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음악 대중음악 크로스오버
▲<복면가왕>에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열창하는 김연우와 빅콰이어(Big Choir). “보헤미안 랩소디”는 사탄주의(Satanism)를 반영한 노래로 의심받는 곡이다.
전편에서는 유명 CCM 아티스트 소향이 <복면가왕>을 통해 대중음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기분좋은 소식을 계기삼아, CCM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가 일상화될 수 있었던 문화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폈다.

CCM 아티스트들의 대중음악 활동 병행은 기독교음악의 인지도 상승을 통해 CCM의 진흥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분명 기독교인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CCM 아티스트들의 기독교적 정체성 희석이라는 난제도 내포하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지난 4월 초 <복면가왕>에서 유명가수 김연우와 가스펠 중창단 빅콰이어(Big Choir)가 함께 선보인 무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영국의 전설적 락밴드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함께 열창했다. 훌륭한 가창력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 노래의 가사가 기독교 신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한 젊은이가 총으로 사람을 죽인 뒤 사형을 기다린다. 그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죽음이 두려워 절규한다. 그러나 바알세붑(Beelzebub)과 마귀(devil)가 이 젊은이의 영혼을 삼키기 위해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가 전달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은 반기독교적 존재들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Bismillah! We will not let you go" (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너를 놓아주지 않겠어)
"mamma mia, let me go!" (맙소사, 나를 놓아줘요!)
"Beelzebub has the devil put aside for me, for me, for me"(바알세붑이 나를 위해 내 옆에 마귀를 데려다 놓았구나, 나를 위해, 나를 위해)

널리 알려진 일은 아니지만, 김연우도 작곡가 유희열과 함께 토이 객원가수로 활동하기 전에는 조환곤의 CCM 앨범 1집 <방황하는 친구에게>에 객원보컬로 참여해 '포기할 수 없어요', '선교지로 향하며' 등을 부른 경력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향도 이 앨범에 객원보컬로 참여했다는 점이다('반석 위에'로 인지도를 얻기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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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자켓부터 남다른 분위기를 표출하던 CCM 음반 “방황하는 친구에게”. 김학철(김연우)과 김소향(소향)이 이 앨범을 통해 정식으로 음반활동을 시작한다.
한때 기독교음악 활동에 몸담았던 이들, 혹은 현재 기독교음악의 흐름을 선도해가는 아티스트들이 대중음악계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면서, 기독교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대를 선보일 때마다 비판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CCM 아티스트들에 대한 빈약한 처우와 CCM 저작권에 대한 인식의 부재 때문에, 출중한 음악적 역량을 갖추고도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CCM 아티스트들이 기독교 신앙과 무관한, 혹은 기독교 신앙을 저해하기까지 하는 대중음악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현실적인 문제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다. 소명만을 강요하기에는 CCM 활동의 여건이 열악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초월과 일탈: CCM과 대중음악의 본질적 목적

CCM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현황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 둘의 근본적 차이에 대해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학문적 연구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을 전편에 언급한 바 있는데,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렇지만 CCM과 대중음악의 본격적인 크로스오버 역사가 근 50년에 이르다 보니, 이 현상에 대한 학문적 분석과 해명 시도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본 칼럼 내용과 관련하여 관심을 사로잡는 연구가 있어 간략하게 소개해보려 한다.

헤비메탈음악 전문 연구자인 저술가 칸-해리스(Keith Kahn-Harris)와 비교종교학자 모버그(Marcus Moberg)는 2012년 CCM과 대중음악의 관계에 대한 공동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의 목표는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본질적인 목적을 밝히고, 서로 간 상호작용이 각각의 목적 충족에 얼마나 기여하였는지, 혹은 각각의 목적 자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는지를 고찰해보는 것이다.

기독교음악 대중음악 크로스오버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 간 크로스오버에 대하여 유의미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는 연구자 칸-해리스(Keith Kahn-Harris)와 모버그(Marcus Moberg).
칸-해리스와 모버그는 기독교음악의 목적이 예배를 돕는 도구(instrumental)로서의 역할 또는 초월(transcendence) 경험의 한 방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인데 반해, 대중음악의 목적은 일탈(transgression) 경험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기독교음악이 예배의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 대해서는 추가 설명이 필요치 않겠지만, 초월과 일탈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개념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대중음악적 요소들을 예배 도구로 전용하는 기준과 사례에 대해서는 다음 편 칼럼에 주로 다룰 예정이며, 본편에서는 초월과 일탈 개념을 중심으로 크로스오버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초월이란 유한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능력, 지혜에 맞닿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유한자가 무한자를 감지하는 가운데 초월이라는 종교적 경험이 발생한다는 사상은 특별히 아브라함 계통 종교(Abrahamic religions;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와 고대 플라톤주의 계열 철학에서 자주 발견된다.

