전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본인이 원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상대방의 견해나 의도가 이동되어 행동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다.

페르조나의 전이적인 성격과 관련하여 어머니로서 역할을 잘하는 한 여성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녀는 한 여성이지만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상당히 현명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 그녀 자신은 스스로 모친 겸 연인의 이중적인 역할을 잘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전이(轉移)의 개인적 무의식인 경우일 수 있다. 이는 모친의 역할이 그녀에게 전이된 경우이기에 그녀의 역할 자체는 단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녀의 배후에 그녀의 진정한 본래적 본성인 그녀의 개성적인 자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녀의 페르조나 뒤에 숨어 있는 개성이 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역할과 동일한 경우에서는 무의식적이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이렇게 자아는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차츰 집단정신에 동화되어 가게 된다. 자아와 페르조나와의 동일시가 때로 심각한 정신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이유이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앞장에 이어서 개인무의식으로서의 페르조나에 대해서 기술했다. 자아는 외부세계에 관계하는 기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이것이 관계기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 자아는 자신을 어느 정도 포장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자아의 본능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했다. 다만 그 본능적인 대응이나 반응이 반드시 의식적이지만 않고 때로는 무의식적인 측면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자아의 페르조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몇 가지로 구분하여 기술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