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e and Fall of the Christian myth
아직 미국에서도 출간되지 않은, 버튼 맥 교수의 따끈따끈한 도서 <'기독교 신화'의 발흥과 몰락(Rise and Fall of the Christian myth)>을 진규선 목사님께서 서평해 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제목: Rise and Fall of the Christian myth
저자: Burton Mack
출판사: Yale University Press

버튼 맥(Burton Mack)은 국내에선 비교적 생소한 신약학자 및 기독교 역사학자이다. 그는 보수적인 나사렛 교단 출신 목사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복음주의적 신학을 익히는 동안, 불트만의 제자 닐 해밀턴을 통해 일종의 '신학적 계몽'을 경험했다. 이후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한스 콘첼만의 지도 아래 기독교 신화(지혜 신화와 요한복음 서론에 나타난 로고스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제출한다.

이론적으로만 기독교를 연구하던 버튼 맥은, 교수로 활동하는 동안 학생들에게서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힘의 정치에 대한 질문을 듣고 나서, 새롭게 사회학과 민족지학의 도움을 얻어 거시적인 연구를 개시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저술된 이 책은 기독교 신화(Christian myth)와 사고방식(mentality)으로 형성된 서구, 특히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에 대한 반성의 시도이다. 다시 말해, 본서는 기독교 신화와 사고방식의 문화적 영향력에 관한" 비판적 분석이다.

본서는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몇몇 명확한 전제들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인상을 주지만, 저자는 각 장마다 그 전제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철저하면서도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버튼 맥의 전제부터 밝히자면, 인류 역사 속 사회 구성은 그 이면의 '큰 그림(Big picture)' 즉 신화의 발현이며, 서구를 근대 이전까지(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운동, 그리고 특히 산업혁명) 형성한 것은 기독교 신화였다는 것이다. 이후 과학과 자본주의가 서구의 큰 그림이 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여전히 기독교가 큰 그림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의도하지 않았지만 초강대국이 됐고, 20세기를 '미국의 세기(American Century)'로 공언하며, 그러한 기독교 신화 프레임을 가진 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관여했다. 그러나 미국은 실패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의 실패(즉 기독교의 실패)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우리에겐 새로운 대안적인 큰 그림이 필요하다. 버튼 맥의 이러한 주장은 과연 어떤 논리에 기초하고 있는지, 각 장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1장에서 버튼 맥은 신화를 정의하고 그것이 각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했는지, 현대의 원시 부족(호주 아란다 부족, 미국 위네바고 부족 등)으로부터 시작해 고대 그리스, 고대 근동, 히브리 민족, 그리고 '기독교세계(Christendom, 편의상 크리스텐덤을 띄어쓰기 없이 기독교세계라 칭한다)'를 지나 오늘날의 국민-국가(Nation-State)까지를 개략적으로 다룬다.

예를 들자면, 고대 그리스에는 각 지역마다 사유지를 보유한 주인 가문의 중요성과, 명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영웅 신화의 계보학들이 있었다(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이티카의 라에르테스, 테베의 카드모스,  티린스의 헤라클레스 등). 그리고 각 지역마다 사유지의 보호자이자 창시자인 영웅을 위한 희생제사(thusia)가 있었다. 이것은 사유지 주인 가문과 노동자 등의 계급적 관계를 정당화시켜 준다.

맥에게 중요한 것은 기독교세계이다. 초기 그리스도인은 다른 집단과 달리 아무런 전통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스-로마 시대를 지나며, 제국 정책에 의해 각 지역의 종교 유적이 도시마다 존재할 수 있었다. 특히 헬라 철학들을 두고 토론하며, 그것을 로마 제국의 권력과 영토 내에서 이스라엘 서사시와 연결지은 '예수 학파'라 할 수 있는 이들은 2-3세기를 지나며 사회 집단이 되었다.

그리고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는 초기 기독교 집단의 네트워크를 로마 제국의 각 부분을 이어줄 수 있는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로 보았다. 그리고 기독교를 실제로 '제국의 종교'로 세우고 주요 종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교회의를 열었다. 무엇보다 정경의 결정은 이스라엘 서사시의 연장선상에서 로마 제국의 정당화에 기여했다.

