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목사
▲이상주 목사(하나로교회)
오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를 생각하겠습니다.

○이 땅의 천국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상

지금까지 팔복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오늘 마지막 여덟 번째 복입니다. 이 팔복을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고 시작했죠? 마칠 때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고 끝을 내십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고 시작하여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고 마칩니다. 시작과 끝이 "천국"인데, 그 안에 있는 말씀이 다 천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요? 천국 안에서 살아가는 교회원에게 이렇게 저렇게 일어나는 일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국'이 무엇이죠? 죽으면 가는 하늘나라뿐 아니라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란 이 땅에 현재 맛보는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 믿고 잘되고 성공하고 하는 쪽으로 가면 안 되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연합된 교회에 속하면 천국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이 땅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이지요? 하나님의 통치를 가장 현저하게 받는 구현체, 기관이 교회이지요? 이 세상에서는 교회가 주님의 다스림을 가장 극명하게 받아가는 기관인데, 이런 교회가 오늘날 다 허물어놓고 담벼락이 없이 시작하니까 참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가 천국의 관문 역할을 다하지 못하니까 '교회'라는 말 자체를 입에 오르내리기가 참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우리의 잘못인데, 이렇게 사람들이 천국의 관문인 교회의 담을 허물어놓고 이루는 교회가 아닌 참 교회가 주님의 다스림을 극명하게 받아가는 기관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을 살아가는, 참 교회를 형성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이 성원들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 '애통한 자'로 '온유한 자'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가면서 살아가는 교회에,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고 '애통하는 것'이고 '온유한 것'이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팔복은 전부 이 땅에서 천국 생활을 하는 교회원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영광의 나라, 저 천상의 나라에 들어가면 '심령이 가난한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등이 사라집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하기도 하고 애통하기도 하고 온유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란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교회원이 실망하거나 낙담할 수 있는 면을 예수님께서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심령이 가난할 텐데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애통한 일이 있을 텐데 낙심치 말고 도리어 복 받은 교회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참 교회원에게 애통이 나오고 온유가 나오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나오는데, 그때 실망치 말고 뚫고 나가라고 주님이 팔복을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하나 알 것은 이 여덟 가지 복을 구원의 서정처럼 순차적으로 죽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덟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고 동시에 겪는 내용입니다. 참 교회를 이루고 가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다스리는 그 다스림을 받으면서 살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하기도 하고, 또한 애통하기도 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도 합니다. 동시에 겪는 내용입니다.

○의란?

오늘 마지막 복인데, 10절을 다 같이 읽을까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 구절은 팔복의 결론입니다. 팔복 전체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여덟 가지 복이 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라고 하는데, 여기 "의"란 무엇입니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고 하는데, 의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 구절을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앞뒤 구절을 잘 살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 바로 뒤 구절 11절을 보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하시죠. 여기 "나를 인하여" 하는데, "나"란 누구를 말하지요? 예수님 자신이지요? 그럼 10절의 "의"란 여기 11절에 근거하면 예수님 자신이죠?

○예수님을 따르면 핍박은 필연

'예수님 자신 때문에' '핍박을 받은 자'를 말하지요? '예수님께서 성취하고 완료한 의 때문에 핍박 받은 자'입니다. 좀 풀어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났죠?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셨으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심판하셨으니까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죠? 공의가 드러났습니다. 또 그 죽음에 근거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으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같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와 사랑 둘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핍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의 의와 사랑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필연적으로 핍박을 당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잘되고 성공한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핍박이 온다고 합니다.

