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홍성강좌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19세기는 전 시대 유행하던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가 점차 쇠퇴했지만, 세속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종교(기독교)'가 사람들 삶의 중심에서 더 많이 멀어졌다고 보는 시기이다. 25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열린 2017 홍성강좌 '서양 근대교회사: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 8번째 시간에는 '세속화, 그리스도교, 학문(과학, 역사)'이라는 주제로 이에 대해 살폈다.

윤영휘 박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우리는 세속화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많이 하고 있다"며 "특히 세속화를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세속화를 '현 서구 문명의 주요 특징'으로 보고 '세계의 합리화, 관료화 개념의 판단 기초가 된다고 봤고,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근대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적·조직적 특징으로 가는 과정'으로 파악했다. 최근 사회학의 '영국적 전통(British tradition)'은 북미·유럽의 종교적 쇠퇴가 선진 산업사회에서 종교의 비중이 줄어드는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윤 박사는 이에 대해 "이러한 관점들은 사회·경제적 변화의 일반 이론 안에서 역사가들이 종교 기구와 제도가 쇠퇴하는 특징들을 설명하는 틀을 만들었다는 장점이 있으나, 최근 이러한 세속화 이론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비판은 종교를 '초자연적 범주와 관련된 일련의 믿음'이라는 세속화 이론의 전제를 거부하고 신성한 것과 관련된 일련의 믿음과 관습의 통일체계라고 주장하는 '변형(transformation) 이론', 근대 사회에서의 교회 입지 축소가 신앙의 중요성이 쇠퇴했다는 증거가 아니며 이것이 교회 기관 안에서 새로 발전하던 종교단체나 기관으로 옮겨졌을 뿐이라는 '재배치(relocation) 이론', 세속화를 종교 조직과 세속 권력 간 조정의 산물로 보는 '자기 제한 모델(self-restricting model of secularization)' 등이 있다.

그는 "이러한 비판들은 산업화와 도시화, 합리화 등이 거스를 수 없는 보편적 세속화 현상, 즉 종교의 쇠퇴를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결과적으로 세속화는 불균등한(uneven) 현상이었다. 실제로 이 시대 세속화의 정도는 지역적으로나 계층, 세대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박사는 "19세기 중반까지도 많은 기독교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종교와 과학 혹은 역사를 조화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세속화가 곧바로 반기독교로 연결되진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세속화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종교와 학문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대되고 다양화됐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과학은 진화주의, 기독교는 근본주의'처럼 양 극단의 입장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중간 지점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고 반응도 다양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창세기 1장과 관련된 접근이다. 그는 "이 시대에 지질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해 창조 연대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존 브룩과 데이비드 리빙스턴, 제임스 무어처럼 양자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인식을 가진 학자들이 이미 존재했다"며 "사실 우주에 '설계자'가 있다는 인식은 기독교 이전, 고대 그리스부터 서양 사상에 면면히 흐르던 우주관이고, 진화론자들도 당시 설계 이론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경과 과학의 조화를 위해,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에서 '하루(day)'를 지질학상 '1연대(age)'로 보는 '1일-1연대 해석',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두 구절의 사이(틈)에 모든 지질학적 연대가 들어있다는 '간극 해석', '6일'은 연속된 시기가 아니라 창조활동에 있어 서로 구분되는 중요한 순간들만 담은 것이라는 '관념적 해석' 등이 제기됐다.

윤영휘 박사는 "어찌 됐든 이 시기부터 성경을 기준으로 과학을 해석하는 흐름은 약해지고, 문자주의적 해석 대신 고등비평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며 "지질학이나 인류학, 고고학과 고생물학 등 성경의 설명이 옳은지 설명하기 위해 비신학적 탐구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역사학적으로도 '신의 섭리, 기적, 의도' 같은 용어들이 제거됐다.

윤 박사는 "이 시기에 창조에 있어 '설계(design)'적 접근이 사라지는데 이는 진화론 때문이 아니라, 어떤 기관(organ)의 형태가 효용을 보여준다는 '기능주의(functionalism)'과 그 과학적 효용을 상실한 것이 더 중요한 이유"라며 "이는 결국 이 세계의 '목적'이 사라지면서 유물론 발달의 디딤돌이 됐고,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려 다윈 이후 인간의 독특성을 생물학적으로 밝혀내려는 시도들도 포기하게 됐다"고 했다.

2017 홍성강좌
▲참석자들이 질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신학은 여기에 어떻게 '응전'했을까. 그는 "이 시기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은 자연세계의 해석에서 계시를 거의 제거해 버렸지만, 보수적 신학 전통에서는 여전히 계시가 중요했다"며 "이 시기 고대 문서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성서고고학이 발달하게 됐고 성경을 '믿음'이 아닌 '비평'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윤 박사는 "특히 모세오경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이 많아지고, 성경이 당대가 아닌 후대에 여러 문서들을 골라 완성됐다는 '편집설'이 널리 퍼졌다"며 "그러나 그 시대 문서들은 대부분 그런 과정을 거쳤으므로 편집 과정 자체가 진본성과 역사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성경 자체가 매우 오래된 고대 문서인데, 성경은 믿지 못한 채 같은 시기의 문서들로 성경의 역사성을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어찌 됐건 이러한 일련의 학문들이 성경을 바라보는 역사적 시각이 크게 흔들린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러나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결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고, 상당수 현대 과학자들도 '과학은 무신론을 지지하지도 않고, 유신론을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며 "성경과 과학의 일치점을 찾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선적이고 교조적인 태도를 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성경도 '책'이다. 좋은 '책'은 주제와 관계 없는 군더더기를 넣지 않는 법으로, 성경은 과감하게 주제와 관계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기에 성경에서 모든 과학적 의구심을 해소하려 해선 안 된다"며 "그렇다 해서 성경이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은 우주의 탄생에 대해 '주제'와 관련된 범위 안에서 '필요한 만큼' 설명하고 있다. 즉, 우리가 창조주를 알고 믿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영휘 박사는 "결론적으로 19세기 이후 이뤄진 세속화는 근대 서구 문명의 주 특징으로 여겨지는데, 근대 사회는 사회 기구에 새로운 도덕적 의무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신화적 요소의 자리를 줄여왔다"며 "학문의 세계에서도 기독교의 '독점적' 위치가 깨졌고, 계시와 학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화됐다"고 정리했다.

2017 홍성강좌는 연휴와 대통령 선거 관계로 5월 2일과 9일 강의는 휴강하고, 16일 다시 강의가 이어진다. 이날은 9강 '근대 그리스도인의 삶: 교육, 젠더, 대중운동'을 주제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