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래하자!
다시 꿈을꾸자!

스룹바벨은 성전을 재건하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내부의 약점을 강점으로 고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대응이 가능해졌습니다.

지금의 기독교 음악 생태계는 내외적으로 심각한 파손과 고통이 가득합니다. 장인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직종으로 이동하고 해외 음악 의존도는 80% 이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건 '바통 터치'라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입니다.

변하고 달라지는 라이프 스타일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는 타이밍을 놓치면서 모두가 힘든 체력전을 각개전투로 감당하는 상황입니다.

내부와 외부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각각에 정확한 재건이 필요한 상황인데 어디가 파손되었는지 실태조차 파악이 안됩니다. 한쪽 진영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영성과 태도가 중요하다 말하고 또 다른 진영은 질서잡힌 산업과 비지니스가 필요하다 말합니다.

내외적으로 둘다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 태도, 거룩, 삶... 모두 필요하고, 정직한 산업, 계약, 재정 운영, 비지니스도 필요합니다. 순진성도 있어야 하며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태도는 옳았고 우리의 목표도 좋았지만 우리의 방법은 많이 서툴렀습니다. 전문가나 구체적인 전략 없이 의리와 정돈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일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함께 성공했을 때 잘 나누지 못했고 함께 실패했을때 책임지지 않으면서 함께 완성하고 오래 가는 것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완벽한 하모니로 구원의 기쁨 전한 ‘아발론’
▲“해외 음악 의존도는 80% 이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건 '바통 터치'라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입니다.”(이 사진은 글의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업습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우리의 노래는 CCM과 예배음악이라는 범주 안에서 교회의 내부만을 타겟으로한 찬양사역의 도구만 만들었고, 우리가 더 나아가야 할 세상으로의 전략과 목표는 상실한 채 제대로 사람을 육성하거나 키우지 못했습니다.

CD플레이어의 시대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요즘, 10곡 이상이 담긴 정규 음반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일반 가요계는 이미 1~2곡의 음원과 비쥬얼 아트워크로 빠르게 그 생태계를 변화시켜 적응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산업과 구조 안에 있습니다.

긴 장편의 음악보다는 빠른 단편으로 변화했고 혼자 만들어가는 시스템이 아닌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산업으로 구조의 변화와 하는 일들도 다양하게 일어났습니다. 이젠 가수 혼자서 곡 쓰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기획하고 홍보하고 사진찍고 디자인하고 메이크업 하고 음향하고 표를 팔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세대는 개별 성향과 주장들이 강해졌습니다. 이것은 "나쁘다"가 아닌 "새롭다"입니다. 그런데 우리 음악의 현실은 여전히 집단 공동체성을 가져야하며 다같이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물들어 있습니다. 예배음악은 회중을 생각하니 더 이것을 강조합니다.

왜 우리 스스로 한계점을 만들고 제한했을까? 이러다보니 나와야 할 음악 장르는 제한적으로 밖에 수용할 수 없게 되고 이것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은 신앙수준(?)과 상관 없이 불편하고 어색해지기 시작했고 더 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만들고픈 기독예술인들은 세상의 음악산업으로 들어갔습니다.

최근에 젊은 세대로부터 새로운 음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인데 대중음악 아티스트입니다. 크리스천이 일반 가요계와 뮤지컬과 음악계 곳곳에서 열심히 활동을 해주고 있습니다.

CCM이란 범주가 이제는 좀 더 확장되고 더 세밀한 전략을 가지고 우리의 아군들이 세상에서 그분의 세계관을 가지고 노래하도록 도와야합니다.

과거의 성공과 영광은 잠시 내려 놓고 지금의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다 하는 그 뜻을 분별하여 찾고 노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