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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따른 성격이나 기질 차이는 의학적인 근거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있고, 재미로나마 사랑하는 사람과 궁합까지 본다. 사람들은 혈액형에 따른 성격의 차이를 소재로 코미디를 만들기도 하고, 예전에는 라는 영화까지 나왔다.

혈액형만으로 어떤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일도 많다. 대개 A형은 내성적이며 소심하고, O형은 활발하며 사교성이 있고, AB형은 바보 아니면 천재, B형은 이기적이고 괴팍함 등으로 알고 있는데, 묘하게 일리가 있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특히 A형은 소심하고 낯을 가리며 빨리 친해지기 어렵지만, 일단 친해지면 말이 너무 많아지는 등 정말 그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A형도 모자라 '소문자 a형'에 더블 AAA와 트리플 AAAA형도 있다고 하는데, 주변에 보면 '골뱅이 속에 배배 꼬인 소문자 필기체 @형'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두가 사람의 선입견이 어떤지 보여 주는 실례이며, 어떤 타입의 특징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없다. 그러므로 나와 상대방의 혈액형에 대한 정보로는 어떤 사랑이나 관계도 점치거나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은 출생 때부터 혈액형을 알려주지만,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국민(초등)학교 1학년 때 손가락 피를 찔끔 뽑아 (무슨 검사를 했는지는 몰라도) 혈액형을 통보해 줬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해는 이런 일에서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그때 필자는 A형이 나왔는데, 형과 누나는 O형이었다. 필자에 비해 두 사람은 활달하고 친구를 잘 사귀는 등 정말 전형적인 O형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그런데 누나가 첫 아이를 낳을 때 산모의 혈액형이 다시 나왔는데, 놀랍게도 A형이었다. 이것이 혈액형에 대한 선입견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아마도 평생 자기 혈액형을 잘못 알고 사는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연애는 다큐다
▲ⓒ사진 박민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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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은 일본과 한국 정도만 따지는 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혈액형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병에 걸릴 경우 치료 과정에서 알게 되거나 간혹 어릴 때 학교에서 과학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확인차 국내 대학에서 랭귀지 코스를 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미국인 친구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혈액형을 모른다면서, 하여간 이 질문을 진짜 여러 번 받았는데 모두 한국과 일본 친구들이었다고 했다.

고대국가가 아닌 미국과 같은 다문화·다민족 사회는 혼혈이 많은 것은 물론 혈족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민족이 아닌 국가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대로 핏줄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보니 혈액형에까지 관심이 많고. 자꾸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어려서부터 비공개로 자란 입양아가 모르는 게 약인 출생의 비밀을 알고서 큰 충격을 받는 부작용도 생기고, 잘못 파악된 혈액형 때문에 멀쩡히 자기 자식을 낳은 아내를 심각하게 의심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혈액형을 성격과 연결하는 것은, 원래 더 사악한 인종차별적 의도를 지닌 우생학(優生學, eugenics)에서 비롯되었다. 찰스 다윈(C. Darwin)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갤튼( F. Galton)이 주창한 우생학은 인종별로 우성과 열성이 존재하므로, 품종개량하듯 사람도 우수한 종족으로 개선해 나가기 위해 열등한 사람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하는 이론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 개념은 남아있다. 진화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론이기 때문에, 진화론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망령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무식해서 무자비한 이론은 열등한 장애인이나 신생아 등은 감별해서 죽이거나 결혼을 금지시키고, 이민도 금지하는 등 상상초월의 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혈액형으로 우성과 열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론이 독일에서 나왔고, 그것이 1916년 독일 유학생 일본인 의사를 통해 주장된다. 그 과정에서 조금 약한 개념인 성격의 차이로 순화된 것이다.

1920년대에 불과 300여명을 조사한 결과로 주장된 한 심리학자의 주장은 한동안 잦아들었다가 1970년대에 한 방송작가에 의해 책으로 나오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1980년대에는 그녀의 아들이 돈벌이에 이용했다.

혈액형에 대한 분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각 혈액형의 특성이 다른 모든 혈액형에서 고루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과학적으로 성격과 기질에 피가 영향을 준다는 근거가 없는데, 문화적 교류 때문인지 한일 양국 사람들만이 자주 따지는 이야기가 되어 기정사실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별자리를 따지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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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은 성격보다는 질병 유형과 조금이나마 더 관련이 있다고 한다. 혈액형에 따라 걸리는 병의 종류가 비슷하게 나타나는 연구 및 통계 결과도 있다는 것. 그렇게 보면 A·B·O 등의 전형적인 분석까지는 아니어도 피의 성분이 기질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한자에도 혈기(血氣), 다혈질(多血質) 등의 말이 있으므로 피의 성분에 따라 약간의 기질 차이는 생긴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양의 의학이나 철학은 눈에 드러나는 부분만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앞에 태어난 아기도 생겼을 때부터 계산하여 '한 살'로 치니,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체질과 피에 관한 통찰력도 조금은 발달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피의 '타입'에 관하여 맹신하는 것은 크리스천이 된 후에도 날과 때와 해를 지키는 것 못지않게 초등 원리를 따르는 일일 것이다(갈 4:9). 혈액형에 따라 사람에 대해 지나친 편견을 갖거나 생각의 틀에 갇히는 일은 어리석은 것이다.

게다가 이것 때문에 자신과 상대방의 사랑 문제를 곡해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겠다. 서로 안 맞는 이유를 찾기 위해 혈액형 탓을 한다든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단 몇 개로 나뉘는 혈액형으로 복잡한 사랑을 파악하고 성격을 알 수 있을까. 그 모두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피는 단 두 종류뿐이다. 죄에 의해 부패한 인간의 피와, 속죄하는 능력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것이다. 피가 성격을 결정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것이 생명 그 자체임은 분명한 사실이다(레 17:11, 14). 바로 부패한 피 때문에 인간은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인지하여 부족한 인간의 성품과 죄악성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서로를 아끼며 살아야 할 것이다.

A형이든 B형이든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혈액형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육신의 장막을 벗고 부활의 새로운 몸을 갖게 되는 그날까지, 혈기를 다스리고 서로 인내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님 보혈의 생명력을 의지해야 한다. 부실한 사랑도 혈액형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모든 오해를 풀고, 좋은 점은 더 좋게, 나쁜 점은 쿨하게 인정하면서 담백하게 사랑하고 서로 아껴주면 된다. 불필요한 고정관념과 프레임은 건강한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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