○예수 때문에 오는 칭송?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면 필연 핍박이 온다고 하셨을까요? 심지어 핍박이 복이라고까지 하죠? 핍박이 무슨 복입니까? 핍박이 무엇이죠? '심히 억압하고 괴롭히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심히 억압당하고 괴롭힘 당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지 않습니까? 잘못 살아서 오는 핍박이라면 당연하다, 할 텐데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대로만 살고자 하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데 핍박이 온다니 너무 부당하지 않습니까? 잘 먹고 잘산다고 해도 다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는데, 주님을 따르면 핍박이 온다고 하니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실제로 주님을 믿고 따르면 핍박이 옵니까? 여러분 어떻든가요? 말씀대로 살고자하고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면 어떤 것이 오던가요? 한 예를 들까요? 우리가 잘 아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신학자이면서 의사로서 저 아프리카에 들어가서 인류애를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의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은 사람입니까?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칭찬을 받고 지지를 받고 찬사를 받은 사람이죠? 예수님을 본받아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칭송합니다. 불신자까지도 '아, 그 사람 참 대단하다'하고 칭송합니다. 그래서 노벨평화상까지 주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이 다 그를 높이고 칭송합니다. 그런 사람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틀린 것 아닙니까?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교황이 다녀갔는데 '평화'라는 몇 마디 말에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칭송합니다. 우리나라 뿐 이겠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칭송하는데, 그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게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역대 교황 중에 한 사람도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는 사람 못 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기를 좇아서 살면 핍박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습니다.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의 명령대로 실천하고 살면, 순종하고 살면 세상으로부터 박해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살았는데 세상으로부터 박해는커녕 찬사가 옵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까 우리가 믿어야 하는데요, 쉽게 잘 납득이 가지 않죠?

누가복음 6:26에서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하시면서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과거에 이스라엘을 떠올리시면서 하신 말씀이죠? 이스라엘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아합 왕 당시 왕실 선지자들은 아합 왕과 왕후 이세벨의 귀에 즐거운 거짓 예언을 일삼았지요? 우리가 잘 알죠? 그 대가로 부를 누리면서 아낌없이 칭찬을 들었습니다(왕상 18:19). 이렇게 아낌없는 칭찬을 들은 사람이 누굽니까?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달콤한 예언으로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고 우상 숭배에 빠뜨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빠져드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활기를 치고 그들에게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백성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함께 거짓 위로 가운데 깊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는 그들의 실상을 질타하며 그들의 득세를 애통해 했죠? 예레미야 5:31에 보면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예레미야 선지자가 안타까워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는 거짓 선지자와 또 그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즐거움을 가지고 쫓아가는 제사장과 그것을 또 좋아하는 지지를 보내는 백성과 함께 한꺼번에 싸잡아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미 어둠에 깊이 빠져버린 회중은 자기를 지적하는 참 선지자를 좋아할 까닭이 없지요? 오히려 한결같이 반대하고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너 그렇게 하면 안되' 하니까 좋아할 까닭이 없죠? 이렇게 타락한 이스라엘 시대에 참 선지자는 하나같이 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전제하고 '자신을 따르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팔복을 말씀하신 다음에 7장에 넘어가서 15절에도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하고 경계하십니다. 양의 옷을 입고 어떻게 보통 나타납니까? '그래 참 잘한다, 잘한다, 우리 친구하자, 사랑한다, 그래 잘하고 있어, 그렇게 하면 돼' 장밋빛을 선사해주죠? 절대 죄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나쁜 것 보지 않습니다. 덮고 가려고 합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합니다. 자,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인지 좀 알 수가 있겠죠? 예수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찬사를 받는 이유는 그가 거짓 선지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앞에서 말한 슈바이처는 예수님을 바로 믿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꽤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왜 일까요? 무엇 때문에 예수 이름 때문에 칭송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의 의가 아닌 자기의 의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선행을 높이 드러내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가 드러나면 사람이 칭송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교황이 칭송을 받는 이유도 그 사람의 의 때문이죠? 인간의 의가 드러나면 핍박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가 드러나는 데서만 핍박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합니까? 인간의 의를 좇습니다. 주님의 의는 오히려 핍박합니다. 참 신자는 이런데 현혹되지 않죠?

물론 이 세상은 인간의 의와 선행까지도 없으면 안 되죠. 인간의 의 마저, 인간의 선행마저도 없으면 이 세상은 존재가 어렵죠? 하나님의 진노만 가득하니까 멸망 받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참 기독교는 본래 이런 인간의 의, 자기 의를 나타내어 칭송을 받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곳에는 불신자들로부터 핍박이 온다고 가르치지 칭송이 따른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왜 주님을 따르는데 핍박이 오는가?

