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성령의 삶 코스 대표)
한국교회사속의 네오-몬타니즘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필자는 한국교회사 속에서 특별히 1930년대 전후의 영성생활 속에 네오-몬타니즘이 뚜렷이 나타났다고 보기에, 이 시기를 첫 번째로 다루기로 한다.

그리고 1980년대와 90년대에 한국교계를 혼란케 했던 빈야드운동과 다미선교회가 또한 네오-몬타니즘 성향의 좋은 본보기였기에 이에 대해 평가하고자 하며, 마지막으로는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점차 교계의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사도개혁운동과 큰믿음교회의 네오-몬타니즘과의 관련성을 살펴봄으로, 현대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에 대한 하나의 경종을 삼고자 한다.

한반도에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진적인 영성운동이 일어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밖으로는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신사참배 등으로 인한 일제의 억압이 있었고, 안으로는 장로교를 비롯하여 감리교, 성결교회 등 여러 교단에서 다툼과 분열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신학 부재(不在)의 상태에서, 그리고 아직껏 성령운동의 여러 급진적인 양상에 대한 분별력도 키우지 못하던 상태에서 몰아닥친 영성운동은 수많은 문제점들을 발생케 했다.

이때는 한국교회사에서 보기 드문 신비주의적 혹은 신령주의적 신앙운동이 전개된 시기였다. 이러한 영성운동들에게는 곧 신비주의와 이단이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되었다. 이러한 영성운동들 속에는 타종교 특히 우리나라의 샤머니즘(Shamanism)과 불교, 도교, 신선술(神仙術) 등지에서 행해지던 영적 능력 행사와 거의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행해지는 극단적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므로 기독교 내에서도 많은 지도자들이 이러한 혼합주의적인 영성운동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특히 급진적인 영성운동으로서 당시 교회를 긴장시켰던 것은 특히 난무하는 거짓 계시(啓示)와 종교혼합주의의 영향이었다.

당시의 한국교회 내에는 '복음적 성령론'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영성운동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우선 1917년에 발생한 정도교(正道敎)를 들 수 있다. 교주 이순화는 1924년에 소위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추종자들과 함께 계룡산에서 종말론을 강조하는 집회를 통해 세력을 확장해갔다.

그리고 황국주의 예를 들 수도 있다. 그는 1933년경 백일 간의 기도를 마친 후에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을 신언(神言)의 대변자로 자처하였다. 그는 "머리도 예수의 머리, 피도 예수의 피, 마음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주장하여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백남주의 성령론에서도 기독교와 타종교의 모든 영적 제현상을 혼합한 양상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필자는 백남주, 황국주, 유명화 등을 급진 유형(急進 類型)의 영성운동가들로 구분하였는데, 그 까닭은 이들에게서 기독교적인 범주를 넘어선 종교혼합주의적인 신비주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들이나 인물들은 네오-몬타니즘이 지닌 극단적 신학적 오류들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본다. 현상과 계시 체험을 강조하는 성령론은 물론, 기존 교회를 무시하는 분파주의적 교회론, 행위를 강조하는 극단적 구원론, 그리고 임박한 종말론을 강조하면서 집단적 신비주의를 형성하는 특성들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교회사에서 네오-몬타니즘 성향의 영성운동이 가장 밀집되어 있던 때로서 1930년대를 지목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시대의 인물 중에서 이용도(李龍道)의 경우에는 위에서 지적한 인물들이나 집단보다는 좀 온건한 형태의 네오-몬타니즘 성향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