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날짜 : 2016년 11월 27일

본문 : 요 6:1-5
설교 :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조용기 목사

<서론>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 제목을 가지고 오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야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마실 물도 부족하고 먹을 양식도 부족하며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 된 우리가 부족함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4차원의 영성을 삶에 적용해야 됩니다.

지난 달 OECD가 펴낸 보고서를 보니까 한국 사회는 실업과 취업 불안이 매우 높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수치는 OECD국가 중 두 번째인데, 우리나라 사람의 약 80%가 일자리 때문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했습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33%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순위로 따지자면 최하위입니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이 불안과 염려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가 많은 사람에게 그 질문을 당합니다. 여러분, 아주 교육을 많이 받고 지적인 사회가 이루어졌다는 구라파의 독일에 가서도 어느 면적(얼마든지) 군중들 모아놓을,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 세상에 병 안 든 사람이 없어요. 아주 공부를 많이 하고 사람들이 현명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독일이나 불란서 같은데 가서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병 낫게 한다고 그러면 주민의 30%는 집회에 참석해 나온다고요. 제가 독일에 처음 가서 복음을 증거 할 때, 그 베를린에 저만치 사람 안 모일 테니까 헛된 짓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독일 사람들이 얼마나 교육이 높고 지혜가 탁월한데 미개인처럼 취급당하는 한국 사람이 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 한다고 사람이 모이겠냐고? 제가 하는 말은 “두고 보라고. 아픈 사람은 안 아픈 사람과 생각이 다르다고, 독일 사람도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는지 보라고.” 그러니까 일주일 집회를 하는데 한 며칠 동안에 병자들이 와서 나으니까 그냥 줄줄이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해서 그 때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목사도 되고 주의 종이 되어서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 존재를 위해서 굉장히 관심이 깊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되고, 직장이 있어야 되고, 직업이 있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하러 나갔을 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회개하면 천국이 가까워오는데 거기에 들어가지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돌봐주시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본론>