예수님을 따르는데 왜 핍박이 오죠? 예수님을 따르는데 왜 핍박이 옵니까? 이게 우리 현실과 맞지 않잖아요? 우리 육체의 소욕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하고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고 사는데 어려움이 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니까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당하게 하면 편하거든요. 무엇 때문에 주님의 의를 드러낸 예수님을 좇는데 핍박이 옵니까? 첫째,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의와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맞서서 살아가는 참 교회는 분명히 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이 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적으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나가면 그들이 환영하지 않지요?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온순하게 따르고 하면 지지할지 몰라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추구하면 반대하고 핍박합니다. 인간 자기 의를 드러내고 살지 아니하는 한 칭송이 올 수가 없습니다. 칭송이 오는 것이 도리어 의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의가 난무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를 핍박합니다. 도외 시켜버립니다. 타락한 교회 시대에는 항상 의인이 핍박을 받았고, 주님의 의를 추구하는 자는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다 밝혀진 일이죠? 오전에 공부 중에도 사울 왕이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 전체를 바치는 다윗을 공격하고 죽이려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교회 안에 불신자들입니다. 교회 안으로 바깥으로 안팎에서 참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지체를 박해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핍박당하는 이유가 무엇보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골로새서 1:24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말합니다. "(24)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연합 관계에서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을 몸의 각 지체가 필연적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지체인 우리도 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계하여 한곳을 찾아보지요. 요한복음 15장입니다. 요한복음 15:18부터 보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우리를 위로하는 말씀인데요, '너희를 미워하면 나를 미워한 줄 알고 좌절치 말라'는 뜻입니다.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핍박이 오는 것은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속했음을 핍박당하는 것으로 증명이 되지요? "(20)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핍박합니다. 여기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예수님의 말씀을 지켰다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듣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안 지켰다는 뜻이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끼리는 한 몸이기 때문에 박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자들은 교회 안팎에서 이 참 교회를 핍박합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뭇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하고 가르치는 데는 한 곳도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잘 서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세상은 너희를 칭찬할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하여 세상의 칭찬을 받아내라!' 하고 가르친 데는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핍박한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 핍박은 교회가 욕먹을 짓을 해서 욕먹는 것을 말하는 것과는 다르죠? 욕먹을 짓을 하여 욕먹는 것은 깊이 회개할 일이죠? 오늘 교회가 얼마나 욕먹을 짓을 많이 합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서가는 것은 고사하고 일반 도덕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자, 목사가 많습니다. 그 원인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빈약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하니까 인간의 말이 판을 치죠? 말씀이 희미하면 사람들의 말, 생각이 웅성웅성해서 교회 안에서도 그렇게 됩니다. 말씀이 풍성하면 사람의 말과 사람의 생각이 힘을 쓰지 못하는데 말씀을 받고 있는 강단부터 욕먹게 생겼습니다. 무슨 성경을 인용하여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을 부추기고 '잘된다, 잘된다, 행복할 것이다 행복하다, 하나님의 사랑, 사랑'하면서 성공 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부추기는 이런 설교를 하니까 교인이 욕심을 더하죠?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을 하고 추구하니까 믿지 아니하는 사람보다 더 욕심이 많습니다. 욕먹을 수밖에 없죠? 이런 일은 회개할 일이죠?

