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가 자신의 저서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신학 없는 신앙은 일관성이 없고 진위를 가늠할 준거가 없어 그릇된 신앙 사조들에 붙들리기 쉽습니다. 특히 종교다원주의와 자유주의, 신비주의가 만연한 작금의 영적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명확한 교리를 전달하는 개혁주의 신앙이 너무도 귀한 역사적 유산임에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로부터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개혁신학포럼 주요 회원인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가 최근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을 펴냈다. 책은 개혁주의 기도론부터 성경론, 회개론, 은혜론, 구원론, 신앙론, 주권론, 신론, 전도론, 교회론 등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본지에도 매주 개혁신학에 입각한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칼럼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이 목사에게 책과 개혁신학 이야기를 청취했다.

-먼저 저술 동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 많이 출간됐지만, 교리적으로 너무 어렵고 딱딱합니다. 그래서 평신도들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서 쓰게 됐습니다.

'기도'에 대해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조직신학적 서술을 따르자면 신론부터 나와야 하지만, 성도들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교인들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가 기도 아니겠습니까. 교인들이 우선 관심을 갖고 있는 실제 문제들을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또 개혁주의 안에도 다양한 견해 차이가 있는데, 한국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오해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개혁주의 하면 율법주의 색채를 가진 것으로 봅니다. '유보적 칭의론'이 대표적이지요. 이러한 흐름에 맞서 개혁주의의 정체성을 밝혀내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믿음, 종교개혁적 신앙 원리에 충실하게 집필하고자 했습니다."

-은혜론과 구원론이 따로 있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성령론은 따로 없고, 전도론이 있네요.

"은혜론은 구원론과 나눌 수도,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은혜의 중심은 구원이지요.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의미에서 은혜론을 접근했습니다. 구원론은 하나님 주권적 입장에서 서술했습니다. 성령론은 그 자체로 상당히 방대해서, 다음 기회에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신론 속 한 부분에서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칼빈주의가 전도에 약하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믿음을 갖지만, 구원하실 때 복음을 통해 부르시기 때문에 전도 없이 구원 사역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과도한 칼빈주의자들(하이퍼칼비니즘)은 하나님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전도에 소홀한데,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 주권 아래 있지만, 반드시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여정을 보면 '부르심'이 있습니다. 소명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 음성을 듣고 반응하면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부르시는 음성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명'을, 듣고 응답하는 것이 '구원'인 셈이지요. 그러므로 부르심 없이 구원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실 때, 홀로 하시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주권 사상에 따르면, 결국 '내가' 전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전도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사람은 결국 구원을 받겠지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들을 수 없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직장에 가는 것도, 돈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적 사명을 갖고 하나님께서 보내셨따고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논리적으로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를 통해 계속해서 복음이 확장돼 나가는 것까지 함께해야 합니다. 구원이 사명과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밭에 물이 들어와도, 우리가 막아놓고 흘려보내지 않으면 결국 식물이 말라 죽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아담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다 연결돼 있으니까요. 가족 아닌 사람들도 다 하나님 계획 안에 있기에, '남남'이 아닙니다. 요나를 생각해 봅시다. 니느웨로 보내시는 하나님에게 불만을 품고 가지 않았더니, 물에 빠뜨리십니다. 전도란, 바울이 말한 것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는 것임을 요나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하나의 조건이 붙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해서, 우리가 밥도 먹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유기체적으로 움직여야 하지요. 하루종일 가만히 있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놓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 왜 죽게 하는가?'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칼럼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윤리적 행동을 강조하는 소위 '유보적 칭의론'을 자주 비판하시는데요.