영원(eternity)과 시간(time), 불변(immutability)과 가변(mutability), 보편(universality)과 개별(particularity)의 접점으로 여겨지는 초월의 경험은 사람이 굴레처럼 지고 살아가는 실존적 일상성(everydayness)을 뛰어넘어, 유일하고 완전한 진리인 하나님(신)께 자기 존재를 의탁하는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초월의 경험은 하나님의 존재, 그분의 뜻과 섭리, 그리고 그로부터 수여된 소명을 일깨우는 역할을 맡는다. 이 초월의 순간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참신한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음악의 존재목적이다.

반면, 초월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성격을 보이는 일탈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탈은 종교학보다는 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의 개념으로 분류된다. 일탈도 초월과 마찬가지로 삶의 일상성으로부터 탈출하는 경험이다.

단 초월이 세속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뒤에 다가올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대하는 것이라면, 일탈은 이 탈출 뒤에 다가올 공허한 환상(phantom) 속의 무규정적 자유를 꿈꾼다. 일탈 속에서는 사회적 규율에 억눌린 온갖 욕망과 상상들이 활개친다. 그래서 일탈은 엄숙함과 경건함보다는 활력(vitality)과 에로티시즘(eroticism)에 맞닿아 있다.

여기에서 에로티시즘이란 단순히 성욕과 관련된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모든 적극적인 관능적 욕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대중음악은 우리의 일상 속에 정신적 일탈의 경험을 유발한다. 대중음악이 선사하는 감성적 선율과 직관적 가사 속에서 음악 청취자는 다양한 방식의 감정이입을 통한 탈자(脫自, ecstasy)를 경험한다.

그는 감미롭고 애잔한, 또는 비극적이고 처절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자아도취형 아티스트로 추앙받기도 하며, 추억 속에 미화된 인물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일탈 경험을 얼마나 강력하게 전달해 주는가에 따라 대중음악의 인기가 결정된다.

서구에서는 전통적으로 음악이 영성을 수행하는 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전편에 언급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일탈이란 초월을 향한 영성 수행의 세속화된 변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사상은 음악에 관련된 영화들에 자주 나타난다. <아마데우스(Amadeus, 1984)>, <시스터 액트(Sister Act, 1992)>, <원스(Once, 2007)>,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3)>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작 중에도 이런 정서가 이어지는 작품이 있다. 2004년 개봉한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이 작품들에는 음악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삶의 방향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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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일탈적 가능성을 강조한 영화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마데우스>(Amadeus), <시스터 액트>(Sister Act), <원스>(Once), <꽃피는 봄이 오면>, <비긴 어게인>(Begin Again).
그 가운데서도 비교적 최근 작품인 <비긴 어게인(2013)>은 일탈에 충실한 음악이 무의미하고 무기력하다 못해 자살 직전에 이른 삶을 구원하기까지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 영화에는 'Can a Song Save Your Life(노래 한 곡이 당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한때 크게 성공했지만 연속된 흥행가수 발굴 실패와 가정불화로 인해 자살 직전에 이른 음악 프로듀서 댄 멀리건(Dan Mulligan, Mark Ruffalo 분)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그레타(Gretta, Keira Knightley 분)를 만나면서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내용의 영화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는 댄이 자살을 마음먹고 있을 때 지하철 노방전도자가 그를 보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라고 권해주는 대목이다. 그 직후 댄은 한 라이브 바에서 그레타의 노래를 듣고 자살 생각을 철회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하나님께서 댄을 긍휼하게 여겨주셨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댄이 들은 그레타의 노래 'A Step You Can't Take Back(돌이킬 수 없는 한 걸음, 영화 속에서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행위를 가리킴)'의 가사는 자살 직전의 한 남성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속에 "Don't pray to God, cause He won't talk back(하나님께 기도하지는 마, 그는 응답하지 않으실 테니)"이라는 노랫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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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의 장면. 실의에 빠진 댄(Mark Ruffalo 분)은 지하철 노방전도자와 만난 직후, 전차에서 자살하려다가 마지막으로 들른 라이브 바에서 그레타(Keira Knightley 분)의 노래를 듣고 점차 삶의 희망을 되찾는다,
종합해 보면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우리 삶을 절망과 좌절로부터 구원해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하다. 이렇듯 이 작품은 음악이 제공하는 일탈의 소중함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음악이 초월을 위한 영성 수행의 길이라는 것, 구원에 가깝게 가는 길이라는 전통적인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그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하는 삶이 주는 기쁨과 활력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배경: 현대 CCM 탄생의 역사, 지저스 컬쳐(Jesus Culture) 운동