또 자기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도 회개할 일입니다. 교회가 죄를 지으면 주님께서 세상 막대기로 치지요? 구약시대에 교회가 정신 차리지 않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니까 바벨론을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내리치셨죠? 이런 것 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핍박은, 예수님을 굳게 믿고 말씀을 좇아서 선행하는 교회나 성도는 이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살고 순종하는 교회는 핍박이 올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예수 잘 믿어서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자!' 하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나가는 것을 보는 자들이 칭송하는 것은 딱 한 부류입니다. 택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불택자들은 분명히 박해를 하지 지지하고 한편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디모데후서 3:12. 여기 경건이란 예수님의 의만 높이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만 자랑하고 그분의 의만 높이고 살 때 이 세상은 필연 핍박합니다. 경건하게 살면 살수록 세상의 핍박은 심해진답니다. 우리의 생각을 좀 교정할 필요가 있지요? 우리가 보통 '주님의 말씀대로 잘 살면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기 쉽죠?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조심, 조심 살면서 착하게 좋게 아름답게 살아서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겠다', 하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복음 한번 못 전해보고 생을 마쳐요. 오늘 교회가 그렇게 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교회가 교회다운 면모를 잘 드러내어서 '아 저런 교회라면 나도 가고싶다' 하고 평가를 받으려는 교회가 꽤 많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지 않고 아주 칭송을 받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하는 교회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게 가는 교회가 옳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개인도 아주 착하게 살아서 세인들로부터 '아, 교회에 다니는 저 사람 참 착하다 온순하다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게 옳은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10절은 삭제해야 합니다. 그렇죠? 오늘날 '교회의 참 모습을 잃었다!' 하고 누구나 말하고 비판하는데, 자칫하면 이런 여론에 편승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아주 건강한 교회를 만들자!' 하고, 힘을 써 나갈 수 있습니다. '교회의 참 모습을 잃었다, 아 그러니 우리는 그러지 말자'하고 반동으로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지 교회가 이 사회에 물질을 환원하고 기부도 하고 복리를 잘 추구해서 칭찬을 듣고자 하고, 그래서 '야 저 교회가고 싶다' 그렇게 모여드는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제 친구 교회도, 아주 많이 모이고 또 모이고 또 모이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답니다. 거기에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미국 유학도 보내주고 그렇게 한답니다. 아주 비전을 심어주고 꿈을 심어주고 그러니 젊은이들이 많이 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별로에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구절은 삭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핍박을 받는다고 하신 말씀의 뜻은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대로 추구하면 세상이 손가락질 하고 핍박할 것이라는 말뜻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온 세상이 칭찬해주는 교회를 추구하고 아름답게 꾸며나가자 하고 교회를 구축하려 한다면 가능한 일입니까?

○인내할 필요가 있음

우리가 생각할 점이 무엇일까요? 핍박이 당연한 것이고 필연적인 것이라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세상으로부터 칭송 받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핍박이 올 때 '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당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를 돌아보며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한곳을 찾아보죠. 마태복음 10장입니다. 마태복음 10:22~23입니다. 다같이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나중까지 견디어라' 하고 권하죠? 미움을 받을 때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합니다. 핍박이 오면 맞상대하라, 하지 않죠? 피하라고 합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견디고 피하라 하죠? 핍박이 올 때 피하거나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지요? 교인이라고 하면서 한 마디도 안 지려고 하면 안 되죠? 근데 이게 잘 안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잘 되어야 할 텐데 한편으로는 잘 안됩니다. 왜 그런가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속속들이 옳고 그른 것들을 다 분별하고 잘 아니까 내 육신적으로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내하고 피하라'고 합니다. 불신자들을 맞상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죠?

○핍박인데 왜 복이라고 하셨는가?

여기 예수님께서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하십니다. 핍박을 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핍박이 복인가요? 오늘날 이게 참 맞지 않아요. 교회 출석을 하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나, 안 해!' 하잖아요. 핍박이 복인가요? 복지정책이 잘되어 있고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록 그렇습니다. 우리 핍박 안당해도 되잖아요? 먹을 것, 입을 것 충분하고 평화로운데 굳이 핍박당하면서 우리 예수님을 믿을 까닭이 없잖아요? 교회 역사에서 그랬습니다. 잘 먹고 잘 살 때는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서까지 예수 믿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느슨해져서 점 점 점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어려울 때 오히려 신앙을 지키고 가는 것을 교회 역사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한 곳을 찾아보지요. 베드로전서 4장입니다. 베드로전서 4:12부터 보죠.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여기 "불"(퓌로세이, purw,sei)은 금속을 얻기 위하여 제련하는 불을 말합니다. 그만큼 교회가 시련이 뜨겁다는 뜻인데, 그런 일을 당할지라도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고 하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세상으로 부터 당하는 교회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에 즐겁게 참여할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당한다는 것은 교회가 참 구원의 공동체라는 것을 확증하는 거지요? 고난이 없으면 도리어 의문입니다. 경건하게 살면 살수록 핍박이 필연이라고 하는데, 따라서 교회가 욕을 받으면 '아, 참 주의 공동체이다!' 하고 즐거워할 수 있죠?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복이죠? 그래서 14절에 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참 신자라는 거지요?