1. 먹이기를 원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잘 먹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한 전인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말씀을 보면 유대광야에 모인 사람들이 굶고 고난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하니 병자를 많이 고쳤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의 2/3는 병 고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을 많이 고치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기도 병 낫거니와 병 고친 사람이 누군지도 보기 위해서 인산인해로 모였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예수님이 나왔는데 유대광야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찾아보려고 온 무리들이 남자만 오천 명, 여자를 다 합치면 어린아이까지 적어도 만 오천 명 내지 이만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우리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많은 사람을 먹이겠느냐?”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한복음 6장 7절)’ 엄청난 돈이 있어야 이 사람들 조금씩 먹게 할 수 있다고. 계산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오중복음, 삼박자 축복, 4차원의 영적 생활에는 계산을 하면 안 됩니다. 그냥 신앙을 가진 사람만 그냥 3차원의 영적인 생활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제가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 4차원의 영성을 깨닫게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예수님께서 이것을 가르치시면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기적적인 신앙생활은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대화를 하는데 예수님이 아무 말을 해도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육으로 나있는 사람은 하늘의 신령한 일을 알 수가 없다. 신령한 세계를 알려면 거듭나야 된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야 된다. 예수님이 그 영혼은 바람과 같다. 분명히 바람과 같이 있지만 만져볼 수도 없고, 서로 느낄 수도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서 속사람이 살아나면 하늘나라와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기적의 동반하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는 사람은 기적을 믿지 않아요. 영은 죽었고 없고, 육신은 물리학적 계산법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말하고, 이것에 맞아 떨어져야 대화가 되고, 보고, 듣고, 만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그 범위를 뛰어넘으면 그건 영적세계에 들어갑니다. 영적세계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세계는 생각의 세계요, 꿈의 세계요, 믿음의 세계요. 인간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정의를 내는 말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오니까 주님께서 빌립에게 이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떡을 사서 먹일 수 있냐고 말하니까 당장 빌립은 계산을 합니다. 계산을 해가지고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돈이 너무 들어가니까. 그런데 안드레라는 제자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먹이는 시늉을 할 수 있으되 절대로 그 군중들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3차원의 세계 속에 있지 않습니까? 3차원이라는 것은 감각적인 세계, 이성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성적인 세계, 감각적인 세계에서 계산을 해보니까 빌립은 어림도 없습니다. 먹일 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있긴 있어도 너무 수가 적어서 어림도 없이 먹일 수가 없습니다. 기적을 기대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기적을 기대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이들을 먹이시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분들에게 자리에 다 앉게 하시고 그 다음,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축사를 하시고 나누어주라고 먹이는 명령을 내리시니까 아 이 떡이 물고기와 함께 주니 또 생기고 주니 생기고, 주니 생기고. 기적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도 3차원의 세계에 속한 사람은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한정된 인간적인 계산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믿습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믿어질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겨자씨만한 믿음이 태산을 옮기고 문제가 해결이 엄청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을 이해하도록 하려고 했는데 안돼요. 3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물자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니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4차원의 영성을 동원해서 4차원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에 보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세상 사람들의 길보다 다르고 생각보다 높아서 인간으로서는 못할 것을 하나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적적인 4차원의 삶을 살려면 절대로 생각이 부정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장 19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와서 채우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 9절로 11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4차원적 해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오셔서 가는 곳마다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문제해결을 했습니다. 창조적인 축사를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고서 축사를 할 때 그 축사 속에 예수님의 바라봄의 법칙이 들어있고, 믿음이 들어있고, 창조적인 선언이 들어있어 우리가 그것을 몰라볼 때 가 많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5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3차원의 세계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은 위에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3차원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더라. 그 하나님의 신은 4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차원을 말로 할 수 없는 바람과 같은 4차원의 영이 3차원의 세계에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여러분 자체 육체는 3차원입니다. 여러분 제가 말하고 여러분이 말을 듣고 계시고 수족을 움직이는 것 모두 3차원입니다. 그럼 성경에 있는 말씀은 그 3차원이 아니고 성령은 4차원 위에 운행을 하시거든요.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복잡한 이후에 성령이 운행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은 데모 때문에 정신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이 3차원 세계가 흔들리고, 흔들리고 정신 차릴 수가 없습니다. 국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이런데 이 혼돈 속에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한국이 하나님의 성령이 이 요란스러운 3차원의 소용돌이 위에 임하고 계시기 때문에 기도가 응답되고, 성령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돌보고 우리나라가 위험이 처하지 않도록 돌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차게 기도해야 될 것은 우리가 살아남을 것은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운행하는데 하나님의 신은 4차원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성령이 이 요란스러운 3차원 세계 위에 운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기도를 통해서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죽음이 삶이 되고, 무가 유가 되고,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믿음이 있는 분에게 가서 기도 좀 해달라고. 그 사람은 기도하는게 눈에 안 보이지만 기도하면 그 곳에 있는 성령이 운행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차원은 안 보이는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엄청난 하나님의 나라가 모두 다 4차원에 소속한 것입니다. 4차원은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4차원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을 다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게 한 것은 3차원이 아니라 4차원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냥 생선과 떡을 떼서 먹이면 또 생기고, 먹이면 또 생기고 하는 그것은 4차원의 세계에 기적적인 역사가 그것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한복음 6장 10절 - 11절)’ 이 3차원의 세계는 오십 명, 백 명씩 질서 있게 앉혀놓아야 먹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질서 있게 앉혀 놓는 것을 보면 먹이겠다는 의지가 서신 분인 것입니다. 그래놓고 난 다음에 축복을 내려줘요. 축복의 기도를 하는데 축복의 기도 속에 믿음이 들어있고 창조적인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4차원의 영성이 그 속에 들어가서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낭패가 난 3차원 위에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2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한 차원 높다는 말입니다. 물질적인 차원보다 한 차원 높은 데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차원의 한 차원 높은 성령이 운행하시면서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이 기도를 통해서 낮은 차원에 있는 세계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창조하기도 하고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앉아계신 여러분 모두가 다 여러분 속에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성령바람. 성령바람 차원이 높은 바람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면 그 성령의 역사가 우리 영의 역사와 합쳐서 놀란 응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성령을 모시게 되었기 때문에 성령하고 이 땅에서 살게 됩니다.