칸-해리스와 모버그의 연구는 서로 확연하게 다른 목적을 지닌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이 어떤 이유에서 상호작용과 융합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밝힌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기독교계에서 대중음악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 당시 기독교음악 사역자들은 히피(Hippie) 문화 발흥을 계기로 대단한 발전양상을 보이고 있던 대중음악에 대하여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기존의 찬송가 및 복음성가 양식으로는 문화적 조류에 발맞추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독교음악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보다 세련되고 발전된 형식으로 갱신해서 교회 청년들이 대중음악 대신 안전한 기독교음악을 선호하게 하는 것이 교회음악 사역자들 사이에 시대적 요청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히피문화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동을 계기로 개시된 1960-70년대 지저스 컬쳐(Jesus Culture)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교회음악 사역자들이나 가스펠 아티스트들은 1960년대를 풍미하던 대중음악 장르인 비트 음악(beat music)을 도입해 기독교음악의 변혁을 시도하였다. 비트 음악은 락음악(rock'n roll)과 R&B가 혼합된 장르로서, 주로 영국 락그룹인 비틀즈(Beatles)와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 등에 의해 대중화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비트 음악을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던 대중음악을 기독교음악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미국 기독교인들의 호응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래리 노먼(Larry Norman, 락/메탈), 안드레 크라우치(Andraé Crouch, R&B), 더 크루세이더스(The Crusaders, 비트)와 같은 걸출한 CCM 아티스트들도 등장했고, 당시 음반산업을 이끌던 주요 대형 레이블(ABC Records, Columbia Records, MCA Records)도 CCM 제작을 전담하는 서브레이블(sublabels)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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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부터 활약한 초기 CCM 아티스트들. 왼쪽부터 래리 노먼, 안드레 크라우치, 더 크루세이더스.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던 미국의 CCM은 1980년대 초반 재차 비약적 성장을 경험한다. 그간 주로 교회 내부에서 각광받던 CCM이 대중음악계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 당시 큰 활약을 했던 아티스트로는 애미 그랜트(Amy Lee Grant), 샌디 패티(Sandy Patti), 마이클 W. 스미스(Michael W. Smith) 등이 있다.
칸-해리스와 모버그는 이 당시 CCM의 성공이 이례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 시기를 제외하고 CCM이 대중음악계로부터 크게 인정받은 일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CCM은 대중음악을 수용하는 입장인 동시에 방어적인 입장에 처해 있었다.

과거처럼 기독교음악이 대중음악의 흐름을 선도해가는 모습은 1960년대 이후로 찾아보기 힘들다. 애미 그랜트나 샌디 패티의 경우도 대중음악계로부터 상업성을 인정받은 것 뿐이지, 그들로부터 대중음악계가 음악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 원인은 바로 CCM과 대중음악의 본질적 목적의 차이에 있었다. 교회 바깥의 대중은 '초월'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음악으로부터 초월보다 감성적 만족도가 높은 일탈을 추구한다. 갖은 사회적 제약과 고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일탈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일반 대중이 음악을 대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CCM이라 해도 일탈의 체험을 가능케 한다면 대중으로부터 각광받을 수도 있었다. 애미 그랜트나 샌디 패티, 마이클 W. 스미스의 출중한 가창력과 음악성, 그리고 비주얼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 대체재가 차고 넘치는 대중음악계에서 CCM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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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CCM의 괄목할만한 흥행을 주도했던 아티스트들. 음악성, 가창력, 비주얼 측면에서 대중음악 가수들을 능가하는 역량을 보였다. 왼쪽부터 애미 그랜트(Amy Grant), 샌디 패티(Sandi Patty), 마이클 스미스(Michael W. Smith).
CCM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일탈을 위한 음악이라는 목적이 기독교음악 안으로 침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칸-해리스와 모버그는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상호작용 및 융합을 통해 탄생한 CCM이 점차 초월의 체험보다 일탈의 경험을 수여하는 방향으로 발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물론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최소한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 측면으로만 보면 CCM이 대중음악보다는 안전한 음악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음악이 초월 경험의 촉매제로서 지니고 있는 본질적 목적을 상실하는 수준까지 변모한다면, 그때도 계속 기독교음악으로 볼 수 있을까? 만일 기독교음악이 일탈을 주로 추구하는 방향으로만 발전된다면, 과연 예배와 집회를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채택될 수 있을까?

