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택
▲천종택 목사(대구로고스장로교회 담임)
요한복음 16:1~15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는 방법으로 아예 영적차원을 부정하도록 "사탄은 없다" 혹은 "현재와 같은 과학의 시대에 다른 영적인 존재나 영향과 힘 등은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이나,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나 "하나님은 너무 크고 위대하며 거룩하고 초월적인 반면 인간은 너무 비천하고 무가치하여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는 존재다." 라는 생각을 주입 한다. 이 결과 우리는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며 영혼의 주체로서 자신의 능력과 옳고 그름(right and wrong)의 기준에 근거하여 우리의 운명을 관리하고 조작할 수 있어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의 주체는 인간 자신이지만 운명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진리를 성경으로 가르친다. 이 진리를 성경은 잠 19:21에서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는 말씀으로 분명히 밝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예정된 우리의 운명을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과 그가 십자가의 죽음의 결과로 오신 성령의 새로운 역사(work)와 사역(ministry)이 이러한 사탄의 미혹으로 송두리째 묵살 당하게 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사탄의 미혹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아는 지식에 무지하게 되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믿는 자의 성령체험은 하나님을 만남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짝 조심해야할 것은 '성령체험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감각적으로 느끼고 보고 듣기를 원하는 타락된 인간 본성에 사탄은 민첩하게 작용하여 신비체험을 성령체험으로 착각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탄의 농간으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사람이 주인이라는 식의 무신론적인 세상학문과 신비 체험적 성령체험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혹은 성령과 합력하여 구원을 향하여 걸어가는 삶이 구원의 가장 중요한 길이란 것을 잘 아는 사탄이 모든 방법으로 성도를 혼란케 하여 성령의 역사와 그 체험을 오도하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성령과 합력하면 다른 모든 육신적 감각을 초월하는 의식적 체험의 깨달음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에 먼저 예수님이 본문에서 가르치시는 세상에 대한 혹은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성령의 역사와 사역을 살펴보자.  

Ⅰ. 죄에 대하여
 
본문의 9절을 보면 "성령이 오면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 고 하였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의 잘못인 죄는 자신을 존재케 한 창조주를 무시하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인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삶이다.
 
무엇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가. 그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늘에서 왔으며, 살았고, 하나님을 보여주었으며,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그리스도가 전한 진리를 이지적인 지,정,의 의 인격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그의 십자가 위의 죽음을 인류의 죄를 위한 치유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성령은 이러한 믿지 않는 죄에 대한 책망(convict)을 의식하도록 한다.

Ⅱ. 의에 대하여

하나님이 인정하고 받아주어 하늘나라로 부활 승천한 그의 아들이 보여준 진정한 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은 사람의 죄악 된 의를 초월하도록 세상과 믿지 않는 자를 책망한다. 교만하여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선행의 공적을 쌓아 자신이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세상에서나 칭찬받을 일로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사 64:6은 우리에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라며 인간의 한계성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10절에서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는 다시 나를 보지 못한다."고 한 뜻은 부활 승천으로 차원을 달리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보내어 우리의 의식 안에서 보이지 않는 역사(working)와 사역(ministry)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여 의로움을 행하게 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Ⅲ. 심판에 대하여

성령의 사역 중의 하나는 세상의 믿지 않는 자가 받은 심판을 우리가 깨닫도록 책망하는 것이다. 이는 사탄으로 의인화된 죄의 힘(세력)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죄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였을 때 패배하여 심판받았다는 것이며 죽음으로 끝날 세상 정신 혹은 가치관은 그리스도에 의해 극복되었고 우리에게는 영생의 길이 열렸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책망이다. 오직 성령은 믿음의 십자가 길과 불신의 세상적 길 중에 어느 선택을 하느냐 로 우리는 심판받을 것이라고 책망한다. 성령은 이러한 책망으로 세상과 죄의 심판을 사람들이 의식하면서 심판에서 구하여 준 그리스도를 믿어 다시는 심판받지 않을 회개의 세례를 받아 예수님의 의로 변화를 받는 길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함을 깨우치는 사역을 한다. 이러한 성령을 깨닫지 못하고 감각적인 경험과 기적을 체험하려고 갈망하며 성령의 진정한 사역을 거부하면 성령은 근심한다(엡 4:30).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성령의 사역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인도하는 성령과 합력하여 받은 구원을 완성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예수님은 본문에서 가르쳤다.