그렇게 기독교 세계가 시작되고, 서구 문명이 형성됐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운동, 산업혁명을 지나며 유럽에서 기독교 신화 세계는 거의 사라졌다. 단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미국'인'의 개인적 특징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럽으로부터 이주한 이들로부터 세워진 미국의 '민족 신화(national myth)'이다.

따라서 유럽이 계몽운동과 산업혁명을 겪는 동안 버린 기독교 신화 세계가 최소한 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의 공적 발언들, 예를 들면 언덕위의 도시, 약속의 땅, 메니페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 등을 비롯하여 유럽-미국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민족에 대한 '2등 시민 취급' 등은 명백한 기독교 신화의 문법이다.

2장에서는 버튼 맥 자신의 연구가 어떤 방법론으로 이루어졌는지 소개한다. 지금까지 서구의 종교·신화·의례 등에 대한 연구 방식은 기독교적 사고로 이루어졌다. 즉 기독교의 '상상의 초월적 세계'가 현실 세계로 여겨지는 사고 속에서, 그리고 세속적이고 과학적 인간관에 기초하지 않은 이런 방식으로는 서구 전통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정당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학문적 논의를 진행하려면, 용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버튼 맥은 신화적 세계, 사회적 관심사(social interests), 신화와 의례, 문화 등을 재정의하고 또한 설명한다. 신화적 세계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과 다르다. 인간의 언어는 사회환경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두 환경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게 된다. 언어와 상상이 만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는 신화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민족지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사회 형성(social formation), 그리고 사회적 관심사와 연관된다. 사회적 관심사는 영토, 계급, 교육, 분배 및 부족 정체성 등을 포괄하며, 그것이 사회를 형성하고, 이러한 것들은 신화와 의례에 반영된다. 이것을 설명하는 좋은 용어가 바로 '사고방식(mentality)'이다. 신화는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설명하고, 의례는 그 사회를 정당화시킨다.

버튼 맥은 3장에서 본격적으로 '신화로서의 기독교'를 다룬다. 1-3세기 사이에 형성된 기독교 신화는, 예민한 유대교와 수용력이 큰 그리스-로마의 신화적 세계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여 더 나은 세상, 즉 '하나님 나라'의 교사로 예수를 내세우는 예수 학파의 산물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이전까지 '기독교'라는 것은 없었다. '예수 학파' 집단은 당대에 자리잡기 위해 많은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정치적 이유로 인한 이 '스승'의 '명예로운 죽음'은 집단을 앙양시키기 위한 신화화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것은 바울의 그리스도 신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며, 바울의 그리스도 신화 개념은 예수의 이름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곧 수많은 예수 학파에 수용됐고 이러한 집단 구성원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누구인가? A.D. 70년 이전, 즉 예루살렘에 군대가 진격하기 전, A.D. 30년 즈음 예수는 비세속적인 어떤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다. 그것은 그리스-유대 철학과 민족성을 지닌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전우주적'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 이념으로 취해졌고, 동시에 예수 학파도 신화-의례 종교가 되었다.

교회의 사제들과 신학자들은 바쁘게 성경과 신앙고백, 의례를 생산해 냈고, 이렇게 생성된 허구의 사회 구성물(그러나 고대 근동 및 그리스-로마 세계의 종교적 상상력의 지평에서는 충분히 가능한)이 로마 제국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봉건제도를 정당화했다.

기독교세계는 종교개혁과 더불어 무너진듯 보였으나, 여전히 '왕국'(kingdom) 개념은 이어졌다. 예를 들면 마르틴 루터는 단지 그 둘을 구별했을 뿐이다. 실제 종교개혁자들은 기독교의 '기원'을 찾기 위해 '신약 성서'로 돌아갔다. 실제로 바뀐 것은 없었다. 교황의 자리는 개신교에 의해 주교들에게로 분산됐을 뿐이다.

그리고 국가-교회(state-church)가 들어섰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건국이 정교 분리와 완벽한 세속화를 이루어냈다고 여겨지지만, 앞서 지적했듯 기독교 신화의 세계관은 여전히, 특히 미국에 살아있다. 무엇보다 레이건에서 조지 부시 2세 정권의 행정부와 정치적 담론에 내재한 기독교 신화와 사고방식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다.

