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번영 고재길
▲패널토의 모습. 왼쪽부터 김찬호·고재길 교수, 양혜원·김근주 박사. ⓒ이대웅 기자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의 <인간의 번영(IVP)> 출간 기념 특별좌담회가 '지구화 시대,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12일 오후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인간의 번영> 내용을 기초로 한국 사회와 기독교의 관계를 묻고, 상생과 번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모색했다. 예일대 교수이자 신앙과문화연구소장인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배제와 포용>, <베풂과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용서와 인간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말했고, <광장에 선 기독교>와 <행동하는 기독교>를 통해 신학의 공공성과 교회의 사회성을 강조했다.

<인간의 번영>도 신앙공동체의 공적 영성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으며, 지구화 시대에 '진정한 번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이 가능하며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함께 공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좌담회에서는 1부에서 '<인간의 번영>을 통해 본 한국 사회와 종교'라는 주제로 고재길 교수(장신대)가 기조발제를 전했으며, 2부에서 김근주 박사(느헤미야) 사회로 고재길 교수와 김찬호 교수(성공회대), 양혜원 박사(번역자)가 토의했다.

고재길 교수는 먼저 책 주요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2008-2011년 '신앙과 지구화' 세미나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번영>은 종교에 대해 '번영(Flourishing)의 비전을 제시하는 강력한 매개'로 규정한다. 이를 통해 지구화와 종교 간의 문제, 그리고 지구화 시대에 필요한 종교의 역할, 즉 존중의 정신과 체제, 종교적 배타주의와 정치적 다원주의, 갈등-폭력-화해 등에 대해 논하고 있다.

볼프가 말하는 지구화란 '빠른 속도와 심오한 변화가 특징인 삶의 모습을 제시한 세계시장, 세계통신, 지구적 상호의존, 기술적 진보, 세계문화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리고 세계종교의 6가지 특징은 ①실재를 초월적·범속적 영역으로 구분하고, 초월적 영역 우선시한다 ②인간을 개인으로 본다 ③보편적인 주장을 한다 ④일상적 번영을 능가하는 선에 대해 말한다 ⑤구분되는 문화적 체계이며 모든 정치적·인종적 경계를 초월하며 스스로를 다른 문화에 이식시킬 수 있다 ⑥일상적 실재의 변화를 가져오고, 삶에 대한 긍정이 초월적 영역과 충돌할 경우 그 상황을 초월적 질서에 맞게 조정한다.

인간의 번영 고재길
▲고재길 교수가 볼프 교수의 <인간의 번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저자는 개인에게 제시되는 보편적 상징체계로서 인류가 하나라는 인식을 처음 하게 해 준 '세계 종교'를, 지구화의 첫 분기점으로 이해한다. 지구화는 사람의 욕망과 에너지, 창조성을 평면적 일상에만 집중시키지만, 세계 종교는 초월적 영역에 마음을 둬야만 일상적 삶을 제대로 향유하고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세계 종교는 지구화가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때 지구화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초월적 관점에서 지구화가 인간의 진정한 번영에 기여하는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구화를 악마시 또는 신성시하기보다, 좋은 인생에 대한 종교의 척도로 지구화를 평가하고 지구화가 인간의 진정한 번영과 지구적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

지구화 시대에, 종교는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특히 정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종교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구화는 종교의 적이라기보다 친구로, 다종교 사회를 발생시킴으로써 지구화는 세계 종교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면 지구화는 세계 종교를 '부의 종교'가 되도록 유혹한다.

볼프는 지구화 시대에 진행되는 '종교적 비관용'을 비판하면서, 세계 종교가 다원주의를 정치적 프로젝트로 수용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 자유의 근거를 '초월적 부름의 주권과 그것을 따를 인간의 책임'에서 찾으면서, 세계 종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도덕원칙과 작동모드 둘 다를 긍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종교적 배타주의 안에서 정치적 다원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종교간 분쟁 때문에 전 세계 도처에서 분쟁이 만연하는 가운데, 세계 종교가 '종교의 자유, 모든 시민에 대한 동일한 존중, 종교와 통치의 구분을 수용'할 경우 다원적 정치질서 또는 정치적 다원주의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저자는 그 근거로 17세기 정치인 윌리엄스와 미국의 기독교 우파를 제시한다.

저자는 "세계 종교가 비록 서로 심각하게 대립하기도 하고 갈등의 불씨를 지피거나 부추기는 데 사용된 적이 많지만, 그럼에도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종교는 인간에게 번영과 평화를 갖고 오지만, 갈등과 폭력도 일으킨다. 그 해결방안으로는 종교의 자유, 사람과 타종교에 대한 존중, 다원적 정치구조뿐 아니라 '만족과 연대에 가치를 두는 인간 번영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제시했다.

화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볼프는 '기억하라, 용서하라, 사과하라, 보상하라, 수용하라'는 실천을 촉구한다. 그리고 다음 네 가지 규칙은 종교를 통한 폭력의 가능성을 축소시킨다. ①정치권력으로부터 종교의 독립성을 보호하고, 정치권력을 공통적 정체성의 표지로 사용하지 않는다 ②원래 계시와 그 후에 따라오는 전통이 있는 자원을 충분히 잘 활용해 좋은 인생에 대한 종교의 비전에 집중한다 ③종교의 완전한 자유(실천과 선택)를 지지한다 ④황금률을 타협하지 말고, 개인의 도덕적 평등을 확인한다.

고재길 교수는 "볼프는 이 책에서 전통적 신학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고, 철학·사회학·정치학·경제학·과학 등 일반 학문들의 연구업적을 충분히 활용하는 간학문적 연구를 시도한다"며 "볼프가 강조하는 번영이 물질적이 아닌 삶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이라면, 그의 학제간 통섭적 연구는 학문적 상호연구의 삶에서 경험되는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한국교회가 초월적 영역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시에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공적 신앙을 실천할 때, 볼프가 말하는 '인간의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책은 한국과 같은 다문화·다종교 사회에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배타적 종교주의 안에서 실현되는 정치적 다원주의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고 교수는 "볼프는 책에서 지구화를 중립적 형태로 이해하나, 지구화로 증폭되는 비인간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해결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며 "볼프는 세계 종교가 해결방법의 근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국가 내부의 정책이나 국가 간 정책으로 연결되진 않으므로 세계 종교가 직면한 심각한 과제들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인간의 번영 고재길
▲좌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 양혜원 박사는 "요즘 문제가 되는 번영 신학의 문제는 우리가 지금 가진 부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 방식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교회도 선교를 통해 세계화에 열심히 참여했거나 세계화의 혜택을 입었는데, 볼프의 시각으로 종교의 역할을 본다면 선교지를 존중하는 선교, 그리고 해당 지역을 번영시키는 일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김찬호 교수는 "예수님께서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몸의 사건'으로, 일상의 긍정은 몸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 같다. 가나의 혼인잔치부터 구약에서와 다른 풍경들이 계속 펼쳐지는데, 예사롭게 볼 수 없다"며 "주어진 자리에서 삶을 긍정하면서, 이를 넘어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긴장이 오히려 일상을 깨어있게 한다. 삶 자체를 하나님의 질서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고재길 교수는 "복음서의 부자와 나사로 속의 부자처럼, 자신의 부만 계속 채우는 것이 번영신학의 본질 아니겠느냐"며 "볼프가 말하는 번영은 적은 것이지만 함께 나누면서 누리는 풍성함이 있는, 복음서의 오병이어 사건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