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수 7:20)

여리고성 점령과 관련하여 운명이 뒤바뀐 두 가정이 있었다. 라합과 아간의 가정이다. 여리고성의 기생이었던 라합은 온 가족이 모두 죽을 운명이었지만 구원을 받았고, 승전의 기쁨을 나눌 아간은 그의 가족과 함께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  

라합과 그의 가족들이 멸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정탐꾼을 숨겨준 공로 때문이었다. 그녀가 동족을 배반하면서까지 그들을 숨겨준 것은 정탐꾼들의 처지가 불쌍해도 아니고 뇌물을 받고 눈감아 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소문을 통해서 들은 것이지만, 라합은 하나님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광야생활을 인도하시면서 요단강 건너편 지역을 점령케 하신 전능의 하나님이셨다(수 12:10-11). 라합은 여리고성도 곧 하나님에 의하여 점령당할 것을 예견하면서 과감하게 하나님 편을 선택하였다. 라합은 하나님을 정확하게 이는 지식만이 아니라 확신과 함께 과감한 결단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균형을 갖춘 건전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라합의 운명과는 정반대적으로 아간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대열에서 제외된 인물이 되었다. 아간이 그런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전리품 가운데 일부를 감추어 자기의 것으로 삼았다. 그것은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그리고 오십 세겔 나가는 금덩이였다. 세겔은 보통 11.42 그램에 해당되는 무개 단위였다. 그렇다면 이백 세겔(2284g)의 은과 오십 세겔(571g)의 금은 상당한 액수의 귀금속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훔친 물건이 고가의 귀중품이기 때문에 그런 혹독한 처벌을 받은 아니다. 그의 잘못은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경홀히 여긴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점령을 앞두고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모두 여호와께 바쳐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수 6:17). 아간은 그 명령을 어긴 것이다.  

여기에서 '여호와께 바쳐야할 물건'은 히브리어로 '헤렘'이라 하는데, 이 단어를 우리말 성경에서는 여러 단어로 풀어서 번역하였다. '헤렘'은 여호와 전쟁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는 전리품이 주어지는데, 그것을 여호와 전쟁에서는 '헤렘'이라고 부른다. 우리말 성경에서 '여호와께 바칠 물건'이라고 번역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헤렘'을 철저하게 불태워 없애버리라고 명령하신다. 완전히 불태워 없애버림으로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제물을 삼으라는 것이다. 영어성경에서 '헤렘'을 'total destruction'으로 번역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여리고성에서 얻은 '헤렘'은 두 가지 방법으로 처리되었다. 사람과 가축을 비롯하여 모든 물건은 다 불태워버려야 했고, 은금과 동철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들이도록 했다(수 6:19). 전리품을 완전히 불태워 없애버리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조치였다. 당시 사회에서 대부분의 소유는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런 물건들을 지니게 살다보면 자연히 이방신들과 관련된 문화와 풍습에 영향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것을 미리 차단시키는 방법이 완전하게 소멸시키는 '헤렘'이었다. 아간이 하나님의 '헤렘' 중 일부를 훔친 것은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전체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마땅히 도려내야만 했던 아픈 부분이었다.  

여리고성 점령과정에서 운명이 뒤바뀐 사건과 관련하여 주목해야할 점은 한 개인의 행동이 전체 가족에게 중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이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전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개인이다. 전체의 운명을 바꾼 한 개인의 행동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적이었다. 비록 기생 신분의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던 라합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대열에 동참할 수가 있었다. 아간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경우가 되었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