◈초월주도형: 돈 모엔(Don Moen), 게이더 보컬 밴드(Gaither Vocal Band), 골드 시티(Gold City)

초월과 일탈의 체험을 수여하는 촉매의 역할을 기준으로 본다면, CCM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로는 일탈의 목적을 최대한 억제하고 초월의 체험을 유발하는 데 주력하는 CCM이다. 이런 방침에 따라 CCM을 작곡∙작사하는 사역자들은 음률, 가사, 연주, 가창 모두 예배 중 찬양에 적합한 음악을 제공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이들의 곡은 최대한 기독교음악의 전통적 음률과 정서를 살리고, 가사도 복음적 내용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보수적 성향의 기독교인들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Hosanna! Integrity Music 사(社) 부사장이자 저명한 찬양사역자인 돈 모엔(Don Moen) 목사는 이와 같은 방향의 CCM 활동을 주도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대표곡인 'Give Thanks'나 'God Will Make a Way'는 한국에서도 청년부 모임은 물론 성가대 찬양곡으로 자주 채택되는 곡들로, CCM에 대하여 다소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그가 인도하는 찬양집회는 콘서트 형식에 치중하기보다 여러 목회자들과의 협력 하에 다소 자유로운 예배 형식으로 인도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회에 경배와 찬양 예배형식을 보급한 것으로 알려진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인도자 하스데반 선교사)의 초기곡들 다수가 돈 모엔과 Hosanna! Integrity Music의 곡들을 번안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경배와 찬양 예배형식 정립에 돈 모엔 목사가 기여한 공로가 상당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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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돈 모엔(Don Moen), 게이더 보컬 밴드(Gaither Vocal Band), 골드 시티(Gold City).
반드시 집회 형식의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고 콘서트 형식을 선호하는 밴드도 다수 존재하는데, 이들은 기존 찬송가 및 복음성가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편곡과 뛰어난 가창력을 앞세워 기독교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게이더 보컬 밴드(Gaither Vocal Band)나 골드 시티(Gold City)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남부 바이블 벨트(Bible Belt) 지역 교회들을 순회하며 찬양집회나 콘서트를 연다.

◈초월-일탈 중도형: 'You Raise Me Up', 'Note to God'