육체로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모시고 있으니 4차원의 세계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물질세계 위에 운행하고 계신데 여러분이 믿음으로 기도하면 이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생각을 합치고 꿈을 합치고 믿음을 합치고 선언을 말의 선언과 합치면 야 놀라운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많이 힘차게 기도해야 될 때가 이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3차원 세계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위험이 다가와도 성령이 그 위에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를 듣고 성령이 이 3차원의 세계 위에 운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민족을 도와주시옵소서. 나라에 질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옵소서. 성령이 우리 기도를 통해서 그 수하에 있는 3차원의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질서를 가져오고 기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두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아담과 하와 때문에 영이 죽어버린 육체로 3차원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대개 사람들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다 갚아 주시고 영을 살려 주시니, 영이 4차원인데 영이 살아나고 나니까 이 성령이 와서 거하실 수 있거든. 성령은 4차원이니까. 성령이 여러분 생각 속에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꿈 속에 같이 꿈을 꾸고 믿음 속에 같이 성령과 같이 믿음을 갖고, 창조적인 선언을 할 때 성령과 함께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거하시는 생각하는 집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꿈이요 환상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믿음이요 성령이 받아서 역사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3차원 위에 4차원의 영이 운행하시기 때문에 여러분 기도가 여러분의 개인 가정, 생활, 사업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통하니까. 변화나 창조의 명령인 창조적 선언을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들어보세요. 이사야 55장 10절로 11절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게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육체는 본을 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믿음을 받아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면 그 말한 것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4차원적 교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늘 가르치길 원하시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백부장이 딸이 죽어서 예수님을 청하니까 예수님이 그와 같이 하는데 자기 부하가 뛰어와서 “당신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라.” 그래요. 그러니 예수님이 너희들 죽었다고 울고 통곡하는 사람 모두 다 쫒아내 버리고 그 어린 딸을 붙잡아서 일으키니 살아 일어났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요란스럽게 하는 것은 문제가 보통 악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4차원의 영성을 여러분께 알려 주기를 원하시는 것인데, 첫째로 긍정적인 생각을 주위에 충만케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시편 103편 2절로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원이나 청소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암 병동에서는 의사보다 간호원이나 청소부를 더 많이 교육시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굉장히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환자를 가장 자주 접하는 간호원이나 청소부에게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간호원이나 청소부가 환자 병실에 들어와서 소제를 하고 주사를 놓고 하면서 “아 오늘은 얼굴색이 달라졌네요. 말소리에 힘이 있네요. 전에 있던 분도 그렇게 변화가 오더니만 살아서 나갔어요. 병 고침을 받고 나갔어요.” 그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크게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우리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 잘 먹고, 일하러 나갔다가 얼마 안 있어 복통을 일으키고 집에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실에 가니까 “아이고, 오늘 당신 얼굴이 왜 이래? 완전히 환자야. 요사이 유행병이 돌아다니는데 그거 걸린 것이 아닌가? 병원에 가봤나?” 그러니까 처음에는 “까딱없어. 괜찮아.” 그러다가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아이고 오늘 머리가 아프고 몸에 잔열도 있고 하니 오늘 일을 못하고 집에 가서 누워야 되겠다. 그냥 집에 가서 드러눕게 되는 것입니다. 입의 말.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고래에게 칭찬을 하면 고래가 춤춘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나가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세계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가까이 두었기 때문에 자기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다가와도 긍정적인 마음의 마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갖고 나아가면, 어려움을 딛고 다시 당당하게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십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고 그렇게 하면 우리 생각이 긍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꿈을 마음에 잉태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애기를 잉태하지 않는 사람이 어린 애기를 낳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 넥타이도 안 맸으면 바로 이렇게 되는데... 구체적인 꿈을 마음속에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 있지요? 그것을 마음속에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잉태하는 것처럼 잉태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잉태하면 그 꿈을 낳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장 5절1-52절)’ 우리가 긍정적인 사회에서 구체적인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이 꿈으로 마음속에 간직해 있으면 주님께서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우리 한(국)국민은 굉장히 꿈이 많은 민족입니다. 요번에도 이 환난이 지나고 난 다음에 새로운 꿈을 안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마음에 또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사랑해서 종종 그 집에 들르고 했는데, 그 오라버니가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니까 무덤에 이미 파묻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옮겨 놓아라.” “아이고 오라버니 썩은 냄새가 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을 굴리면서 “야, 내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 네 오라버니가 살 것이라 말하지 않았느냐?” 믿음이 우리 인생을 크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한복음 11장 39절-40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사차원의 영성이 개발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짖는 믿음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