이것 때문에 초기 교회가 설 때부터 참 공동체는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마다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5:41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고 핍박 받을 때 마다 기뻐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 이단으로 십자가에 못 박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이단자 그리스도를 좇는 단체가 섰다고 극심한 핍박을 가했습니다. 교회가 그런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것이기에 기뻐했습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교회의 역사에서 줄 곳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은 참 교회는 다 즐거워했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으면 하나님께 기도해야죠? 하나님께 기도해서 말씀을 깨달아야 하고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굳세게 되어야 합니다. 온상에서 이렇게 그렇게 자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 교육할 때도 좀 굳게 교육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핍박인데 왜 복이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가 핍박당할 때 예수님 자신이 함께 핍박당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이기 때문이죠?(엡 1:23) 실제로 그런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 사울일 때, 유대교에 있을 때 교회를 얼마나 심하게 핍박했습니까? 교회원들을 잡아끌고 가서 사형에 넘겨주는 악한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런 사울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4입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그 자체가 자신을 핍박하는 것으로 알고 '너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습니다. 그를 돌이켜 주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지요? 바울 사도가 되게 하셨죠. 이것을 보면 우리가 주님을 따르면서 오는 핍박이 올 때 좌절할 것이 아니고 '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존재이구나!' 하는 것을 알고 기뻐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 함께 핍박당하신다는 것을 알고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신원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참 교회는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한다고 약속해 주셨지 않습니까?(마 28:20) 이렇게 참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잘 모르고 핍박하지만 우리는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줄 알고 낙담할 하등의 이유가 없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지요. 그 핍박을 뚫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야하죠?

○천국이 저희 것이라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교회가 누리는 최고의 복인 '천국'이 이들의 것입니다. '천국'은 앞에서 말한 대로 성도들이 미래에 들어갈 내세천국뿐만 아니라 현재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현세천국을 가리킵니다. 현세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로 교회에 이루어지는 복락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집니다. 곧 현세천국의 특징은 로마서 14:17에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으로 불러 모으는 교회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핍박이 올 때 교회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손해가 되고 당장 핍박이 오니까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실지는 천국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각인들에게 천국의 의를 주시고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사회, 교회의 모습입니다(갈 5:22~23). 핍박을 당하는 참 교회에서 이런 천국을 맛봅니다. 장차는 저 천국 영광의 나라에 가서 맞을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 땅 교회라는 사회에서 다 체득합니다. 이것이 핍박을 당하는 자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데서 오는 핍박은 이렇게 천국입니다. 여기에 무슨 분열이 있고 미움이 있고 불평과 원망이 있을 수 없지요? 말씀대로 살다가 오는 핍박인데 이런 교회에 무슨 분열이 있습니까. 말씀대로 사는데서 오는 핍박이 올 때는 오히려 주님의 위로와 주님의 영광의 접촉뿐이죠? 핍박을 받을 만하지요. 낙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과도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절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힘차게 일어날 일이죠?

○기 도

자비하신 주님, 주님께서 연약한 저희를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도록 그리스도 안에 연합하여 주시고 또 그리스도를 따르되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가운데 따를 수 있게 하시옵나이다. 이렇게 주님을 줄 곳 따르는 교회에 주님께서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 이 가르침이 저희에게 깊이 새겨져서 낙담하거나 좌절치 않도록 하시오니 감사하옵나이다. 저희는 연약하여 조금만 핍박이 오면 이런저런 눈치를 보거나 또 주님을 따르기를 주저하는 이런 연약한 존재인데, 이런 연약함을 아시고 주님께서 참 교회의 본질을 잘 밝혀 주시옵나이다. 참 교회란 불의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의를 추구하는 자요 또한 그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자라 하셨나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지체이기에 저희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핍박이 당연한 것이요, 이것으로 참 교회요 참 성도인 것이 증거 되옵나이다. 주님의 복음을 굳게 믿고 경건하게 살면 살수록 불의한 자들로부터 필연 핍박이 오는 것을 저희가 당연한 것으로 알되 주님의 지체이기에 당하는 것이요 천국의 백성이기에 당하는 복된 존재임을 알고 기쁨으로 이 고난을 뚫고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핍박 가운데 있을 때 저희는 더욱 돈독히 사랑하고 참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이 다 드러나서 성령 안에서 의롭고 또 평안하고 기뻐하는 사회가 되옵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