기독교 신화와 사고방식은 유일신에 기초하여 단일한 가치와 정의를 추구하기에, 실제 세계를 다루는데 문제가 있다. 즉, 이는 결국 '선과 악', '옳고 그름', '우리와 그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같은 대결 구도를 산출한다. 버튼 맥은 레이건과 조지 부시 2세 정권은 이러한 기독교 신화와 사고방식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데 활용했다고 비판한다.

4장과 5장에서는 사회를 관심사와 현안이라는 두 가지로 구분해 다루면서, 이것이 역사 속에서 큰 그림, 즉 기독교 신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야기된다. 계몽운동이나 산업혁명 등 역사의 순간들은 기독교세계가 말하지 않았던 사회적 관심사를 새롭게 산출했다.

14세기부터 지속된 르네상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 우주에서 자연 질서로, 초월적 신에게서 지상의 인간, 무엇보다 개인에게로 관심사를 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 질서와 물리 세계를 연구하고 이용하는 과학적 사고가 출현했다(물론 지식 추구는 오래된 것이다).

과학은 '큰 그림'이나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며, 대신 정부, 기업, 군사, 시장경제에 사회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된다(결국 과학은 큰 그림에 종속될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개혁 이후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는 17-18세기 미국으로 건너왔고, 보수적인 이들 가운데 여전히 살아남았다. 유럽에서도 여전히 문화적으로 기독교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자본주의가 역사 속에 등장했다. 저자에 의하면, 자본주의야말로 오늘날의 큰 그림이자 신화이다. 자본주의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치는 가격으로, 왕국은 민족 국가로 전환되고, 자본·돈을 기초로 한 은행-경제 체계가 급격하게 발전했으며, 무엇보다 시장의 팽창이 이루어졌다. 특별히 이러한 자본주의는, 연방으로 구성된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인 거대한 국민-국가(nation-state, 버튼 맥은 이것이 다소 부적절한 명칭임을 인정한다)를 낳았다. 국민-국가의 관심사는 경제, 방위, 사업과 무역 보호, 군사 등에 있지, 교육, 예술, 최저 임금, 건강보험, 지구 환경문제 등에 있지 않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미국에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가? 이를 잘 보여주는 네 가지 미국 사회 현안이 바로 총기, 지구 환경, 군사, 외교이다. 이 중 버튼 맥의 군사와 외교 분석만 살펴보자.

미국은 1789년 전쟁부(War Department)를 세웠으나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그리고 1946년 국군사회위원회(Armed Services Committee) 설립 전까지 제대로 된 군대를 갖추지 못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통제라는 사고없이 유럽 부흥계획(마셜 플랜)과 유엔(UN) 창설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기간 중 일부 유럽은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미국은 러시아와 냉전 시대를 겪는다. 그러면서 '적' 개념을 만들어 낸다. 바로 러시아라는 나라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미국은 전쟁 이후의 부국강병을 국가적 관심사(national interests)로 삼았고(대표적인 예가 바로 석유), 미국의 군사력은 그러한 일을 보호해 줄 도구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 미국은 세계를 '바르게(즉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한다는 신화적 사고로 군사력을 정당화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레이건에게서 부시 2세에게로 이어진 미국의 기독교 신화이다. 실제로 9·11 사건이나 여러가지 전쟁에 관여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미국이지만, 이러한 이유로 펜타곤의 고위간부들은 국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지배력인 군사력을 감소시키길 원치 않는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하여 인도주의적 원조를 하지만, 보다 외교를 잘 설명하는 개념은 다른 나라에 대한 '선교(mission)'이다. 그리고 그 개념이 미국의 침해에 가까운 간섭을 더 잘 표현한다. 미국은 냉전을 겪으며 미국만이 민주주의를 알고 있는 듯, 그것을 '선교'한다. 이러한 '선교'는 지난 60년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그리고 근동 지역에 대한 레이건-부시 2세 행정부의 침공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다른 민주 국가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메니페스트 데스티니나 선교 같은 기독교 신화 사고방식,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연히 얻은 리더십, 레이건-부시 2세 행정부 정책 등이 혼합된 결과이며, 이 혼합이 바로 미국의 사회적 관심사를 낳았다.

