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봉 목사
▲송현교회 손기봉 부목사

종교개혁은 삶의 개혁입니다. 당시의 모든 문화나 시대의 환경과 배경이 기독교 문화였기에,기독교를 새롭게 하는 종교개혁은 말 그대로 사회적 개혁이었습니다.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 공동체인 가정은 이런 개혁의 정중앙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개혁은 가정의 거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가정의 문화 대부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 그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기에 저는 간략히 두 가지만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결혼입니다.

중세 교회에서 결혼은 그리 환영받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거룩한 삶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육체적인 욕망을 다 끊고 금욕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더 신실하게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사제들은 독신서약을 해야만 서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결혼을 교회가 주관하고 7성례 중에 혼인성사를 포함시키기 까지 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가 결혼을 주관하고 성례전에까지 포함시키다니 의문을 가질만 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원래 결혼은 국가에서 주관했습니다. 그 때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이혼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결혼을 주관하면서 절대 이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증명한 증인제도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리자인 사제가 혼인성사를 주관하므로 사제보다 더 확실한 증인이 없다는 것이죠. 이는 교회의 권위, 사제의 권위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증인이 사제 혼자이다 보니 사제를 매수하여 결혼을 승낙받기도 합니다. 즉, 교회의 배를 불리고 사제들의 잇속을 챙기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정관입니다.

가족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입니다. 중세 교회에 죄에 대한 특이한 해석이 있습니다. 아내가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인간의 죄를 유전시키고 퍼뜨리는 행위로 본 것입니다. 죄는 여자, 하와에 의해서 들어왔으니 여자가 출산하는 것은 죄의 재생산이라는 개념입니다. 죄의 근원이 여자에게 있으니 여자는 언제나 악한 심성으로, 마녀가 될 소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녀가 될 수 있는 여자는 때려서라도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까지 주장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다.

또한 가정에서는 신앙교육은 이루어 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부부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불경스러운 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할 수 없다는 것이죠. 가정이 아니라 교회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며 교회의 권위를 최상위로 올려 놓았습니다.

물론, 중세시대 모든 가정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생각들이 당시에 유행하고 있었고, 특히 교회제도 내에서, 가정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가벼이 여겨졌다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이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가정의 본래적 의미를 되찾기 시작했고,결혼의 성경적 가치관이 회복되었으며 무엇보다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이 회복되었습니다. 먼저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결혼이 하나님의 법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구약성경을 보면, 제사장과 대제사장도 결혼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인 베드로도 결혼을 했고, 목회서신에서는 교회의 직분자인 감독과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중세 교회가 성적인 금욕을 강요하고 성직자들에게 독신서약을 강요한 것은, 오히려 더 큰 성적 타락을 조장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성적 금욕을 강요함으로써 경건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혼을 통해 아름답고 정당한 성생활로 경건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룸으로써 오히려 성도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목회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종교개혁은 가정의 질서를 바로잡았습니다.

중세 시대가 오직 남성 중심의 가정이었다면,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가정은, 성경적 질서가 살아있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정의 가장이 성경적 권위를 회복해야 함을 말하였는데, 종교개혁시대도 중세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이자 남편인 남성이 가정의 가장의 역할을 담당하는 가부장제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대는 명백한 가부장적 시대였지만, 종교개혁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가부장적으로, 남자가 절대적 권력을 가지는 그런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았습니다. 

남편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고전11:3) 이것은 단순히 아버지이자 남편이 단순히 세속적인 권위자나 절대권자라는 개념과 달리, 예수님께서 그 가정의 주인이시고 절대 주권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가장, 남편은 성경 말씀을 따라 가정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나타내고 실천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고 희생하신 것처럼, 남편 역시도 머리되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그 가정을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나 자녀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 예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것처럼, 남편을 따르고 순종해야 하며, 자녀들 또한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가정의 원리이자 질서입니다.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루터가 주장한 '만인제사장직'이라는 개념입니다. 사제로 서품을 받고 성직자가 된 사람만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삶 역시 거룩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죠.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만인제사장직의 개념은 높아질대로 높아진 교황의 권위를 낮추는 효과도 있었지만,동시에 평신도의 역할을 높이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 부모가 보다 적극적으로 신앙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루터가 표현하기를, 부모가 그 가정의 주교, 혹은 가정의 설교자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만큼, 부모가 가정에서 신앙생활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개혁은 당시 가정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초대교회의 가정의 역할과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말합니다. 젊은 세대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고령화되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는 더 빠른 속도록 고령화되어 간다고 다들 심각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문제라면, 교회에 젊은 세대가 없고, 젊은이들이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빠져들고,세상적 재미와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점점 떠나가고 있다면,이 아이들을 다시 되돌리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가정이 회복되는 것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돌아가는 그 시간으로, 모든 신앙 교육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교회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가정이 교회의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가정이 또 다른 교회가 되어서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 안에 바르게 자라며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훈련받고 영적 공급을 받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희망이요,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