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복음”

김신의 기자 입력 : 2017.05.30 17:38

[CCM 인터뷰] 옹기장이 백승남 교수를 만나다

한국 CCM은 성령운동과 전도운동의 영향으로 더 정형화된 찬양의 필요성을 느끼던 1970년대 중반 경 시작됐다. 미국 CCM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한국은 80~90년대에 걸쳐 주찬양, 최덕신, 손영진, 다윗과 요나단, 이정림, 박종호, 송정미, 옹기장이, 소리엘 등의 등장으로 ‘CCM 전성기’를 맞았다. 이에 본지는 당시 화려했던 역사의 주인공들을 만나, 근황을 듣고 미래를 전망하는 기획 인터뷰를 마련했다.

1987년 ‘옹기장이’를 설립한 백승남 교수를 최근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만났다. ‘영원히 찬양드리세’, ‘예수 닮기 원해’, ‘주의 나라와 영광 이곳에’, ‘오래 전’, ‘오 아름다워’, ‘그 이름의 승리’ 등 교회 성가대의 찬양에서 종종 듣게 되는 이 곡들이 바로 백승남 교수의 작품들이다.

백승남 교수를 말할 때 그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경영학을 공부해서 착한 장로”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체르니’는 쳐본 적도 없을뿐더러 악보도 못 볼 정도로 음악과 관계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주신 것…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옹기장이백승남
▲백승남 교수. ⓒ김신의 기자

18세 성탄절 새벽에 홀로 교회에 남아 기도하던 때를 회상한 백 교수는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악기들이 둘러싸인 곳에서 피아노를 치고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있는 그림’을 떠오르게 하셨다”며 음대에 합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음에도 “마음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작 대학시험 때까지 그가 음악을 공부한 시간은 고작 4개월 남짓.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계속 기도를 해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1년 동안 무려 천 번 이상 기도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고, 주님을 위해 이 음악을 하게 됐으니 책임져 달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음대 작곡과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도는 했지만 불안했던 그는 “시험 당일 믿음이고 뭐고 다 흔들렸다. 그냥 ‘붙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합격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원래 가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대학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도 “일단 합격하고 보자”는 생각에 들어가기 좀 더 쉬운 다른 대학을 선택했던 것이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원래 가려했던 대학이 입학 정원 1명을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만약 기도했던 대로 그가 그 대학의 시험을 치렀다면 그는 기도응답을 받을 수도 있었다. 백 교수는“소름이 돋았다. 두려웠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셨는데, 정작 내가 그 기도를 저버린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비로소 ‘옹기장이’를 창단했다. 1987년이었다. 옹기장이라는 이름은 역대상 4장 23절 ‘이 모든 사람은 옹기장이가 되어 수풀과 산울 가운데 거하는 자로서 거기서 왕과 함께 거하여 왕의 일을 하였더라’는 말씀에서 딴 것이다. 그리고 창단 10주년 행사 때, 마침내 학창시절 하나님께서 떠오르게 하셨던 그 이미지와 유사한 공연을 펼쳤다고 그는 감격해 했다.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소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라는 말씀처럼, 예나 지금이나 처음 정했던 방향과 첫사랑을 잃어버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백승남 교수는 “꿈이 이루어지면 사람이 무너질 수 있다. 명성과 영향력을 갖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것이 타락이다. 계속 주님께 묻고 가야하는데…”라며 말을 이었다.

“당시 음악적으로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됐지만, 사역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시작하던 세대였던 만큼 현장에서 실패를 경험하며 터득하고 깨달아야 하는 세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복음의 비밀을 잘 알지 못했다.”

때 마침 하나님은 그에게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9)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그는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했고, 1999년 제자훈련을 받으며 이를 깨달아 갔다.

“‘언젠가 주님이 옹기장이를 모른다고 하실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나 역시 죄인이라는 걸.”

백 교수는 “갈라디아서 3장 24절처럼 율법을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다. 3년간 성경만 봤다. 항상 말씀으로만 살았던 기간이었고 로마서 6장을 통해 참된 세례의 의미도 알게 됐다. 흔히 ‘예수님이 내 죄를 깨끗케 하셨다’에서 끝나는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처럼 ‘예수와 함께 죽었으니 그와 함께 살았도다’까지 가야한다. 부활이 중요하다. 그게 안 되니까 문제가 생긴다”며 “이걸 깨닫고부터 사역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했다.

백승남
▲백승남 교수. ⓒ김신의 기자

“주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과 돈”

백승남 교수는 처음 옹기장이를 시작할 때, 자신이 쓴 곡에 대한 저작권료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일을 했다고. 그 뿐 아니라 다른 단원들 역시 자비량으로 사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7년이 지난 후 끝내 돈 때문에 넘어진 적이 있다고 그는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면서 결국은 선교에 힘써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날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 “한때 옹기장이를 하면서 60만원 씩 세 번 돈을 빌려갔었다”며 “기도하던 중 ‘빌렸던 돈을 갚고 용서를 구하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당시 돈이 필요한 곳도 딱히 없었고, 주님께서 돈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도 주시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계속 돈을 주려고 하기에 나는 그 돈을 도로 그 손에 쥐어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왔으니 이미 용서를 받았습니다. 돈은 그냥 가져가세요. 그리고 제 마음까지 얻으셨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고 전했다.

백 교수는 “돌아보면 자비량으로 사역하던 기간 동안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수입이 생겼다. 주님은 계산하는 사람보다 답이 없는 사람을 챙기는 것 같다”며 “이걸 알고 나니 돈이 없어도 걱정이 하나도 안 됐다. 정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니까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필요한 만큼 딱 맞춰 주셨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전 평생 주님만 찬양하겠다고 한 사람이지만, 후배들 중에는 대중음악을 하려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세상으로 뛰어들려면 정말 뛰어난 영성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멋있는 가수들을 보다보면 ‘나도 저런 무대에 서고 싶다’거나 ‘유명해 지면 음반 판매가 되니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겠구나’ 이런 마음이 든다. 물론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주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에서 벗어난 것이 지금 CCM계의 쇠퇴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다.

“말씀과 진리, 성령의 거듭남으로”

백 교수는 음악만이 아니라 교육과 철학, 신학도 공부했다. 교수가 된 시기도 이런 것들을 공부하고 난 뒤였다. 백 교수는 “돌아보니 왜 이 길을 가게 하셨는지 알겠다. 음악과 복음이 함께 가는, 그리고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맞춘 신학을 공부했다. 그렇게 주님은 학문적으로도 정리해 주셨다. 지금은 제가 한 실수를 학생들은 겪지 않도록, 또 저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졸업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며 “하나님께서 이것을 위해 저를 보냈다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음악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복음”이라며 “학교에서 음악만 했던 친구들은 ‘너무 음악만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내가 잘 몰랐구나’ 하고 겸손해진다. 진리와 말씀이 연결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훈련이 그래서 필요하다”고 했다.

백 교수는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하셨던 것처럼,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야,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 특히 찬양사역자들은 영적으로 민감하기에, 반드시 그런 경험을 해야 한다. 죽지 않으면 계속 광야에서 돌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경험하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이 참된 세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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