버튼 맥에 따르면, 미국에 남아 있는 것은 기독교 신화뿐 아니라 낙관적이면서도 과학만능적 그리고 자본주의와 미국 지배의 정당화 신화(신학·철학)이다. 이러한 미국 사고방식은 미래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버튼 맥은 6장에서 이러한 비판들을 비판한다. 즉 미디어나 저널은 뉴스가 될 만한 것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지성인들은 온갖 '-주의'(-ism)와 문화를 생산했다. 이들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줄 수 있는 분석가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은 고대 왕권을 정당화하는 데 기저를 이뤘던 에누마 엘리쉬, 길가메시 서사뿐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을 써준 왕의 서기관과 같은 존재이다. 히브리 민족, 그리스인들 가운데 있었던 이러한 지식인들도 역시 그러한 역할을 했다. 초기 기독교 저자들도 이방인을 타락한 존재로, 성경을 실제 역사적 사실로 말하며 온갖 신학적 논문들을 써냈다.

특히 미국의 문학 비평과 문화 비평은 서구의 '고전'을 추켜세우며 오늘날의 가치로 모범적이 될 만한 것들을 보여주는 문학이 '선'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내의 문학은 그러한 문화 전통의 수호자였다. 고전적 서구 전통은 '로고스'라 불리는 합리성 이상의 무엇을 대변했다. 그러나 전통 종교관과 제국주의, 가부장제는 무너졌고, 자율성이 사회와 개인을 이해하게 만들고, 유일신론을 대체하고 자본주의에 맞설 낭만적 비전이 등장했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가며 많은 것이 변했다. 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던적 행태를 비판하고, 거대 담론으로 여겨진 서구 문화의 개념과 더불어 과거의 가치들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은 그에 대해 또 다시 문화 비평을 가했다. 그러한 비평과 분석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사회적 관심사들을 움직이는 힘을 다루지 않는다. 즉 이들 모두 거시적 관점을 갖지 못했다.

버튼 맥은 7장에서 대담한 방식으로 기독교 신화를 서구 문화와, 특히 미국과 연결짓는다. 무엇보다 버튼 맥은 미국의 세계에 대한 정치, 즉 외교적 태도를 비판한다. 다소 반복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보다 더 구체적이다.

미국의 외교적 태도는 분명 기독교 문화 유산이자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선교'이다. 이것은 근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이슬람 국가들에 개입해 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이슬람을 이용한다"는 말투 등을 사용하며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이들의 분석은 많은 오해를 낳았다.

대다수 미국인은 천연자원, 즉 오일 때문에 미국이 그들의 땅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무슬림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배웠다. 혹자는 미국의 '자유로운(liberal)' 문화가 이슬람의 근본주의적 문화와 충돌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버튼 맥에 의하면 이것은 충분한 설명이 아니며, 오히려 타자(비기독교인)를 타락한 자로 규정하는 기독교 신화와 사고방식의 결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서구 문명의 종교에 대한 서술은 유신론, 즉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한 태도를 간과할 수 없다. 근동에 대한 미국의 문제는 천연자원과 영토에 대한 침범으로 여겨지며, 미국은 실제로 근동의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들의 반발은 서구 무기에 대한 것이었고, 결국 급진적 태도(지하드)를 종교적인 신화를 통해 합리화했다. 또한 9·11 사건에서 미국은 오로지 그것을 사회적 차원에서, 서구의 용어와 논리로 이해하려고 했다. 미국도 역시 기독교 신화에 사로잡힌 상태였지만, 그것을 간과했다. 아니, 오히려 근동 국가를 서구화시키려 했다.

유대교는 종교적으로 분명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앞서지만, 현대 국민-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영국 지배 하에 있었고 2차 세계대전 후 유대인 거주지가 되었다. 그후 이스라엘은 미국 및 미국계 유대인에게 근동에 대한 관심사와 공산주의를 막아줄 친구로 여겨졌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미국의 관심으로 인한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 신화와 사고방식을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의 사고 역시 성서적 신화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튼 맥에 의하면,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에 의해 옹호된 시오니즘은 순수하게 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명백히 성서적 신화이다. 버튼 맥은, 사람들이 '미국은 정교분리가 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 내에서 기독교 신화와 사고방식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군사력을 이용한 근동 지역 침범(선교)이 가장 큰 증거이다.

이처럼 비록 기독교세계가 형성한 세계관은 이슬람 부흥, 신대륙 발견, 자본주의와 과학 문명의 출현 등의 위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살아남았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보듯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단일한 신화는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국제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다문화 세계에서 생산된 세속 사회적 관심사들을 담아낼 수 없다.