둘째로는 초월과 일탈을 적절하게 융합하는 데 주력한 CCM이다. 이 부류의 CCM은 음률 면에서 전통적 복음성가 방식을 크게 벗어나려 하지는 않으나, 기독교 고유의 복음적 내용들을 가사에 직접 반영하지는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문화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서구의 일반 대중들에게 동시에 어필할 수 있는 CCM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CCM의 원형은 'Amaz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찬송은 흑인 노예상 출신의 영국 국교회 성직자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의 자전적 찬송시에 켈트족 민요 멜로디가 합쳐져 완성된 것이다. 이 찬송은 존 뉴턴의 모국 잉글랜드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위대한 전도자이자 설교자로 기억되는 찰스 피니(Charles G. Finny, 1792-1875)가 주도하던 제2차 대각성운동(1790-1840) 당시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그 후로 미국인들의 국민적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로 인식될 정도로 사랑받는 찬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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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Amazing Grace”의 작사가 존 뉴턴. 오른쪽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찰스턴 총격사건 희생자 중 1인인 핑크니 목사(Rev. Clementa C. Pinckney) 추도예배에서 “Amazing Grace”를 부르는 모습.
'Amazing Grace' 가사는 복음에 근거를 둔 구원의 체험과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후일 실존적인 해방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노래로 확대해석되기 시작했다. 발단은 이 찬송이 해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 부인의 대작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1852)>에 수록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복음의 내용을 '순진하게' 믿는 노예 톰을 주인이 조롱하자, 크게 상심한 상태에서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톰은 'Amazing Grace'를 부른다. 원래 이 찬송이 수록된 이유는 톰이 가진 순전한 기독교적 소망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이 노예해방운동과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의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사회적 이상을 표현하는 노래로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인식이 이어진 까닭에 이 찬송은 1950-60년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 등이 주도한 흑인인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에서도 자주 불려지곤 했다. 'grace'라는 단어에 정치적, 사회적 해방의 의미가 보다 확고하게 덧입혀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저명 저널리스트 스티브 터너(Steve Turner)에 의하면, 'Amazing Grace'는 1900년대 초반에는 포크(folk) 뮤지션들에 의해, 그리고 1950년대 이후로는 정치∙사회운동가들에 의해 자주 불리우고 또 개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로써 'Amazing Grace'는 초월을 지향하는 곡인 동시에 정치∙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래하는 사회적 일탈을 위한 곡으로도 널리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많은 CCM 곡들이 'Amazing Grace'의 선례를 따라 초월과 일탈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려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You Raise Me Up'과 'Note to God' 등을 들 수 있다. 두 곡 다 공통점은 원래 CCM이 아닌 대중음악으로 작사∙작곡되었다는 점이다.

'You Raise Me Up'의 경우 노르웨이 뉴에이지 그룹인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의 멤버 롤프 뢰블란(Rolf Løvland)이 아일랜드 민요 'Londonderry Air'를 편곡해서 작성한 멜로디에 아일랜드 작사가 브렌던 그레이엄(Brendan Graham)이 쓴 가사를 덧붙인 노래다. 아일랜드 가수 브라이언 케네디(Brian Kennedy)가 최초로 녹음했고,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의 노랫말은 소중한 사람(가족, 연인, 친구, 멘토)을 칭송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의존과 찬양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아일랜드 전통 켈트민요 특유의 음률 때문에 CCM 가수들이 찬양으로 부르면서 기독교음악인지 대중음악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든 노래가 되었다.

'Note to God' 역시 원래는 기독교음악이 아니라 대중음악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미국 R&B 가수인 조조(JoJo)가 부른 곡인데 미국 기독교인들은 CCM으로 분류하고, 일반 대중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인식하고 있다.

이 부류의 CCM 곡들은 대중음악 가수들의 앨범에 자주 등장하며, 가사에 명확한 기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독교음악 대중음악 크로스오버
▲왼쪽은 “You Raise Me Up”. 국내에서는 웨스트라이프(Westlife)가 부른 버전이 유명하다. 오른쪽은 “Note to God”. 원곡가수인 JoJo보다 R&B가수 채리스(Charice)가 부른 버전이 더 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일탈주도형: 신디 모건(Cindy Morgan), 제레미 캠프(Jeremy Camp), 케리 조브(Kari Jobe), 텐스 애비뉴 노스(Tenth Avenue North)

마지막으로 기독교음악 본연의 목적인 초월은 별반 고려하지 않는 음률에 기독교적 가사를 담은 CCM 곡도 존재한다. 댄스, R&B, 힙합, 그리고 하드 락(Hard Rock) 형식을 띤 CCM 곡들 대부분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곡들은 가사를 제외하면 사실 대중음악 곡들과 구분이 안될 만큼 전통적인 찬송이나 복음성가의 음률과 정서를 무시하고 최신 대중음악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

신디 모건(Cindy Morgan)이나 제레미 캠프(Jeremy Camp), 케리 조브(Kari Jobe), 텐스 애비뉴 노스(Tenth Avenue North) 등이 이 부류의 CCM 아티스트에 속한다.