"요즘 전화를 참 많이 받습니다. 이와 관련해 눌려 있는 성도들이 굉장히 많아요.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설교해 놓고, 조건을 댄다는 것입니다. 칼럼도 매주 비슷한 내용으로 흘러서 방향을 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제도 한 사람이 서울에서부터 제가 있는 인천까지 찾아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저희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마다 복음이 다르다'면서, 고민 끝에 칼럼을 읽고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책들이 많지만, 성도들이 읽기에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주제마다 쉽게 풀어서 썼습니다. 칼럼의 반응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경섭
▲이경섭 목사. ⓒ이대웅 기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칭의받은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것이 중생인데요, 하나님을 몰랐다가 알게 되니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덕적 결함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도덕성이란 이런 겁니다.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에서 도덕적 감화를 자라났다면, 예수님 안 믿어도 훌륭한 인격자이자 좋은 시민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들어온다고 A급 신자가 되는 건가요? 훌륭한 교인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폭행을 일삼는 부모 밑에서 자라 인격이 황폐해진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해서 당장 바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구습'이 남아있다 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러냐'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신앙적 열매로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김세윤 박사는 그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를 천박하게 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헬조선'이라 불릴 만큼 살기 어려운데, 이러한 환경에서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300년 가까이 기독교 전통이 있는 미국과는 이처럼 환경이 전혀 다른데, 미국과 한국을 어떻게 단적으로 비교합니까. 우리나라도 단점이 있지만, 미국처럼 한 자리에서 60명씩 총으로 쏴 죽이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비교하는 자체가 잘못됐다, 이런 점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성화 개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식인종들이 예수 믿고 변화돼서 사람 고기 먹지 않는 것만 해도 큰 성공 아니겠습니까? 일부다처제 문화권에서 한 명만 데리고 산다면, 많이 변화된 것입니다. 이처럼 도덕성을 구원받은 사람의 결정적인 증거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중생의 본질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과 3년을 함께 있었지만, 성질이 죽었습니까? 말고의 귀를 잘랐다고 돼 있는데, 일부러 귀를 자른 걸까요? 사람을 치려다 빗나가서 귀가 나간 것일 수 있습니다. 요한도 '우레의 아들'이라 불렸습니다. 본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이지요. 점차 조금씩 변화되는 것입니다."

-늘 강조하시는,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요.

"성경대로 믿는다는 대전제를 갖고,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전수해 준, 특히 종교개혁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조망하는 원리입니다. 칼빈주의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혁주의 목회는 '말씀 중심'입니다. '강해 설교'를 주로 하지만, 고집하진 않습니다. 형편에 따라 '제목 설교'도 합니다. 기본 골격은 하나님 주권과 은혜, 믿음이 중심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을 많이 깨닫도록 해서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성령충만을 부어 주십니다.

복음 설교를 통해 성령충만을 받게 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원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 개혁주의 목회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설교 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십자가의 대속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지겨워하지 않냐구요? 복음은 영원한 비밀이므로, 들을수록 새롭습니다. 세상의 말들은 반복하면 지겨울 수 있지만, 복음은 성령께서 현장에 오셔서 증거하시는 것이기에 들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것이 지겹다면, 아직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이 내 죄를 대속하셨다는 진리를 기본적인 유치원에서 가르쳐야 할 것으로 여기고, 더 어려운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복음을 떠나서 증거한 일이 없습니다. 복음에 무한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고, 복음만이 사람에게 능력을 주고, 복음만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복음만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한 복음의 능력을 알기에, 내용은 다소 달라도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설교가 귀결됩니다.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습니다. 성도들이 그 설교를 듣고 웁니다. 똑같은 설교 같지만, 들을 때마다 감동하고 감격하고 기뻐합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병폐가 무엇일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강단이 회복돼야 합니다. 여러 설교를 들어보면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탈한 설교를 듣고 있으면 '성도들이 저 말씀을 듣고 살아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 많은 교회'가 아니라 '성경대로 설교하는 교회'를 찾는 성도들도 늘고 있습니다. 성도들 수준이 높아져서, 이제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교회를 찾고 있는데,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설교는 참 힘든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지만, 바른 설교를 한다는 건 매우 힘듭니다. 그러려면 신학이 바로 서야 합니다. 신학과 더불어 성령의 기름부음이 충만히 임해야 합니다. 칼빈도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을 온전히 의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갈 때는 설교 원고를 들고 가지 않고, 전심으로 성령을 의지하고 설교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원고를 들고 올라갔지만, 온전히 성령을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성령을 의지한 설교란, 설명하기 어렵지만 '강단 현장에서 하나님의 간섭',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감하면서 설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비전이 있으신지요.

"하나님 말씀을 바로 증거해서 성도들에게 복음에 대한 확신을 심고 하나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교인들이 성숙을 이뤄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 외에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적 권면이나 율법적 위협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게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깨달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게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