버튼 맥은 우리에게 새로운 큰 그림이 필요하고 주장하며, 마지막 8장에서 전망을 제시한다. 그는 현재 세계는 국민-국가의 상황에 놓여있을 뿐 아니라 다문화적 상황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 되어, 사회와 공공선을 위한 큰 그림에 대한 고민이 간과되어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왜냐하면 버튼 맥에게 있어 큰 그림은 비록 그것이 신화일지라도 사회적 안정과 비전을 제공하는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적 엘리트를 통해 뉴스로 제공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에 대한 분석은 큰 그림을 제공하지 않는다. 폴 호큰과 같은 훌륭한 환경운동가는 모든 종류의 '-주의'를 벗어난 운동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큰 그림'을 필요로하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오해이다.

큰 그림은 자연 질서와 사회 역사 속에서 그려진다. 우리의 사회는 많은 역사를 지나왔으며, 과학 발전은 이전의 기독교세계가 제공한 것과 비교되지 않는 넓은 우주와 긴 생명의 역사(또한 종의 한계도 역시)를 알게 했다. 수많은 인구와 현대 국민-국가간 다양성의 교류는 이제 과거 큰 그림이 인류를 멸종에서 지속시켜준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버튼 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문화'와 '사회 민주주의(social democracy)'이다.

기독교 사고방식에 여전히 젖어 있는 미국은 '다문화 국가'와 '사회 민주주의' 두 개념 모두에 반대한다.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노예제도, 미국 원주민에 대한 취급,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계 미국인 감금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불법 이민자 추방과 외국인 장벽 세우기 등에서 그 단면을 잘 보여준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런 편견은 사라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문화라는 용어가 아직 사회 공공선의 자원으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다양한 문화는 적절히 통제돼 왔다. 한편 유럽에서는 난민과 이민자의 유입으로, 국민-국가에 대해, 그리고 사회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사회 민주주의를 이끌고 있으며, 여기에 미국이 참여하길 기다란다.

버튼 맥에 의하면, '자본 민주주의'에 의해 생산된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사회 민주주의다. 비록 여기에는 신화가 없지만, 충분히 큰 그림이 해냈던 일들을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 용어와 개념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놓쳤던, 그리고 사회와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회 민주주의의 모델이다.

이 책에서 버튼 맥의 담론은 마치 거대한 서사시와 같다. 비록 다 다루지 못했지만, 아마도 본서는 미국뿐 아니라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줄 것이며, 지난 그의 어떤 신약 연구보다 훨씬 논쟁적일 것이다. 하지만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라는 역사학자도 이미 '인권'과 같은 새로운 '신화'가 정착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아라 노렌자얀이라는 캐나다의 심리학자는 <거대한 신>에서 종교의 역할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같은 북유럽(주로 스웨덴과 덴마크)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대체됐다고 주장했다.

버튼 맥의 논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버튼 맥의 주장은 실제 기독교에 대한 학술적인 분석뿐 아니라 지난 날 기독교가 저질러 온, 일부의 잘못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한 기독교 교리 체계 내에서 이루어진 일들에도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는 그 어느 나라보다 그러한 미국 기독교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버튼 맥의 이 연구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국가적 스캔들을 겪으면서 종교, 특히 전통 기독교의 문제와 그것에 사로잡힌 미국인과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어 줄 것이다.

※본 서평의 저작권은 알맹2에 있습니다. 가격: 28.00달러(2017년 2월 출간 예정), 분량: 320쪽

저자 버튼 L. 맥(Burton L. Mack)은 한스 콘첼만의 지도 아래 라는 논문으로 괴팅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신약과 초기 기독교를 가르쳤다. 국내에 소개된 저술로는 <잃어버린 복음서: Q 복음과 기독교의 기원>, <수사학과 신약성서>가 있으며, 이 외에도 'Myth and the Christian Nation: A Social Theory of Religion', 'Christian Mentality: The Entanglements of Power, Violence and Fear', 'Who Wrote the New Testament?: The Making of the Christian Myth', 'A myth of innocence : Mark and Christian origins' 등 선구적인 연구서적을 많이 펴냈다.

/진규선 목사(서평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