음악과 찬송에 있어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상당한 부담감을 주는 음악활동을 전개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음악 대중음악 크로스오버
▲가장 대중음악에 가까운 CCM 곡들을 부르는 아티스트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디 모건(Cindy Morgan), 제레미 캠프(Jeremy Camp), 텐스 애비뉴 노스(Tenth Avenue North), 케리 조브(Kari Jobe).
이들은 일탈을 추구하는 음률에 초월을 추구하는 가사를 덧입히는 역설적인 조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음률이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를 압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과연 온전한 기독교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때로 가사마저 기독교적 메시지를 확연하게 전달하지 않고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막연하게 신(God)을 찾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에는 그 정체가 더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많은 경우 CCM 아티스트들이 대중음악계로 진출하는 상황은 두 번째 부류와 세 번째 부류, 즉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월보다는 일탈을 추구하는 CCM에 몰입하는 아티스트들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 한국에는 앞서 언급한 김연우, 박정현, 소향 외에도 싱어송라이터 김현철, 하림, 개그우먼과 가수를 겸업하는 신보라 등이 이런 경로를 따르고 있다.

이들의 대중음악 활동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아직 음반산업이 카세트 테이프와 CD 중심으로 운영되던 때라서, CCM 앨범이라 하더라도 준수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러나 음반산업이 MP3와 스트리밍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산업 전반이 위축되었는데 여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복음성가와 CCM 아티스트들이다.

최근 CCM 앨범들은 단독앨범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 싱글이나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발매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앨범제작에 투자를 유치하기 쉽지 않은 속사정이 관여되어 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사정과는 무관하게 아쉽게 여겨지는 점도 있다. 대중의 인식 속에 대중음악 가수로 이미지가 고정된 CCM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찬양사역이나 CCM 활동에 전념하지 않거나 이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음악 아티스트들이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CCM 아티스트들을 잃어버리는 손실이 동반되는 것이다.
 

기독교음악 대중음악 크로스오버
▲CCM 아티스트로 경력을 시작해서 정상급 대중음악 아티스트로 변신한 가수들. 왼쪽부터 김연우, 박정현, 소향. 대중음악 활동 후로는 복음성가나 CCM 활동에 주력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아쉬운 점은 이뿐 아니다. CCM 아티스트들이 확보하고 있는 기독교음악 고유의 색채와 모티프들이 대중음악에 이식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런 요소들이 전적으로 일탈을 추구할 목적으로 전유되기 때문에 원래의 기독교적 의미는 상실한 채 패러디의 재료로만 취급된다는 점이다.

가창에만 전념하는 아티스트의 경우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CCM 싱어송라이터의 경우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대중음악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독교적 모티프들이 변용되는 사례들은 미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미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흔한 일이 되었다.

기독교음악으로 가수 경력을 시작한 김연우나 박정현, 소향과 같은 실력있는 아티스트들이 기독교음악의 목적 및 정서와는 동떨어진 음악활동에 집중하는 상황을 목격할 때마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의 복잡한 심정을 느끼게 된다. 소향이 <나는 가수다> 경연에서 불렀던 '인연(이선희 원곡)'만 해도 업(業)이나 환생과 같은 불교사상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노래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우려가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소향이라는 신자 개인의 신앙과는 무관하게, CCM 아티스트로서 대중에게 비기독교적 혹은 반기독교적인 노래로 다가가는 모습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배적 종교관인 종교다원주의를 옹호하는 모양새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우려가 단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기독교음악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미국 CCM 아티스트들의 선례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에서 기독교음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가 낳은 실제 부작용 사례들을 살펴보고, 한국 기독교계가 이 둘의 크로스오버에 대해 어떤 기준을 정립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지 고민해보려 한다. 복음적인 신앙을 표현하면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기독교음악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안들을 깊게 성찰해보아야 할 것인가? <계속>

기독교음악 대중음악 크로스오버
▲<나는 가수다>에서 이선희의 노래 “인연”을 열창하는 소향. “인연”은 불교의 업과 윤회사상을 절절하게 반영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의미로든 자기 삶에 연관된 모든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재료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격식 없이 조합하여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브리콜라주라고 한다. 이 기법은 오늘날 광고나 뮤직비디오, 조형예술, 팝아트(pop art) 등에 자주 동원되며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활용된다.

오늘날의 영화는 삶의 모든 관심사들을 매혹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안에는 기독교인들이 환영할 만한 요소와 불편해할 만한 요소들이 정교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본 칼럼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영화들 속에 뒤섞여있는 아이디어들을 헤아려 보고, 이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